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원칼럼] "로마는 하룻저녁에 무너졌다"

강호원 2020. 11. 2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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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2년 반.. 허물어진 '원전 입국'
기술자는 흩어지고 기업은 줄도산
"이젠 '원전 대국' 꿈꾸지 못할 것"
문 대통령 탈원전 반드시 심판해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래된 서양 격언이다. 제국을 건설하고 지키고자 애썼을 로마인들. 그 말을 가슴에 새겼을 테니, 천년을 이어온 경구인 듯하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도 이 말을 1권 부제로 삼았다. 반면 이런 말도 있다. “로마는 하룻저녁에 무너졌다.”

쌓기는 힘들어도 무너지기는 쉽다. 로마만 그럴까. 동서고금 어떤 역사를 봐도 그렇다.
강호원 논설위원
패망의 역사. 역사책에 나오는 무수한 패망사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패망은 ‘자기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아널드 J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 이렇게 썼다. “문명의 쇠망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창조적 소수자가 사명감을 잃고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하는 순간 쇠망은 시작된다.”

‘탈(脫)원전’ 재앙. 유령처럼 밀려드는 쇠망의 전조다. 왜 그럴까. 에너지 없는 나라에는 미래도 없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 그런 황무지에서 에너지 독립의 꿈을 키운 산업은 바로 원전이다. 닻을 올린 1971년. 그해 원전 건설을 계획했다. 기술도, 자본도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고리 원전 1호기를 완공했다. 5년 뒤는 월성 원전 1호기도 세워진다. 문재인 정권이 경제성을 조작해 조기 폐쇄한 바로 그 원전이다.

원전기술 개발 몸부림도 시작됐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등장하는 이휘소 박사는 헐벗은 조국을 위해 귀국한 핵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다. 수많은 공학자와 기술자들이 힘을 모아 세계적인 원자로 APR-1400도 만들었다. ‘50년의 피땀’이 일군 성과다.

원전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왜? 값싼 에너지를 공급할 길이 없으니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킬 수 없으며, 수출 경쟁력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출대국? 그런 명칭도 별나라 이야기로 변하고 만다. 그러기에 “한국의 경제개발사는 원전의 역사”라고 한다.

공든 탑은 허물어지고 있다. 2016년 말 영화 ‘판도라’를 본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영화 속 ‘허구’가 남긴 감명 때문일까, ‘원전 제로’를 외쳤다. 원전 폐기가 대통령이 된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이후 원전산업의 뿌리는 송두리째 뽑히고 있다.

탈원전 2년 반, 쑥대밭으로 변했다. 기술자는 쓸모없는 잉여인력으로 변하고, 원전 기업은 줄줄이 문을 닫는다. 원전 관련 공기업과 민간기업에서는 기술자와 공학자의 탈출이 이어진다. 대학·대학원 원전 관련 학과에는 파리만 날린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원전 산업도 돌탑을 쌓듯 수많은 인재와 기업들이 모여 사슬을 이루며 거대한 산업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한 축이 무너지면 전체가 붕괴한다. 이런 말을 한다. “탈원전으로 이젠 APR-1400조차 제대로 만들어 팔 수 없을 것”이라고.

탈원전. 그것은 국가 운명에 재를 뿌린 정책이다. 반시장·친노조·반기업 정책에 매몰돼 나라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탈원전 하나만 놓고 봐도 나라 운명은 기울고 있다.

왜 이리도 터무니없는 일을 벌일까. 탈원전을 외치면서 북한 핵무기 개발에는 아예 입을 다문 문재인 정권. 탈원전으로 원전 산업의 뿌리를 뽑으면서 북한에는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을 수사하는 검찰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증거 은폐를 위해 삭제한 444개 파일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북한 원전 건설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10여건의 비밀 보고서를 찾아냈다고 한다. 우리의 원전은 없애고 북한에는 원전을 세워주겠다니, 대체 누구에게 봉사하는 정부인가.

추미애 법무장관은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을 수사하는 대전지방검찰청 수뇌부를 핀셋 인사할 것이라고 한다. 수사를 막아 또 진실을 감추겠다는 것인가. ‘살아 있는 권력’의 비위를 감추는 검찰개혁 구호의 민낯은 또 드러난다.

탈원전 수레바퀴는 구르고 있다. 토인비는 기술발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노 젓는 손을 멈추면 패하고 만다.” 창조력을 잃고 화석화한 정치집단의 탈원전 이념. 재앙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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