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 돈만 버는 비즈니스는 잊어라..'착한' 기업가들 시대

신현규 2020. 11. 2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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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아이스크림사 '벤&제리스'
흑인 시위운동 기업차원 지지
세일즈포스 마크 베니오프 CEO
"트럼프 반인종 발언 검열않나"
페북 등 소셜미디어회사 비판
친환경 의류 '파타고니아'
유기농 비누 '닥터 브로너스'
윤리적 기업철학에 응원·지지
1973년 미국,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청년 '벤 코언'과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청년 '제리 그린필드'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실패자였다. 코언은 대학을 중퇴했고, 그린필드는 의대 입학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뭘 할까' 고민하던 두 사람 눈에 지역 전문대에서 하는 아이스크림 제조 강의 안내문이 들어왔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강의 들을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한 사람분만 등록한 다음 내용을 노트해서 서로 공유했다.

코언은 지난 17일 실리콘밸리 지역에 위치한 케플러재단 초청 강연에 등장해 "성적은 좋았다"며 "오픈북 테스트였기 때문"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미국 버몬트주에 위치한 벌링턴이라는 동네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한다. 우리나라에도 편의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미국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제리스'의 시작이었다.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면서 회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언은 회사가 커질수록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스크림 맨이 아니라 비즈니스 맨이 돼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을 고용하고 해고하고, 싸움이 생기면 변호사를 부르는 과정에서 그는 "경제라는 기계 톱니바퀴 속에서 원래 사람을 위해 좋은 아이스크림을 만들려던 생각이 찌그러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회사를 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침 어떤 식당에 들어가 식당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코언이 '비즈니스 문제로 회사를 팔아야겠다'고 하자, 식당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오늘날 비즈니스에는 문제가 많네요. 회사를 팔지 말고 당신이 그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해 보면 어때요?"

그렇게 오늘날 벤&제리스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사회적 기업 중 하나가 됐다. 특히 올여름 있었던 흑인들의 사회적 운동 '블랙라이브스매터(Black Lives Matter)'를 회사 차원에서 지지하는 선언을 하고 관련 제품을 내놓으면서 화제가 됐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검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던 페이스북을 상대로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제품을 애용하는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코언 창업자는 "골수 트럼프 지지자들이 벤&제리스 아이스크림에 대해 가질 반감은 고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의 판단은 정의에 기반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가 보는 현실은 트럼프가 정의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 따를 뿐"이라고 했다. 청중 한 명이 "하지만 이견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묻자, 코언은 이렇게 답했다. "이견이 없는 사항이라면 자신의 입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견이 있기 때문에 입장이 중요한 것이다."

통상적인 기업들은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목소리를 높여서 볼 손해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이 현명하다는 게 비즈니스 업계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식을 깨는 기업이 최근 미국에서 다수 관찰되고 있다. 벤&제리스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정보기술(IT) 회사 세일즈포스 역시 그런 회사 중 하나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창업자는 오라클에서 잘나가던 임원으로 있던 시절,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휴직했다가 회사를 창업한 사례다. 세일즈포스를 만들면서 가장 역점을 뒀던 것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였다. 베니오프는 저서 '트레일블레이저'를 통해 세일즈포스 직원들이 모두 지역사회와 공동체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개척자가 되면 좋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회장이 진행하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 출연해 "사회적 신뢰가 우선이지, 기업의 이익이 우선은 아니다"며 "그런 점에서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직무를 유기했다"고 비판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도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 다른 캘리포니아 소재 비누 제조 회사 '닥터 브로너스'도 친환경 소재만 사용하는 동시에 지구온난화, 유전자변형식품 등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공정한 음식 이니셔티브(EFI)의 르앤 류자멘티 디렉터는 현지에서 열린 한 이벤트에서 "소비자들은 점점 기업이 나서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해주길 원하고 있다"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그런 경향은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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