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아플 틈'에 대한 합의 / 박은진

한겨레 2020. 11.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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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캐나다에서 1년 동안 홈스테이를 했는데, 호스트 가족의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에이든이 학교에 결석한 적이 두번이 있었다.

한번은 교사들이 노동권을 위해 파업을 했을 때 지지 표시를 하기 위해서고, 다른 한번은 감기에 걸려서다.

엄격한 한국 문화에서 감기로 결석하는 것은 꿈꾸지도 못했다고 하자, 에이든의 부모님은 당신 세대 때만 하더라도 그랬다고 공감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결석한다는 합의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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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진ㅣ 20대·취업준비

대학생 때 캐나다에서 1년 동안 홈스테이를 했는데, 호스트 가족의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에이든이 학교에 결석한 적이 두번이 있었다. 한번은 교사들이 노동권을 위해 파업을 했을 때 지지 표시를 하기 위해서고, 다른 한번은 감기에 걸려서다. 에이든은 그날 저녁 식사도 부모님이 가져다준 끼니로 방에서 혼자 먹었다. 가족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 엄격한 한국 문화에서 감기로 결석하는 것은 꿈꾸지도 못했다고 하자, 에이든의 부모님은 당신 세대 때만 하더라도 그랬다고 공감했다. ‘아파도 학교에서 쓰러져라’와 거의 비슷한 영어식 표현이 그들 입에서 나와 깜짝 놀랐다.

‘다른 세계’의 기억을 떠올린 건 고 박지선씨가 2012년 김두식 교수와 진행한 <한겨레> 인터뷰를 읽고서다. 고인의 생전 아픔을 헤아릴 바가 없으나, 그의 생애에 공감해보고자 그가 남긴 말과 흔적들을 찾아봤다. 사회 구조를 짚는 글로 고인을 추모하고자 하지만, 이 또한 나의 단정일 수 있음을 밝힌다. 기고로 인해 혹여 유족과 그의 동료, 그를 실제 아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부정적 파고를 일으켜 그들의 몸과 정신을 울렁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휴학 기록이 남으면 인생에 불리하대요.” 그의 말이 유독 가슴 아팠던 것은 우린 같은 동네 이웃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약 10학년 차이 나지만, ‘아파도 학교에서 쓰러져라’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2009년 전세계를 휩쓸었던 신종플루에 걸린 날, 난 학교에 갔다. 아니, 언제 걸렸는지 모르겠으나 열이 난 채로 등교했고, 오전 수업을 듣고 조퇴한 후에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편하게 아프지도 못했다. 친구들에게 옮기면 어떡하지가 아니다. 수행평가가 몰려 있는 주여서 걱정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결석한다는 합의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아프면 내 손해.’ 외려 경쟁 사회가 만든 합의는 이것이다.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에 모자라 아예 체화한 다짐이다. 경쟁 사회에서 ‘아플 틈’은 주어지지 않는다. 입시, 취업, 승진 등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우리를 뒤로 밀어내는 어떤 힘으로 작용한다.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 박피 시술을 여러 번 빠르게 선택한 박지선씨의 반대편엔 이를 권한 병원이 있다. 아프고 난 뒤 새 삶을 얻은 것 같았다는 박지선씨는 임용시험, 연예계 사회 등 또 다른 치열한 경쟁을 경험했다. 어쩐지 내 삶을 미리 엿본 것 같아 서글퍼졌다.

어떤 틈이든 그 작은 균열도 없는 사회에선 극단이 쉽게, 자주 노출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19) 저자 조한진희는 ‘아플 틈’을 ‘질병권’이란 새로운 합의로 제언했다. 질병은 극복하고 건강을 추구해야 하는 이분법적 세계에서, 그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 건강의 나라가 아니라 아픈 상태로도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에서 특히 젊은 여성들의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듯, 우리 사회는 힌트를 얻어야 한다. 대체 우리는 인생에서 쉴 틈을 찾지 못해 영원한 쉼을 택한 이들을 얼마나 만나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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