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매일 배달되는 아침

남상훈 2020. 11. 23. 23:3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뒷목에 빨대를 꽂아 나를 빨아먹는 그대,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고소합니까.

몸뚱이에 인쇄된 생의 이력, 가늘고 굵고 검은 선들이 모여 내 생의 이력을 저장하고 있는 바코드를 섬광이 스치고 지나가며 내 유통기한을 들켜버린 신(神)의 계산대에 나는 얼마를 치르고 지나온 것일까.

그대의 손에 내가 들릴 때, 설레던 느낌은 한 모금씩 사라져가고 알맹이가 빠져나간 뒤 사정없이 버려지는 몸뚱이가 가볍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변종태
뒷목에 빨대를 꽂아 나를 빨아먹는 그대,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고소합니까.
만족한 표정으로 입가에 허연 거품을 묻히며 빡빡 소리가 날 때까지 빨아대면
내 몸은 쭈글쭈글 낡아갑니다.
몸뚱이에 인쇄된 생의 이력,
가늘고 굵고 검은 선들이 모여
내 생의 이력을 저장하고 있는 바코드를
섬광이 스치고 지나가며 내 유통기한을 들켜버린
신(神)의 계산대에 나는 얼마를 치르고 지나온 것일까.
그대의 손에 내가 들릴 때,
설레던 느낌은 한 모금씩 사라져가고
알맹이가 빠져나간 뒤 사정없이 버려지는
몸뚱이가 가볍습니다.
맛있었지요?
우리에겐 날마다 아침이 배달됩니다.

배달되는 그 아침 시간 때문에 우리 몸은 쭈글쭈글 낡아갑니다.

가늘고 굵고 검은 선들이 모여 생의 이력을 저장하는 바코드처럼

우리는 유통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바다에 발을 담근 채 키가 자라는 순정한 해당화,

눈 속에서도 발갛게 피는 동백들,

설레며 활짝 피어났으나 어쩔 수 없이

지는 찰나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꽃들같이 우리 생도 지고 말지요.

어느새 신의 계산대 앞에 선 저녁,

생을 바라보는 설레던 느낌이 사라지면서

영혼의 무게만 남고 몸뚱이는 가벼워졌습니다.

저녁 시간이여! 우리, 멋있게 살았나요?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