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오전엔 "연락사무소 재설치" 오후엔 "北관광 준비"
최근 대북 백신 지원을 비롯해 각종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제안해온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3일 5개월 전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재건과 평양·개성·신의주 무역대표부 설치를 제안했다. 4대 기업 경영진 등과 가진 간담회에선 ‘남북 경협이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정부와 기업이 역할 분담을 통해 남북 경협의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장관의 ‘대북 러브콜’이 6·25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가 유린당한 연평도 포격 도발 10주기에도 이어진 것을 두고 외교가와 야권에선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일부는 “장관의 일정이 우연히 연평도 포격 10주기와 겹쳤다”고 해명했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 토론회에서 지난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너무나 무책임한 장면”이라며 “아주 잘못된 행위”라고 했다. 이어 “오늘은 연평도 포격 10주기의 날이기도 하다”며 “희생된 장병과 민간인의 죽음을 추모한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무너진 연락사무소를 적대의 역사에 남겨두지 않고 더 큰 평화로 다시 세워나가야 하겠다”며 “서울-평양 대표부를 비롯해 개성, 신의주, 나진, 선봉 지역에 연락소와 무역대표부 설치도 소망해 본다”고 말했다. 외교공관이나 마찬가지인 연락사무소를 형체도 없이 파괴한 북한의 사과 한마디 없는 상황에서 ‘재건’을 넘어 제2, 제3의 연락사무소를 거론한 것이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는 국민 세금 180억원이 투입된 우리 재산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우리 영토(연평도)에 포탄 수백발을 쏟아부은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도발”이라며 “북한이 공무원 총살에 대해서도 적반하장 식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최우선시해야 할 국무위원이 남북 협력만 강조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이날 이 장관은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 때 방북한 4대 기업의 경영진과 경총 등 경제단체 회장단, 현대아산 등 남북 경협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장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 핵능력 감축을 조건으로 정상회담의 여지를 남겨뒀다”며 “더 유연한 접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했다. 이어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우리에게 더 좋은 기회”라고 했다.
이를 두고 “제재와 보텀업(상향식) 외교 중심의 대북 정책을 예고한 바이든 당선인의 구상과는 동떨어진 아전인수 해석”이란 지적이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에 내정됐다고 외신들이 이날 보도한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 역시 북한의 정권 교체와 철저한 제재 이행을 줄곧 강조해 왔다.
이 장관은 또 “(3중고에 시달리는) 북한은 내년에 경제적 성과 창출에 훨씬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남북 경협의 문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개별 (북한) 관광이나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사업 재개 등과 관련한 과제들을 착실히 준비하고, 작지만 호혜적인 경협 사업을 발굴·추진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 경협의 비전과 대응을 위한 기업과 정부 간의 정례화된 만남”을 제안했다.
이 장관의 발언에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며 “남북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해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말만 믿고 부화뇌동하다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 대상이 된다는 걸 기업들은 잘 안다”며 “이 사장의 발언엔 이 같은 우려가 녹아있다”고 했다.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에서 “연락사무소를 형체도 없이 폭파하고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불태워도 이 정부는 잠잠하다”며 “국민의 죽음엔 등을 돌리고 종전선언이라는 허상만 좇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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