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출장가는 남편 피임기구 챙기는 게 아내의 지혜?

김영록 2020. 11. 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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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출장 가는 남편에게 피임기구 챙겨줘야…"

부산의 한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학생 A 씨.

지난달 온라인수업을 듣던 중 A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병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던 교수가 갑자기 성매매와 성 접대를 정당화하는 듯한 이야기를 시작한 겁니다.

해당 교수는 성병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며 "남자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외국 출장 등을 가면 접대를 받거나 매춘부하고 관계를 많이 한다. 성적인 욕구를 발산하기 위해서…. 그럴 때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수업을 이어가면서는 교수는 "우리 여학생들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까. 결혼해서 남편이 해외출장을 간다 하면 반드시 콘돔을 챙겨주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국 출장 가서 외국 사람들과 술 마시다 보면 술에 취해서 그냥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남성들이 해외 출장 등을 가면 어쩔 수 없이 성 접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투로, 마치 성매매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또 "남편한테 만약에 당신이 접대를 받거나 할 경우에는 반드시 거절하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때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지혜를 갖고 말할 수 있는 아내가 돼야 한다"며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이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 "남성과 여성 인권 모두 모독한 것"

이 수업은 학과 전공 선택 과목입니다. 55명 가량이 수업을 듣는데 이 중 80%가 여학생입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이 수업은 사전에 녹화해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A 씨는 해당 교수의 발언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항의하고 싶었지만, 온라인수업이라 다른 학우들의 의견을 알 수 없어 마음속으로 불만을 삭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A 씨는 "매춘부라는 단어가 나올 때부터 불편했다. 그런데 이런 성 접대가 성매매다. 이런 불법적인 행위가 당연하게 일어나야 하고 이걸 이해해야 하는 지혜로운 아내가 되라고 재차 강조하는데 여성과 남성 인권을 동시에 모독하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교수가 지도자 입장으로 학생을 가르치는데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화가 나고 불편하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이런 수업을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 "성병 예방차원에서 한 이야기일 뿐"

해당 교수는 취재진에게 "성매매와 성 접대를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성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피임기구를 써야 한다고 설명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이 수업을 계속 해왔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다. 불편해하는 학생이 있다면 앞으로 관련된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학 측은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며 내용이 확인되면 관련 규정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현재 해당 수업 영상은 삭제된 상태입니다.


■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성인지 감수성 차이 여실히 보여준 것"

녹화가 버젓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해당 교수는 성 접대, 성매매를 정당화 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발언이 전혀 문제 될 것 없다고 판단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높아진 성인지 감수성을 기성세대가 따라오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수의 발언을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는데 정작 교수는 자신의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함께 성·가정 상담센터' 서은정 교육팀장은 이처럼 대학교나 중·고등학교 수업시간 중 교사나 교수가 무의식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 발언을 해 상담을 하는 사례가 꽤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종종 대자보를 통해 사회에 알려지기도 하고 학생들이 직접 교육청 등에 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학생보다는 교수나 교사의 입장에 서서 이런 일을 그대로 묻어버리려고 하거나 사과를 해도 의례적인 행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젊은 세대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교수 등의 사회 지도층이 잘못된 생각과 잣대로 특히나 민감한 주제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건 옳지 않을 겁니다.

김영록 기자 (kiyur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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