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두 별이 합쳐졌을 때 일어나는 일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0. 11. 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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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고리성운 일러스트 영상. NASA 제공

우리는 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 정보에서 어떤 패턴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경향이 지나쳐 노이즈(잡음)에서 시그널(신호)을 ‘만들어내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의료분야에서는 이런 오진을 ‘가짜 양성’이라고 부른다.

십수 년 전 한 잡지(아마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었던 것 같다)에 실린 일러스트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내용임에도 그런 측면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천체는 하나(안드로메다은하)를 빼면 모두 우리은하라는 3차원 공간 안에 분포한다. 그런데 밤하늘의 천체는 우리 눈에 2차원 공간(정확히는 천구의 표면)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처럼 바라보는 방향의 거리에 대한 정보가 빠진 별들의 분포에서 어떤 대상이 떠오르는 패턴을 발견해 그 대상의 이름을 붙인 게 바로 별자리다.

그때 잡지에서 본 일러스트는 한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을 지구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옆에서 바라본 관점이다. 이 별들이 지구에서 떨어진 거리는 제각각이어서, 이들을 하나로 묶을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오리온자리를 보면 가운데 별 세 개가 나란히 놓여 허리띠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옆에서 바라보면 셋은 각각 서로 수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우리은하의 구성원이라는 점 말고는 서로 엮일 일이 없는 별들이라는 말이다. 이 일러스트를 본 뒤 별자리 얘기가 나오면 ‘이건 천문학의 가짜 양성인데...’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해와 달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도 가짜 양성의 예가 아닐까. 우리(지구)의 주인인 태양은 우리의 시종인 달에 비하면 크기(지름)가 400배나 되지만 공교롭게 거리도 400배여서 두 효과가 상쇄돼 우리 눈엔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 천문학적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는 우리 눈에는 일식도 달이 해 바로 앞에서 지나가며 가리는 것처럼 보인다. 옛사람들이 음양이론을 만들 때 남녀와 함께 해와 달을 각각 양과 음을 대표하는 대상으로 상정한 것 역시 둘이 크기 면에서 대등한 천체라고 믿었기 때문 아닐까. 

옛사람들은 겨울철 남쪽 밤하늘을 쳐다보다 밝게 빛나는 몇몇 별들에서 그리스 신화의 사냥꾼 오리온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리온자리를 옆에서 보면 구성 별들은 각자 수백 광년 이상 떨어져 존재하는 서로 무관한 천체들임이 드러난다. alchemical.org 제공

원자외선 빛 내보내는 성운 

학술지 ‘네이처’ 11월 19일자에는 십수 년 전 본 별자리 일러스트가 연상되는 천체 일러스트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지난 2004년 관측된 ‘파란고리성운(blue ring nebula)’의 실체를 16년 만에 밝혔다는 내용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2003년 은하 진화를 연구하기 위해 탐사선 갤렉스(GALEX)를 우주로 보냈다. 갤렉스에는 은하에서 별의 형성 과정을 관측할 수 있는 관측 장비가 설치돼 있는데, 원자외선(파장 135~175㎚(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망원경과 근자외선(파장 175~280㎚) 망원경도 포함돼 있다.

이듬해 갤렉스가 보내온 관측 데이터에서 흥미로운 천체가 발견됐다. 성운으로 보이는 이 천체는 내보내는 빛 대부분이 원자외선 영역이었다. 원자외선은 가시광선 영역이 아니라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연구자들은 이를 파란빛으로 바꿔 시각화하며 ‘파란고리성운(blue ring nebula)’이라는 별명도 붙였다. 성운의 바깥쪽이 안쪽보다 원자외선이 더 많이 나와 마치 고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성운이 특이한 건 내보내는 빛이 초신성폭발 뒤 생긴 성운이나 행성상성운이 내보내는 빛과 성격이 꽤 따르기 때문이다. 초신성 성운이나 행성상성운은 다양한 파장대의 빛을 내보낸다. 게다가 이들은 중심에 별의 잔해가 있지만 파란고리성운의 중심에는 현역 별이 있는 것이 보였다. 연구자들은 지구 곳곳에 있는 고성능 망원경을 동원해 추가 관측에 들어갔다. 이 성운이 두 별의 병합 과정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군 태양은 홀로 있는 별이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다수는 쌍성계로 두 별이 짝을 이루고 있다. 세월이 지나 큰 쪽이 먼저 중심핵의 수소 원자를 소진한 뒤 껍질에 있는 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시작하면 외피층이 급팽창한다. 이 과정에서 두 별이 합쳐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우리은하에서만 1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밤하늘에는 이런 별이 꽤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병합된 별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별을 찾지는 못했다. 두 별의 병합 직후에는 주변에 먼지 밀도가 높아 별빛을 가려 관측이 안 되기 때문이다. 수십만 년이 지나 먼지가 흩어져 관측할 수 있게 됐을 때에는 원래부터 하나였던 별인지 병합된 별인지 알 수가 없다. 병합의 증거인 성운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연구자들은 추가 관측 데이터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해 파란고리성운이 두 별이 합쳐진 뒤 불과 수천 년이 지난 상태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파란 고리의 실체 드러나

