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우리 이혼했어요”

한현우 논설위원 2020. 11. 24.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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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뉴욕에 처음 갔을 때 지하철 안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를 봤다. 광고 내용은 ‘재산 분할에서 양육권까지 최고의 승소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혼 ‘잘’ 시켜주겠다는 광고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러나 한국 TV에서도 이혼 전문 변호사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런 광고가 흔해지기까지 그로부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해 요즘 어디 사느냐고 물었더니 오피스텔에 산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망설이지도 않고 “이혼했다”고 했다. 어떻게 연락 한번 없었느냐고 하니 뭘 그런 걸 친구하고 상의하느냐고 했다. 199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이혼은 마치 ‘전과’처럼 숨겨야 하는 일이었고 특히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손가락질을 받곤 했다. 이혼을 무조건 여성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칠거지악’까지 정해놓았던 조선 시대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작년 국내 이혼 건수는 11만800건으로, 10년 전(12만4000건)보다 줄었다. 그러나 그 사이 결혼 건수가 20% 넘게 줄었기 때문에 3명이 결혼하는 것과 동시에 1명 이혼하던 것이 2명 결혼할 때 1명 이혼하는 셈이 됐다. 50세 이상 황혼 이혼도 폭증해 평균 이혼 연령이 20년 전 남자 36.8세에서 작년 48.7세로 열두 살이나 많아졌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면서 황혼 이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이렇게 90세까지 살 수는 없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TV조선 새 프로그램 ‘우리 이혼했어요’가 첫 회 최고 시청률 14.7%를 기록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 정도 시청률은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이 프로에 출연한 이영하·선우은숙 커플은 결혼할 때 아홉 살 차이 스타 부부라서 큰 화제였다. 이들이 이혼하던 2007년만 해도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 사과’ 같은 걸 했다. 그 사이 정말 세상이 바뀌었다. 이혼한 지 7개월 됐다는 젊은 커플은 마치 지금도 연애 중인 듯 발랄한 모습이었다. 이혼에 대한 세상 인식의 극적인 변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혼 신고서에 기재돼 있는 이혼 사유 일곱 가지 가운데 ‘성격 차이’가 늘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성격 차이’라는 네 글자에 수많은 사연이 담겨있을 테지만 과거엔 참고 사는 게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연예인끼리 가상 부부가 돼보는 프로 ‘우리 결혼했어요’가 히트 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그 정반대로 실제 이혼 커플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가 등장해 최고 시청률을 올렸다.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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