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디자인의 블랙홀' 한국, 그 이유 / 노은주·임형남

한겨레 2020. 11. 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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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쇠퇴해가고 있던 스페인의 공업도시 빌바오를 살려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하면 대번에 예른 웃손이 설계한 오페라 하우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도 가끔씩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초빙하여 설계를 맡기곤 하는데, 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설계가 우리나라에서 실현될 때 거치는 많은 절차로 디자인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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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쇠퇴해가고 있던 스페인의 공업도시 빌바오를 살려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하면 대번에 예른 웃손이 설계한 오페라 하우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도 가끔씩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초빙하여 설계를 맡기곤 하는데, 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디자인의 블랙홀”이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설계가 우리나라에서 실현될 때 거치는 많은 절차로 디자인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각종 위원회와 많은 관련 부서의 결재를 거치며, 디자인이 발전되기는커녕 윤색되고 퇴색하여 애초의 개념은 사라지고 원안의 반짝임은 빛을 잃게 된다. 자문, 심의 등의 명목으로 설계 과정에 배치된 참견꾼 혹은 훈수꾼들이 설계안을 여러 번 거르면서, 귤이 회수를 건너며 탱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훈수의 역사는 찬란하다. 가끔 언론 등에서 추한 건축물 설문조사를 할 때 항상 1위를 차지하는 것이 국회의사당이다. 어정쩡한 돔과 불안정하고 못생긴 비례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열주 등 ‘박쥐우산과 재봉틀이 해부대 위에서 만나’는 것 같은 이 건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60년대에 국회의사당 현상설계가 있었다. 당선안은 모던하고 날씬한 괜찮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 많은 훈수꾼들이 들어왔다. 당장 국회에 계시는 분들이 외국 사례를 들먹이며 돔을 올려라, 층수를 높여야 권위가 생긴다 등등 자꾸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러는 동안 지금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도 20여년 전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길의 현상설계에 당선되었다. 개념은 보행자를 위해 인도에 자생초 화단을 만들고 가로수를 많이 심고 차로 중앙선에도 나무를 심어 그늘이 아름다운 탐방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화단에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버리니 관리가 어렵다, 차로에 나무가 있으면 운전자의 실수로 충돌을 할 수도 있으니 없애라, 가로수는 상점 간판을 가리니 줄여라 등등의 훈수 때문에 디자인의 중요한 개념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가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원안대로였으면 나무 그늘이 깊은 탐방로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가령 누군가 요리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소금을 더 넣어라, 고추장도 넣어라 하면서 자꾸 이상한 첨가를 시킨다고 가정해보자. 결국 요리사 본인의 경험과 방식으로 잘 만들 수 있었던 음식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탕이 된다.

최근에도 국립도시건축박물관 설계 당선작에 외국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선정됐다. 부디 훈수와 간섭 없이 원래의 취지와 개념이 잘 살려진 훌륭한 작품으로 완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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