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칼럼] 다시 '과거사'를 짚는 까닭

한겨레 2020. 11. 24. 16: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태균 칼럼]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과거사는 '현재사'가 될 수 있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빠른 성장으로 혜택을 입었다면,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우리 안의 과거사를 해결하지 않고 일본 군국주의의 과거사를 비판할 수 있을까?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오는 12월10일 제2기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한다. 올 5월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업적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된 후 7개월 만이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10년 활동을 종료한 지는 10년 만이다. 제2기 과거사정리위는 1기 위원회에서 조사가 끝나지 않은 사건들과 함께 형제복지원 사건 등 새롭게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들을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위원회는 3년간 활동할 예정이며, 1년간 연장이 가능하다. 또한 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시행령은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근거하여 과거사위의 진실규명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허위 진술을 하거나 자료를 거짓 제출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제출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였다. 아울러 과거사위에 정보를 제공했거나 제공하려 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가할 시에도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제1기 진실화해위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큰 조직이 또 출범해야 했을까? 1기 위원회의 조사와 활약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이루어진 인권침해 사안의 진실규명이 이루어졌다. 1기 활동을 통해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1948년의 여순 사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있었던 보도연맹 사건,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일교포 간첩 사건, 강기훈 유서 대필조작 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있었다. 1기 위원회가 발간한 백서에 의하면 총 1만1175건이 접수되어 8450건의 진실이 규명되었으며, 이에 따라 의미 있는 권고사항이 제시되었다. 유서 대필조작 사건은 2015년 대법원에서 재판 결과가 뒤집혔다.

이렇게 적지 않은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1기 위원회의 권고사항 중 적절하게 실행되지 않은 사안들이 적지 않다.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기구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제약 역시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철저한 조사가 어려웠다. 조사에 협조해야만 하는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정당 추천 위원들의 적극적 ‘딴지 걸기’도 그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과거사 문제가 정치화되었다는 점이다. 인권은 정치적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처리를 강조하면 진보, 이를 반대하면 보수로 규정되었다.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누구보다도 인권을 강조해야 하는 보수가 인권 유린 사건의 해결에 반대를 한다? 과거사 해결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짜 보수였고 과거사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제2기 위원회의 출범이 야당이 반대했던 보상 문제와 관련된 조항을 빼면서까지 여야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 이상 정치적 이슈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거사 문제가 정치화되면서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피로감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과거사는 ‘현재사’가 될 수 있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과거사다. 일부 언론이 1기 위원회 활동 때 했던 것처럼 사회적 피로감을 강조한다면, 진실규명이 필요한 사건은 점점 더 쌓여갈 것이며, 피해자를 만든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진실규명, 그리고 사회적 합의만이 공안을 빌미로 인권을 유린하는 사건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몇년 전 개발도상국 외교관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단기간에 이룬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강의였다. 외교관 중 한 사람이 압축적으로 이루었던 성장 과정에서 부작용과 그로 인한 비용을 치른 것이 없냐고 질문했다. 과거사 문제는 바로 그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빠른 성장으로 혜택을 입었다면,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우리 안의 과거사를 해결하지 않고 일본 군국주의의 과거사를 비판할 수 있을까? 내로남불이 아닌 떳떳하고 지키고 싶은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이후 제3기 위원회의 설립이 아닌 연구와 보상을 위한 재단 설립으로 나아감으로써 사회적 피로감에 의해 과거사 문제가 폄훼되지 않도록 2기 위원회의 활동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원한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