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유럽서 일자리보장제·기본소득 실험 [김향미의 '찬찬히 본 세계']

김향미 기자 2020. 11. 2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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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4일(현지시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도르트문트의 쇼핑가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걷고 있다. 도르트문트|AP연합뉴스

유럽에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경제·사회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시도로 보편적 기본소득제, 일자리 보장제 등 진보적 정책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정책은 과거 ‘유토피아적 아이디어’라거나 ‘좌파 사상’이라며 소수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실용적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미 CNN 등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내년 봄 보편적 기본소득(UBI·Universal Basic Income) 실험이 개시된다. 독일의 비영리재단 ‘내 기본소득’과 독일경제연구소, 쾰른대학 등은 지난 8월 기본소득 실험을 위해 1500명의 참가자를 모집했다. 이 중 120명을 뽑아 내년 봄부터 매달 1200유로(약 157만원)씩 3년간 지급한다. 연구진은 지원금을 받지 않은 1380명과 이들에 대한 비교 연구를 진행한다. 이 실험은 참가 신청에만 150만명이 몰렸고, 실험 기금에 15만명이 기부하는 등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영국에서도 최근 UBI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기성 정치권에서 나왔다.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 크리스틴 자딘 의원을 포함한 의원 100여명이 리시 수낙 재무장관에게 UBI 실험을 추진하라며 서한 형식의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다. 자딘 의원은 CNN에 “코로나19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UBI를 바라보게 만든 게임체인저였다. 이 아이디어는 이제 이상한 게 아니라 실용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전까지 UBI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이라고 해왔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64㎞ 떨어진 옛 공장촌인 마리엔탈에서는 지자체 노동당국과 영국 옥스포드대가 손잡고 ‘세계 최초’로 보편적 일자리 보장제 실험을 진행한다. 실업수당 지급이나 선별적 공공 일자리 제공이 아니라 ‘장기 실직자 모두에게 완전한 형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게 실험의 취지다. 실직 기간이 1년 이상인 주민 약 150명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공적 자금을 지원한 민간 기업 또는 조경·육아·토목 등의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가 제공된다.

연구진은 ‘일자리’가 경제적 소득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과 가족관계, 지역사회에서의 활동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마리엔탈은 1930년 대공황 여파로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주민 1300여명이 일시에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없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사회연구 대상지가 되곤 했다. 1980년대 이래로 5명 중 1명은 실업 상태다. 예비 실험결과는 내년 봄에, 최종 보고서는 2024년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는 통계도 있다. 옥스퍼드대가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지난 3월 영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보편적 기본소득제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영국 뉴캐슬대학의 행동과학자인 대니얼 네틀은 코로나19가 정부의 현금 지급을 일반화하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런 정책들에 대한 반대 여론도 적지 않다고 CNN은 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UBI가 비용이 많이 들고 노동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도움이 더 시급한 사람들에게 지원이 덜 갈 수 있다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UBI는 고용 감소를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UBI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지급해야 하는 것인지 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영국의 자딘 의원도 UBI를 추진하기까지는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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