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민폐가 되지 말자고 했던 이도윤, 화봉중의 중심으로 성장하다

김영훈 2020. 11. 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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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9월 중순에 작성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 매거진 10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려드립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독 링크)


한 소년이 있었다. 소심한 성격에 활동적인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또래보다 월등하게 컸던 신장이 그를 농구로 인도했다. 그렇게 농구에 입문한 소년은 인고의 시간을 버텼고, 농구시작 3년 만에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화봉중학교에 재학 중인 이도윤(센터, 200cm)의 짧은 농구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배구보다는 농구를 택했던 소년
이도윤은 190cm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급성장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성인들의 키를 훌쩍 넘기는 185cm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그와 농구는 거리가 멀었다.

이도윤은 “체육 선생님이 내 키를 보고 장난으로 농구를 해보라고 하셨지만, 난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아이였다”며 초등학생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가 농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17년 9월의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던 이도윤은 친구들과 동아리 시간을 활용해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또래에 비해 큰 키는 이도윤과 농구를 가깝게 만들어줬다. 그는 “아무래도 키가 크니 동기들과 비교해서 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도윤이 점점 농구에 흥미를 붙여가던 시점. 그의 키를 보고 엘리트 체육계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 입문한 종목은 농구가 아닌 배구였다. 하지만 난생처음 접하게 된 배구는 이도윤에게 흥미를 안겨주기 부족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가던 중, 이도윤에게 농구부의 테스트 제안이 들어왔다.

“부모님의 지인이 소개를 시켜줬다”던 이도윤은 “테스트를 보러 갔는데, 처음 분위기는 무서웠다. 그런데 김현수 코치님이 매우 친절하게 농구를 해볼 것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래도 배구보다는 농구가 익숙해서 농구를 선택하기로 했다”며 농구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큰 신장을 지녔지만, 농구를 늦게 시작한 이도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유급이었다. 1년 동안 학교를 쉰 그는 오롯이 농구에만 집중하며 1년을 보냈다.

“새벽, 오전, 오후, 야간까지. 하루에 4번씩 농구만 했다. 새벽과 오전에는 코치님과 1대1로 연습했다. 솔직히 계속 농구만 하니 재미도 없기는 했지만, 그때는 정말 멋모르고 농구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농구만 하니 조금씩 실력이 늘더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급하기를 잘한 거 같다.”는 이도윤의 이야기이다.

김현수 코치는 “도윤이가 농구 경험이 없었다. 도윤이 부모님께 ‘유급 하는 게 어떻겠냐’고 여쭤봤는데, 괜찮다고 하셨다. 유급 동안 계속 기본기만 가르쳤다. 다행히 도윤이는 농구 경험이 많지 않아 빠르게 흡수를 하더라. 어설프게 배운 것보다 백지에서 시작하니 더 빠르게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윤이 같이 장신 선수는 울산 같은 지방에 많이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니 나름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고의 시간을 버틴 이도윤, 급성장해서 돌아오다

1년이라는 시간은 꽤 길다. 누군가에는 짧게 느껴지겠지만, 계절이 4번이나 바뀌는 동안 농구만 한 이도윤에게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버텨낸 이도윤은 그 시간이 값졌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9년 5월, 춘계연맹전. 화봉중은 첫 경기에서 삼일중을 만났다. 이도윤은 이날 37분을 출전하며 16점 1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더블더블을 올리며 화려한 데뷔전을 남긴 동시에 팀도 승리하며 이도윤의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이후 화봉중은 계속해서 상승가도를 달렸다. 대회 마지막까지 전승을 기록한 화봉중은 정상에 올랐다.

이도윤은 “훈련만 하다가 대회를 나가니 긴장이 되더라.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더 떨렸다. 단지 팀원들에게 민폐만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동료들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덕분에 우승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며 첫 대회를 돌아봤다.

성공적으로 첫 대회를 장식한 이도윤은 자신감을 얻었고, 남은 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팀도 잘나갔다. 화봉중은 연맹회장기 우승, 소년체전 준우승 등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남겼다. 이도윤은 모든 대회에서 주전으로 나서며 팀의 상승세에 한 몫했다.

하지만 이도윤은 만족을 몰랐다. 그는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팀은 잘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뛴 경기도 돌려보면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노력했다”며 자기 자신에게 냉철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지난해 위 학년에 좋은 센터들이 있었다. 힘과 기술이 좋아서 막을 때 힘들었던 적이 있다. 나도 힘을 키우고 기술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이도윤은 2020년을 기대케 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한 것이 2월 열린 동계훈련이 진행된 2월까지는 말이다.

그는 2월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KBL 유스 최강전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3경기 평균 29.7점 11.7리바운드 5.7블록슛을 기록했다. 특히, 대회 우승 팀이었던 B.리그 연합팀과의 경기는 이도윤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 시켜 줄 수 있었다. 38점 13리바운드 6블록슛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팀은 패했지만, 그의 고군분투는 많은 관계자들에게 회자되기 충분했다.


증명할 무대가 사라진 이도윤, 아쉬움을 삼키다

하지만 이도윤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3월부터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이도윤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

이도윤은 “동기들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데,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전력도 나쁘지 않아서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 돼서 아쉽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현수 코치도 “올해 대회를 나갔으면 더 성장했을 것이다. 중학교 선수들은 대회 하나를 치를 때마다 실력이 늘 수 있다. 하지만 도윤이에게 그런 기회가 없어져서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대신 이도윤은 이 시간을 이용해 농구 외적인 것을 배워가고 있다. 첫 번째는 리더쉽이다. 앞서도 말했듯, 소심했던 이도윤은 올해 주장을 맡게 되었다. 유급 탓에 가장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소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한 김현수 코치의 방책이기도 하다.

이도윤은 “농구를 하면서 성격을 많이 고쳤다. 오래 보는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조금씩 활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주장을 맡으면서 많이 달라졌다. 주장이 되니 책임감이 생겨서 팀을 이끌어나가려고 한다”며 달라진 성격을 설명했다.

김현수 코치는 “처음에는 리더쉽이 없어서 많이 혼났다. 아이들을 통솔하는 것을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지금은 만족할 정도로 리더쉽 있는 도윤이가 되었다”며 이도윤의 주장 역할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한, 몸관리의 중요성도 깨우쳤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운동을 못 할 때도 있었다. 몸 관리를 안 하니 다시 돌아왔을 때 몸이 올라오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 그래서 쉴 때도 운동을 하는 방법들을 알아가고 있다. 운동할 수 있는 곳을 직접 찾아보면서 내 기술을 위해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도윤이 노력하는 것은 포스트업이다.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는 파워는 물론, 영리하게 파고들 수 있는 피벗 기술을 연마 중이다. 이도윤은 “피벗 기술의 중요성을 느꼈다. 영상을 보면서 배우기보다는 내 경기 영상을 보면서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했어야 하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그런 상황이 다시 올 것을 대비해 연습 중이다”며 자신의 연습 비법을 밝혔다.

이처럼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려는 이도윤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남들에 뒤처지는 선수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선수보다 더 열심히 해서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남들에 뒤처지지 않는 선수. 이도윤이 대회에 처음 나갈 때 마음먹었던 것이다. 잘하는 팀 동료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겠다고 했던 그는 어느새 팀을 지탱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이번에도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이도윤은 큰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타고난 하드웨어에 성실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이도윤. 그가 그려갈 미래가 어디까지인지 기대가 된다.

사진 = 본인 제공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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