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인연이 지금까지.. 한국서 온 선물에 눈물이 핑"

김은중 기자 2020. 11.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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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봉사단 활동 미국인 네이선씨, KF서 '코로나 생존박스' 전달받아

“박스를 받아든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노동·인권 변호사로 일하다 은퇴 후 미국 뉴욕 근교에서 살고 있는 샌드라 네이선(Sandra Nathan·75)씨는 지난주 ‘코로나19 생존 박스(Survival Box)’를 전달받았을 때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 내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20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과거 한국에서 활동했던 평화봉사단원들에게 선물로 보내준 것이었다. 네이선씨는 24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50년 전 내 경험이 지금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며 “우리를 잊지 않은 한국에 감사하다”고 했다.

샌드라 네이선씨

국제교류재단은 지난달 1960~70년대 미 평화봉사단 소속으로 한국에서 교육·보건 활동을 벌였던 단원 514명에게 코로나 방역 키트를 선물했다. 마스크 100장, 항균 장갑, 피부 보호제 외에도 홍삼 캔디, 민속 부채, 은수저 등 한국을 추억할 수 있는 제품이 담겼다. 박스 위엔 ‘당신의 헌신에 대한 우리의 작은 보답’이라고 적었다.

네이선씨는 대학 졸업 후 평화봉사단 소속으로 1966년부터 강원도 춘천에서 2년여간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나눔을 강조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연설에 감명을 받아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휴지가 없어 타임·뉴스위크 같은 잡지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생활 환경은 열악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도움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몸이 아프고 가난한 학생들을 미 군의관에게 데려다 주면 학부모들이 답례로 달걀을 보냈다. 네이선씨는 “한국인들은 감사함을 표시할 줄 알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1966년 춘천의 한 여고에서 평화봉사단 단원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샌드라 네이선씨. /샌드라 네이선 제공

네이선씨는 “방역 키트 박스를 열면 내가 느꼈던 마법 같은 감정이 날아가 버릴까 두려웠다”며 방역 키트를 열어보지 않고 1주일 동안 고이 모셔놨다고 했다. 그의 딸은 소셜미디어(SNS)에 이런 소식을 알리며 “우리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네이선씨는 일부 언론사에 ‘한국 정부의 친절함을 알리지 않겠냐’고 제보를 했고, 지난 21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가 이를 기사화했다. 국제교류재단 사무실에는 “멋진 선물에 너무나 감사하다” “내 청년기에서 특별하고 중요한 시절이었다”는 전직 단원들의 감사 편지가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전직 평화봉사단원들에 제공한 코로나 방역 키트. /한국국제교류재단

네이선씨는 미국 내 코로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통제는 되고 있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통일된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며 “정치적 분열이 다른 분야에서도 사람들을 갈라 놓았고, 코로나에 함께 맞서고 있다는 시민들의 연대 의식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같은 리더십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1년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남편과 함께 40여 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그는 “한국 남자들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모습에서 이 나라가 상전벽해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평화봉사단의 노력도 한몫했겠지만, 한국이 파워하우스(powerhouse·신흥 경제 대국)가 된 것은 한국인들의 근면·성실한 태도와 친절함,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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