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문화 시점>요즘 자기계발서 트렌드는 '체념'.. 애쓰지 않는다고 행복할까

박동미 기자 2020. 11. 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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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경쟁·과로에 지친 젊은 세대

‘열정 호구’키운 시스템 거부감

문제 해결대신 요령 위주 조언

“게으르게 일하며 책임감 얇게

근성론은 한귀로 듣고 흘려라”

일상 빈둥거림에서 행복찾기

식견·통찰 녹아든 심리서적도

번아웃·인정욕구 등 문제 분석

인간관계의 연결감 회복 강조

한쪽에선 바쁘게 보낸 오늘 하루가 미래를 약속해 준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선 빈둥거린 오늘 하루가 정신 건강을 지켜준다고 조언한다. 이들은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기계발서 시장을 키워냈다.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는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안’은 극과 극이다. 한쪽에선 어제보다 더 힘을 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어제보다 힘을 덜 쓰라고 한다.

이들 양극 사이에서 요즘 대세는 ‘열정 호구’로 소비되지 말고, 자신을 지키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로 20∼30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김수현 작가의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바다 건너 일본 청춘들까지 보듬고 있다. 최근에 쏟아지고 있는 자기계발서를 살펴봤다.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과연 무엇을 계발시킬까 의문이 드는 지점도 있다.

◇열정 호구 주의보 = “누가 요즘 그렇게 회사를 다닙니까?” 회사 일에 열정과 감정을 쏟아붓는 당신에게 일침을 날리는 책 ‘회사에서는 아웃싸이더 되기’(여가)는 회사를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매일 일어나는 곳으로 본다.

저자는 “흥분하지 말고 그러거나 말거나” 한 자세로 한발 떨어지라고 말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에서는 이것저것 그냥 끄적이면서 버티고, 업무 목표는 처음 생각한 것보다 50% 낮게 세우고, 일은 빨리할수록 늘어나니 좀 게으르게 보일 정도로만 일하라고 조언한다. 책임감이 강하면 다른 팀이나 다른 회사로 옮길 기회를 잃을 수 있으니 책임감은 얇게 가지는 게 좋다고 말한다. 회사에선 ‘아싸’지만, 회사 밖 삶은 ‘인싸’로 만드는 ‘요령’이라고 한다.

‘젊어서 고생, 노 생큐’를 외치는 책 ‘도망치는 게 어때서’(인플루엔셜)도 같은 맥락의 책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일본 만화가가 남긴 메시지를 엮은 책이다. 그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다며 ‘지루하고 불편한 사람과는 엮이지 말라’ ‘너도 할 수 있다는 연장자의 ‘근성론’을 무시하라’ ‘일을 고르지 말라는 꼰대들은 틀렸다’ 등 솔직한 ‘사이다’ 발언을 날린다. 저자는 말한다. “고생을 한다고 인간성이 길러지지 않는다. 불필요한 고생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빈둥빈둥 포터링 = 정해진 계획이나 목표 없이,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위로를 얻으라는 책도 있다. 이런 행위를 뜻하는 포터링(pottering)이 그대로 제목이 된 책 ‘포터링’(유영)은 ‘빈둥거림’에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절대 힘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 모토는 ‘노력은 적게, 만족은 크게’. 스타들의 일상 속 ‘사부작거림’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온앤오프’ 등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일종의 대리 포터링으로 해석된다.

가속화되는 경쟁사회에서 ‘애쓰지 마라’는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된다. 이 위로에 기대 한 걸음 더 나간 ‘빈둥거림’은 열정 호구로 소비돼온 청춘의 반작용으로 읽히기도 한다. 어떻게든 나를 소진시키지 않을 요령을 배우겠다는 심리인데, 그들이 탓하는 ‘남’은 기존 시스템의 모순을 해결 못하고 팍팍한 현실을 고스란히 물려준 기성세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상대가 이상한 것”이라며 모든 에너지를 남 탓으로 돌리면, 언제, 어떻게 나를 성찰할 수 있을까.

◇그 가운데 무게중심 = 우아하게 빈둥거리는 법이나 열정 호구가 되지 않는 법을 알려주진 않지만, 그 근원을 파고드는 책도 가끔 눈에 띈다.

최근에 출간된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창비) ‘나 좀 칭찬해줄래?’(타인의사유)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심리학을 권합니다’(메이트북스) 등은 정신과 의사나 전문 상담사들의 식견과 통찰이 담겼다. 기울어진 자기계발서 시장에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이들 책 속에서 요령 중심의 자기계발서가 범람하게 된 배경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SNS 등을 통해 발화되는 ‘인정 욕구’와 스트레스로 오는 ‘번아웃’이 어떻게 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는지 분석하며, 해결책으로 싫은 사람 상대 안 하기나 일 적게 하기 등 단선적 방안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감’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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