2004년 관측된 파란고리성운은 두 별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나온 충격파로 가스가 공전면의 수직인 양방향으로 분출되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른쪽은 성운의 3차원 형태를 도식화한 그림으로 지구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마주한 두 원뿔의 축과 거의 같다. 그 결과 지구에서는 두 원뿔이 벤다이어그램의 두 집합처럼 배치돼 있다. 교집합에 해당하는 겹치는 부분에서 원자외선이 강하므로 성운이 파란 고리처럼 보인다. 네이처 제공

파란고리성운은 지구에서 6200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고 성운의 크기는 대략 13광년으로 초신성 잔해와 비슷한 규모다. 현재 성운은 초속 400㎞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고 이를 역산하면 두 별이 병합된 시기가 5000년을 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 쌍성계는 태양 질량의 1~2배인 큰 별과 질량이 그 10분의 1인 작은 별로 이뤄져 있었을 것이다. 큰 별이 먼저 중심핵의 수소를 소진한 뒤 부풀어 오르며 쌍성계가 불안정해지자 작은 별이 서서히 끌려 들어갔고 큰 별의 표면에서 나오는 가스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별은 이를 감당하지 못해 가스는 두 별의 공전 궤도 면 주위로 흩어졌다.

나선을 그리며 공전하던 작은 별이 마침내 큰 별과 충돌해 합쳐지면서 그 충격으로 가스가 공전 면과 수직인 양방향으로 분출됐다. 이 가스는 주로 수소 원자로 이뤄져 있는데 팽창함에 따라 식어 수소 분자를 형성하고 때로는 먼지로 뭉쳐지기도 한다. 이때 수소 분자의 전자가 팽창하는 경계에서 되돌아오는 충격파를 흡수해 들뜬 뒤 다시 내려오는 과정에서 원적외선 영역의 형광을 내보내는 것이다. 

양방향으로 퍼져나가는 가스는 원뿔 형태의 궤적을 보인다. 따라서 파란고리성운의 3차원 형태는 끝(사실은 출발점)이 마주 닿아있는 두 원뿔의 모습이다. 지구에서 보는 시선과 두 원뿔의 축이 살짝 어긋나 있어 파란고리성운은 고리가 연상되지만, 사실은 두 원뿔에서 겹쳐진 부분이 그렇게 보이 것이다. 

두 별이 합쳐진 뒤 수천 년이 지나며 별 가까이에 있던 가스는 거의 흩어진 데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두 고리의 진행 방향 축과 거의 같아 안쪽, 즉 고리 중심으로 갈수록 별빛을 가리는 먼지가 희박해 별을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사가 만든 동영상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고성능 지상 망원경으로 파란고리성운 중심에 놓여 있는 별(‘TYC 2597-735-1’로 명명)의 스펙트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질량이 태양의 1~2.1배이지만 지름은 11배나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표면 온도는 5850K(절대온도)로 태양과 비슷하고 별의 밝기는 태양의 11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표면적은 지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예상대로 주계열성을 지나 꽤 부풀어 오른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추가 관측 결과 병합된 별 주변에는 여전히 가스와 먼지로 이뤄진 원반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져 행성이 태어날 수도 있겠지만, 지구처럼 생명이 살 수 있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앞으로 1억 년 뒤에는 병합된 별이 핵융합 반응을 완전히 끝내고 백색왜성으로 식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두 별의 병합이 일어나고 불과 수천 년이 지난 모습을 최초로 관측하고 해석한 쾌거이지만, 덕분에 16년 전 발견된 성운에서 떠올린 파란 고리는 ‘가짜 양성’임이 드러난 셈이다. 지금 만약 다시 별명을 붙인다면 ‘파란원뿔성운’이 아닐까.

옛사람들이 별들이 우리은하의 3차원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도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별자리를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로 관계가 없는 게 분명한데 우연히 지구에서 바라본 방향에서 가까이 놓인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태양과 비교했을 때 달은 존재감이 미미한 천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태양의 양에 대응해 음을 대표하는 천체로 달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학의 발견은 때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진실을 드러내지만, 이런 과학 지식이 어쩌면 우리의 ‘시적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파란고리성운' 동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WY8J8hFHhiw 

파란고리성운의 3차원 형태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동영상이다. 성운 중심에는 가스가 희박하고 지구에서 보는 방향도 절묘해 중심의 병합된 별을 먼지가 가리지 않아 관측이 가능했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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