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박2일' 시즌4 맡아 안착시킨 방글이 PD "함께 누리는 '순한 맛' 예능..시대 발맞춰 달라진 상식 반영"

김지혜 기자 입력 2020. 11. 2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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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방글이 PD는 “시청자들에게 국내 각지를 여행하는 ‘대리 만족’을 전하는 기획을 자주 보여드리려 했다”며 “울릉도·독도 편에서는 여행을 가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싶어 욕심을 냈다”고 말했다. 독도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방 PD와 <1박2일> 멤버들. KBS 제공
남성 출연진 문제로 생긴 위기
실패 가능성 높은 상황 되자
여성 PD로 막는다는 비판 불구
가학성 남초 예능 구태 씻어내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
괴롭히거나 골탕먹이기보다
함께 즐거울 수 있도록 연출”

난파선의 키를 잡고 싶어 하는 선장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오랜 제작 중단 끝에 시즌4로 복귀를 알린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새 메인 연출을 맡은 방글이 PD(33)에게 우려와 기대의 시선이 한번에 꽂힌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정준영 등 출연진의 도덕적 결함으로 불명예스러운 끝을 맺은 전 시즌의 오명 위로 <1박2일> 최초의 여성 메인 PD인 그가 써나갈 새 역사에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그 후 1년이 지났다. ‘남초 예능’의 구태를 벗고 ‘순한 맛’ 예능의 시대를 새로 열었다는 평가, 10%대의 시청률과 함께 방 PD의 <1박2일>은 순조롭게 항해 중이다.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다사다난한 2020년을 무사히 보낸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지난 1년의 소회를 전했다.

“<1박2일> 연출 제안을 받고, 사실은 황당했어요. 당시 상황이 안 좋기도 했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큰 프로그램에 조연출 경력도 없이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죠. 처음엔 못하겠다고 버텼어요.” 2014년 KBS에 입사해 <위기탈출 넘버원> <해피투게더> 등의 조연출을 거쳐온 그에게 <1박2일>은 처음으로 메인 연출을 맡게 된 ‘입봉작’이었다. 프로그램 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시즌 사상 처음으로 여성 PD를 택한 KBS의 결정이 전형적인 ‘유리절벽’ 현상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던 때였다. “제가 여성이라는 점이 어느 정도 작용을 했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PD로서 얻게 된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저라는 PD를 믿고 모험을 해주신 만큼 용기 내 도전하기로 했죠.”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여행 예능’으로서의 <1박2일>의 색깔을 강조하고 싶었다. ‘전문 예능인’보다는 낯선 매력을 지닌 출연진이 주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 PD의 생각들은 시즌4에 <1박2일> ‘순한 맛’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가져다줬다. 2007년 첫 방송 이후 <1박2일>이 자주 휘말리던 ‘가학성 논란’에서 벗어나 남녀노소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따뜻한 ‘힐링 예능’이 됐다는 평이 쏟아졌다.

지난 8월 방송된 ‘캠핑 특집 수려한 휴가’ 편은 전 시즌과 차별화되는 시즌4만의 강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폭우로 촬영이 중단된 사이, 멤버들은 전 시즌 출연자인 이수근에게 전화를 걸어 “비가 오면 어떻게 했냐”며 조언을 구한다. “진흙탕에 몸을 던지고 자진 입수했다”는 이수근의 말에 이들이 기함하는 사이, 제작진은 과감히 “철수”를 선언한다.

“엄청난 대의를 갖고 있진 않아요. 다만 시대에 발맞추다 보면 사소한 문제들과 만날 수밖에 없어요. 예전 시즌을 보면 맹추위 속에 멤버들이 트럭 뒷자리에 앉아 이동하곤 해요. 저도 웃으며 봤던 장면이죠. 하지만 지금은 도로교통법상 아예 불가능한 연출이에요. 음식을 먹을 때도 이전 같으면 한 그릇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 먹었을 텐데, 이제는 덜어 먹는 집게나 그릇을 따로 준비하죠. 코로나19로 식문화가 변했잖아요. 까나리액젓을 마실 때 플라스틱 일회용 컵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리유저블 컵을 쓰는 것도 달라진 상식을 반영하기 위해서죠. 폭우에 촬영을 중단한 건 안전 문제도 있지만 수해를 입은 지역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국민 정서에 반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죠.”

처음부터 ‘순한 맛’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 때문에 생긴 변화는 아니었다. 방 PD를 주축으로 여성 제작진이 다수를 이루는 현장 분위기와 기존 예능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새 멤버들의 성격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남자 6명이 나와서 하는 예능이 많잖아요. 그중 새로운 느낌을 드리기 위해 원래 예능 판에 익숙지 않은 멤버들을 모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존 예능 문법과는 다른 재미가 나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괴롭히거나 골탕 먹이는 것보다는 함께 누리는 즐거움을 선호하는 멤버들과 그런 톤으로 편집이나 연출을 의도하는 제작진이 ‘취향의 시너지’를 낸 것 같아요.”

<1박2일> 시즌4는 그렇게 서열화와 가학성이 중심이 되는 ‘남초 예능’의 한계를 벗어난다. 시즌4가 유독 MZ세대 여성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는 까닭이기도 하다. 팬들은 시즌4 방영 1주년을 맞아 기념 카페를 열고 축하하는 등 단순히 ‘틀면 나오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덕질’의 대상으로서 <1박2일>을 새롭게 소비하고 있다. 방 PD는 “정말 반갑고 감사하다”면서도 “더 많은 분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타깃 시청자를 점점 세분화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여전히 온 가족이 함께 봐도 불편함 없이 즐거운 예능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도 <1박2일>이 아버지와 딸이 함께 보는, 할머니가 하루 종일 틀어놓을 수 있는, 조카에게 보여줘도 걱정되지 않는 방송이 됐으면 합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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