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택배 노사정 대화, 과연 잘 될까

권오은 기자 2020. 11.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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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에 있는 CJ대한통운(000120)의 택배 서브터미널.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소속 6명의 회원들이 찾았다. 이 대책위원회는 참여연대와 전국택배노동조합 등이 만든 단체로, 올해 15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했다고 주장해왔다. 대책위 회원들은 한시간 넘게 머물다가 택배 서브터미널을 떠났다.

CJ대한통운은 ‘무단침입’이라고 주장했다. 허가 없이 택배 서브터미널에 들어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체계를 무력화시켰다고도 했다. ‘강한 유감’이라는 표현과 함께 법적 책임도 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현장점검’이라고 맞받았다. 약속했던 택배 분류 지원인력을 투입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들어갔다는 것이다. 6명 가운데 4명이 노조 소속인 만큼 문제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회사가 마스크 하나 제대로 나눠주지 않으면서 코로나 방역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이라고도 했다.

택배노조와 물류회사가 맞선 것은 이날 뿐만 아니다. 택배기사 과로 문제를 두고 늘 주장과 반대가 따라붙는다. "택배기사의 분류 지원업무가 전체 업무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노동계 주장엔 "과장된 수치"라는 업계의 반박이 나온다. 반대로 업계에서 "택배기사의 평균 소득이 550만원"이라고 이야기하면 노동계는 "기름값과 보험료 등 비용을 떼고나면 300만원도 못 건진다"고 한다. 업계에선 "비용을 중복으로 계산해 나온 억지"라고 재반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12일 택배기사 과로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사업주 조치의무가 강화됐고, 주5일제 근무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인 노동환경 개선방안과 택배가격 구조 개선 문제는 가칭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협의회’를 구성해 다루기로 했다. 이 협의회에는 고용노동부와 택배관련 노조, 택배 업계가 참여할 예정이다. 택배판 노·사·정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2주가 지났고 아직 협의회 이름도 확정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국회 을지로위원회 등이 함께 협의회 구성을 고민하고 있다. 구성원으로 업계 대표 단체가 들어갈지, 택배회사별로 대표자를 세울지 등도 논의 중이다.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지만 당장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부터 나온다.

크게 두가지다. 우선 법적 기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에서 법률을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닌 만큼 협의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예를 들어 택배 단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라고 ‘권고’하더라도 경쟁이 치열한 택배업계 상황을 볼 때 얼마나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마저도 결론이 나왔을 때 일이다. 법률에 근거한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도 민주노총이 참여를 거부하면서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이 좌초될 위기를 겪었다. 올해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또 다른 우려는 협의회 구성이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말이 노·사·정 대화이지 사실상 노동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전국택배연대노조는 벌써 협의회 이름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 공동위원회’라고 지었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는 물론 택배회사와 통합물류협회,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등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성공한 해외 노·사·정 대화 사례는 하나같이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무단침입’과 ‘현장점검'이라는 단어의 차이만큼이나 먼 노사에게 찾아보기 어려운 자산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협의회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기 싫어 노·사·정 대화로 일을 떠민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만큼 택배기사의 과로는 길어지고 대안은 희미해진다. 차라리 각 회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업무량 조사 결과를 기대하는게 현실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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