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1조원짜리 공원 필요한가
서울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부영의 용산구 한남동 한남근린공원,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삼표레미콘 부지. 현재 서울시의 쇼핑 카트에 담겨 있는 주요 리스트다. 시는 이 카트에 담긴 땅을 모두 사서 공원을 만들 생각이다. 세 곳 모두 땅값이 대략 3000억~4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서울시가 카트를 싹 비우기 위해 기업에 쥐여줘야 하는 돈이 최소 1조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모두 박원순 시장이 사망하기 전부터 추진됐던 일이다. 논란의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처럼 시장이 없는 지금도 시 공무원들이 “시민들이 원한다”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1조원짜리 공원 쇼핑에 나서는 시의 자금 사정은 엉망이다. 서울시는 올해 코로나 확산에 따른 피해를 막느라 긴급 재난지원금이나 소상공인 생존자금 등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만 4조원 이상 썼다. 반면 메워야 할 구멍은 커졌다. 작년 11월 13조8000억원이었던 서울시 채무는 최근 15조8000억원으로 약 2조원이나 늘었다. 버스·지하철 분야에서 올해 적자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한다. 코로나로 승객이 줄어든 탓이다. 요금을 올리거나 정부에 손을 벌려야 할 판이다.
갑작스러운 지출이 생기고 적자가 커지면 기회비용을 따지며 씀씀이를 고치는 게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다. 1조원짜리 공원 대신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서울시는 내년에 2000억원을 투자해 청년 일자리 약 1만4000개를 만든다 한다. 공원 3개 만들 돈이면 청년 일자리 7만개로 미래에 투자할 수 있다. 전세난, 집값 폭등에 시달리는 신혼부부에게 6500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초등학생 돌봄 키움센터는 481억원을 들여 57곳을 더 만들 계획인데, 1조원으로는 1200곳을 지어 맞벌이 부부 근심을 덜어줄 수 있다.
여론조사를 하면 시민들은 당연히 공원을 원한다고 할 것이다.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 옆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틈만 나면 미세 먼지가 일고, 인구 밀도가 높은 빡빡한 서울살이를 하는 시민들에게 공원이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공원에 세금 1조원을 쏟아붓기에는 고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하루하루 일자리가 절실하고, 돌봄이 필요하고 머물 집이 필요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발 인·허가권을 시가 쥐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자기 땅을 개발할 때 시가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수천억원을 들여 굳이 땅을 사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한번 결정하면 돌이키기가 어렵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하고 책임 소재도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서울시를 보면 책임자인 시장이 없는 특수 상황인데도 수백억~수천억원짜리 의사 결정이 오히려 더 속도를 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잠시 숨을 가다듬어도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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