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엔 '돈 폭포'..실물경제는 '돈 가뭄'

이윤주 기자 2020. 11. 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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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야 어떻든 뛰는 주가 코스피가 이틀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2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지수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코스피, 연일 사상 최고치 경신
대다수 시민 “집값 오른다” 기대
주식·부동산에 유동성 쏠림 심화

코로나19 사태로 얼어붙은 경제를 살리려고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었지만 가계 벌이는 제자리인 반면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끓어오르고 있다. 자산시장과 실물경제 간 괴리가 확대되면 한국 경제가 ‘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24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5.17포인트(0.58%) 오른 2617.76을 기록하며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코로나19 3차 유행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현실과 온도차가 크다. 증시 대기자금 성격인 투자자예탁금 규모는 지난해 말 27조3900억원에서 지난 18일 사상 최고치인 65조1300억원을 기록했다.

부동산시장도 ‘핀셋’ 규제를 비웃듯 지역을 옮겨가며 가격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동향’에서 1년 뒤 주택가격을 전망한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30으로, 2013년 1월 집계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이는 시장에 풀린 돈이 많은 탓이다. 현금, 결제성예금에 2년 미만의 금융상품을 더한 광의통화(M2)는 지난해 말 2908조원에서 올 9월 말 3115조8000억원까지 불었다. 기준금리는 연 0.5%로 ‘싸게 빚내는’ 시대가 됐다. 경기 전망이 낙관적이라면 이 같은 유동성은 기업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진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실물경기 회복이 불투명해지자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일자리는 쪼그라드는데 자산시장만 커졌다.

코로나19는 심각한 금융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빚을 내도 소비에 쓰지 않고 자산시장에 쏟아붓고 있어 민간소비 회복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의약품 생산 고공행진
숙박·여행 등 여전히 바닥
10월 대기업 대출 1조 늘 때
중소기업 빚은 8배 이상 증가

저금리에서의 수익률 추구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자산시장 쏠림이 과열될 경우 가격에 거품이 끼고, 거품이 주저앉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기업들은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회사 비상금’ 격인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 기업부채도 크게 늘었다. 지난 10월 한 달간 대기업 대출이 1조원, 중소기업 대출은 이보다 많은 8조2000억원 증가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이 투자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도 늘려야 하는데 현재 기업들 상당수도 유동성으로 돈을 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좋은 기업들은 외부자금 수혈이 필요 없을 만큼 양호하지만, 중소기업이나 피해가 큰 업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도 금융권 일각에서 나온다.

자산시장 ‘거품 경고’ 목 타는 실물경제는
업종·기업 규모 따라 ‘양극화’

기업들이 이처럼 위기 속에 방어경영을 하면서 민간경제의 일자리 창출 기능은 크게 약화됐다. 일부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바이오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 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일자리는 크게 늘지 않고, 취업자 비중이 높은 제조업, 도·소매업종 등은 일자리가 감소했다. 통계청은 올해 8월 임금근로자가 2003년 이후 전년 동기 대비 첫 감소(-11만3000명)했다고 집계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은 주가도 오르고 회사채도 잘 팔리지만, 중소기업이나 신용도가 낮은 곳은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서 근로자들의 임금이나 고용도 불안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이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으로 쏠리게 되면 금리를 낮춰 내수를 살리고, 경기를 부양하고자 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부양 효과는 낮아지는 반면, 기업과 가계의 신용위험은 높아진다. 확장적 통화정책의 효과가 사라지는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주요국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실물경제가 회복되기까지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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