[특파원리포트] 日의 천태만상 '마스크 회식'.."저게 가능해? 더 위험!"
지난 20일 오전, 일본 각료회의(국무회의)를 마친 타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 후생노동상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일본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이틀 연속 2천 명 대를 기록한 상황이었습니다. 전날 사망자도 처음 20명을 넘었습니다.
각료회의에서 어떤 대책이 논의됐는지 기자들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타무라 후생상은 갑자기 ‘회식용 마스크’란 걸 꺼내 든 뒤 모델을 자청했습니다.
다무라 노리히사 일본 후생노동상이 20일, 기자들에게 이른바 ‘회식용 마스크’를 시연하고 있다.
타무라 후생상은 “음식을 먹을 때는 이렇게 올리고, 먹고 나서는 이렇게 내리고…. 기능성과 디자인이 좋은 마스크가 계속 나오면 젊은이도 많이 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회식용 마스크’입니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의 쿠로이와 유우지(黑岩祐治) 지사도 대표적인 ‘마스크 회식’ 전도사입니다. 가나가와현은 프로야구 관중을 꽉 채워 이른바 ‘코로나19 확산 실험’을 해 논란이 된 요코하마(橫浜) 스타디움이 있는 곳입니다.
쿠로이와 지사는 유튜브에 관련 동영상을 올리는 건 물론, 연일 TV에도 출연해 “거부감 느끼지 말고 일단 ‘마스크 회식’을 실천해 보라”고 강변합니다.
쿠로이와 유우지 일본 가나가와현 지사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마스크 회식’을 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쿠로이와 지사는 “나도 마스크를 쓰고 회식해 본 경험이 있다.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술 먹고 밥 먹을 때는 빼고 먹는다. 이것으로 충분히 즐겁다. 이렇게 하면 감염 위험을 훨씬 낮출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외식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일본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인 ‘사이제리아’는 이른바 ‘냅킨 마스크’를 신상품으로 내놨습니다. 매장에 비치한 냅킨 위에 고객이 쓴 마스크를 반으로 접어 넣은 뒤 착용하는 방식입니다.
마스크로는 코를 덮고, 그 앞으로 냅킨이 블라인드처럼 드리워져 입을 가리게 되는 원리입니다.
일본 외식업체 ‘사이제리아’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냅킨 마스크’ 시연 장면.
이런 제안에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한마디로 ‘당혹스럽다’, ‘실효성이 있느냐’는 시각입니다. 실제로 시연 장면을 보면 냅킨이 입에 달라붙어 손으로 냅킨을 들추면서 음료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또 냅킨이 얇아서 비말 차단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마스크 회식’ 예찬에는 학계마저 뛰어들었습니다.
일본 교토(京都)시에 있는 사가(嵯峨) 미술대학의 사사키 마사코(佐々木正子) 학장은 직접 ‘손에 드는’ 마스크를 고안했습니다.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다른 손으로는 마스크를 내리고 올리는 식입니다. 이 대학은 ‘손잡이 마스크’ 견본도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일본 사가 미술대학 학장이 고안한 ‘손잡이 마스크’의 시연 장면. <영상 출처=일본 NHK 방송>
일본 각계에서 이렇게 ‘마스크 회식’이 강조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도 국내 여행 비용의 일부를 세금으로 지원하는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외식비를 지원하는 ‘고투 이트’(Go To Eat)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기 부양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감염 확산을 줄이려 하니 “회식 때 마스크를 쓰라”는 어정쩡한 제안이 속출하고 있는 겁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19일 “‘조용한 마스크 회식’을 제발 부탁하고 싶다. 나도 오늘부터 철저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전날 일본의 하루 신규 확진자가 2천200명을 넘어 최다 기록을 세운 데 대한 대책치고는 좀 엉뚱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9일 기자회견에서 회식 중이라도 대화할 때는 마스크를 쓰는 ‘조용한 마스크 회식’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 출처=일본 교도통신>
같은 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역시 기자회견에서 패널을 들고 나왔습니다. 회식 중에 지켜야 할 방역 수칙으로 ‘5개의 소(小)’를 제시한 겁니다.
“회식은 반드시 최소한(小) 인원으로, 가능하면 1시간 이내 짧은(小) 시간에, 작은(小) 목소리로 즐기세요. 음식은 개인용 작은(小) 접시에 나눠 담고, 소독과 환기, 마스크 착용도 꼼꼼히(小) 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코로나19 감염 확대 방지에 마스크 착용은 필요합니다.
일본 정부안에 설치된 ‘코로나19 분과회’ 역시 감염 우려가 큰 전형적인 사례로 ‘많은 사람이 장시간 음식을 나눠 먹거나, 음주를 동반한 친목회’를 꼽았습니다.
당연히 목소리가 클수록 비말도 더 확산하기 때문에 이참에 회식 문화를 바꾸자는 ‘마스크 회식 옹호론’도 상당합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19일 기자회견에서 ‘5개의 소(小)’를 강조한 새로운 방역수칙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일본 교도통신>
그럼에도 그 효과에 대해선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갸웃합니다.
공중위생 전문가인 츠카다 유미코(塚田ゆみ子) 나가노(長野)보건의료대학 조교수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회식 중에 마스크를 쓰거나 벗는 것을 반복하면 마스크 바깥쪽 노출 부분에 묻은 바이러스가 안쪽까지 부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저런 행동을 노인이나 어린이가 반복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면서 “게다가 대화가 활발해지거나 술을 마시면 마스크를 벗어버릴 우려마저 있다”고 강조합니다.
일본 국립 이화학연구소와 고베대 연구팀은 최근 슈퍼컴퓨터 ‘후가쿠’를 활용해 비말 확산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했다. 실험에서 4인 중 전염 가능성이 가장 큰 상대는 맞은편이 아니라 확진자 옆에 앉은 사람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도쿄상공리서치는 11월 중순 일본 내 기업 1만 59곳을 대상으로 ‘연말연시 송년회, 신년회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계획 없다’는 응답은 무려 87.8%였습니다. 규모별로는 대기업이 92.9%, 중소기업 86.9%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코로나19 제3차 대유행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이는 또 지금 ‘마스크 회식’을 전파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했습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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