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 코로나19 백신 어떻게 '속도전'에 성공했나

이현경 기자 2020. 11. 2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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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X'에서 시작..메르스 백신 토대로 재빨리 개발
영국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다이어그램. 침팬지의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벡터)로 삼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체내에 주입하고 이를 통해 항체를 형성한다. 옥스퍼드대 제공

영국 옥스퍼드대와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코로나19) 백신의 예방효과가 평균 70%, 최대 90%라는 중간 결과가 발표되면서 백신 출시가 임박하자 이들이 ‘속도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가장 늦게 뛰어들었지만, 9월까지 백신 100만 도스(1회 접종분)를 생산하겠다고 밝히는 등 빠른 속도를 자신했다. 그리고 이번에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하며 전략이 성공했음을 입증했다. 

● 세계보건기구(WHO)의 ‘질병 X’에서 시작

BBC는 23일(현지시간) “옥스퍼드대가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백신 개발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해”라며 “이들은 몇 년 전부터 백신 개발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백신 설계를 총괄한 사라 길버트 옥스퍼드대 교수는 “2014~2016년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 1만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며 “이후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면 재빨리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2018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공중보건에 큰 위협이 되는 주요 질병에 대한 대응 전략을 담은 ‘2018 연구개발 청사진(R&D Blueprint)’을 발표하면서 에볼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지카 바이러스와 함께 ‘질병 X(Disease X)’를 포함시켰다. 

이 수수께끼 같은 이름에 대해 당시 WHO는 현재는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추후 세계 대유행을 일으킬 신종 전염병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2018년 3월 12일 CNN에 “지카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X’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라며 “‘질병 X’는 이런 예측 불가능한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 이에 대응할 백신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 전략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길버트 교수는 질병 X의 일환으로 ‘플러그 앤 플레이(plug and play)’로 불리는 새로운 기법을 이용한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다. 기존 백신을 표본으로 사용해 유전자 코드에 삽입한 뒤 신종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는 “우리는 질병 X를 계획해왔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코로나19가 바로 질병 X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메르스 백신 활용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운도 따랐다. 마침 옥스퍼드대는 코로나19와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백신 ‘ChAdOx1-MERS’를 이 방법으로 개발해 지난해 임상시험에서 인체 안전성을 확인한 상태였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플러그 앤 플레이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길버트 교수는 의학 학술지 ‘랜싯’ 4월 16일자에 코로나19 백신 개발 상황을 공개하면서 “올해 1월 중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의 게놈이 해독돼 공개됐을 때 메르스 백신과 마찬가지로 영장류(침팬지)의 아데노바이러스 벡터(운반체)를 이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길버트 교수팀은 침팬지에 감기를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의 독성을 없앤 뒤 여기에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를 집어넣었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투할 때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스파이크 단백질을 감지하면 항체를 생성할 수 있도록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쓴 것이다. 이 백신에는 ‘ChAdOx1 nCoV-19’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AZD1222’로 불린다.  

옥스퍼드대 백신 그룹 책임자인 앤드류 폴라드 교수는 BBC에 “우리가 메르스 백신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단기간에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코로나바이러스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처럼 만성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특징도 백신 개발에는 유리했다”고 밝혔다. 

● 백신 개발 동시에 제조 라인 구축 진행

백신 개발과 동시에 백신 제조 라인 구축도 진행됐다. IT 매체 와이어드는 4월 25일 옥스퍼드대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패스트 트랙’으로 표현하면서 “영국 내 세 곳, 유럽 대륙에 두 곳, 인도와 중국에 각각 한 곳 등 백신을 제조할 업체 7곳도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다.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 5월 21일자에는 ‘전염병 속도만큼 빠른 코로나19 백신 개발’이라는 제목으로 옥스퍼드대 등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빨리 진행되는 이유를 분석한 글이 실렸다. 차세대 시퀀싱 기술을 포함한 기술적인 발전 외에 전임상(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병행하는 방식 등도 이유로 지목됐다. 옥스퍼드대 외에 모더나도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게놈이 해독된 지 10주도 되지 않아 mRNA 백신 임상 1상에 돌입했다. 

BBC는 영국 정부가 백신이 개발되기도 전에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400만 도스 공급 준비를 마쳤다며, 영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긴급 사용 승인만 떨어지면 백신 접종에도 계속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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