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관습 깃든 '동질성' 맞춰 통일문화부터 가꿔야 한다"

김경애 2020. 11. 2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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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의 평화에 미치다]1980년대 방북 초기 10차례 느낌은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충격
한때는 '이북 사람이 살고 있구나'
마침내 '우리 민족이 살고 있구나'
'같은 언어' 통일 초석이자 자산
4·27 정상회담 때 '도보다리' 산책
"두 정상 통역 없이 직접 소통 가능"
'역사적 경험' 통일 당위성 정당화
'단군신화' 민족의 기원으로 공유
2014년까지 개천절 남북공동 기념
'같은 음식' 생활방식·정서 비슷
'양심' 사람다운 절대가치로 중시
길을 찾아서-44회 나의 통일론 (하)
박한식 교수는 평생 탐구해온 ‘평화학’의 시각에서 도출해낸 ‘변증법적 통일론’의 근거로 남북한의 동질성에 주목한다. 남북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같은 언어, 관습, 생활방식, 가치관 등을 지닌 한민족으로서 ‘통일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통역없이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 판문점공동취재단 제공

지난 40여년간 북한을 50여 차례 방문했다. 한번 방문에 짧게는 3박4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머물렀다. 나의 ‘평화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북한을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옳게 알고 싶었다. 북한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에 가서 그곳의 현실을 직접 관찰하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야만 남북한 통일과 평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방문이 거듭되면서 북한 체제와 사회, 그리고 북한 인민들에 대한 나의 감상과 소회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10차례 정도 방문했을 때는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우리처럼 매일 저녁 찬거리 걱정도 하고 자녀의 학교 성적에 기대와 걱정도 하고 일요일이면 ‘가족 나들이 한번 가볼까’ 하는 계획도 한다. 여름밤 대동강변은 젊은 남녀들의 거대한 데이트 장소로 변한다.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철저한 반공 교육과 미국의 북한 악마화로 인해 세뇌되었던 나의 무지와 편견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북한을 20차례 정도 방문했을 무렵에는, 북한에는 ‘이북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북한 체제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남한과의 현저한 이질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연재에서 상세히 소개했듯이,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조선식 사회주의에 입각해서 인민들의 생활이 영위되고 있었다.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집단소유제를 채택함으로써, 그리고 필요에 따른 분배를 실천함으로써 평등이라는 목적 아래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또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체주의 의식 속에 철저히 세뇌되어 살고 있었다.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를 초월해서 당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민족 같은 집체의 이익이 우선되며, 개인이 집체의 이익에 공헌할 때 비로소 바람직한 생명체가 된다는 인식이 철저히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배격과 반미주의를 내세운 철저한 민족주의 아래 모든 일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생존 위협에 응전하는 역사를 살아야만 했던 북한은 가혹한 국제정치적 투쟁의 역사를 걷는 가운데 강력한 민족주의를 탄생시켰고,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북한의 민족주의는 극단적인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과 기름처럼 전혀 융화될 수 없을 것 같은 남과 북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방문이 거듭될수록 북한에도 조선 민족, 즉 ‘우리 민족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랜 갈등과 반목, 그리고 분단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공유하고 있는 상당한 동질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난 연재에서, 남과 북이 서로의 이질성을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이질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며, 그 이질성을 평화적으로 조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통일의 길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남북한이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동질성을 발견해서 꾸준히 진작시키는 노력도 이질성의 조화만큼이나 통일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서로의 동질성을 학교 교육, 사회 교육, 언론을 통해서 알리고 국민(인민)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통일 교육이고 이것이 바로 통일문화 조성의 핵심이다. 통일문화는 통일 뒤에 만들거나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통일 과정에서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자리잡은 통일문화는 남북한의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 마련한 통일제도가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버팀목이며, 더 나아가서 통일 뒤에 진정하고 완전한 민족 통합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다.

75년 동안 헤어져 살았어도 누가 뭐래도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고 정체성을 공유하는 단일 민족이다. 남북의 동질성은 민족의 깊은 관습(Ethos) 속에 내재되어 있고, 이것은 자본주의-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처럼 교육이나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서 단시간 안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민족의 관습은 가치와 규범에 대한 믿음 체계이며 수백년 또는 수천년의 세월을 통해 집단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한 개인이나 정부가 변화시키거나 없애버릴 수 없는 영속성을 지닌 민족의 기풍 또는 정신이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통역없이 단독 대화를 수십분간 나눠 국제사회에 남북한이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임을 각인시켰다. 사진 판문점공동취재단 제공

내가 느낀 남북의 동질성은 크게 세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는 언어가 같다. 과학철학적 인식론의 시각에서 볼 때, 남북한의 언어가 같다는 것은 사고방식, 의식 구조, 가치관 등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을 방문하면서 사실 걱정했던 것 중의 하나가 혹시 말이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중·고교 시절 받았던 반공 교육을 통해 북한의 언어가 많이 이질화되어서 남한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배웠고, 특히 내가 미국에 오래 거주한 터라 나의 우리말 구사 능력이 조금은 걱정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북한에 가서 북한 관리들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단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없었다. 또한 북한 사람들 중에 나의 억센 경상도 억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남과 북 사이에 단어나 표현들이 조금씩 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화장실이라고 표현하지만 북한에서는 위생실이라고 부르고 남한에서 상호관계는 북에서는 호상관계다. 한가지 생소했던 것은 북한 사람들이 ‘인차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남한에서 ‘곧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맥에서 이해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2018년 도보다리에서 배석자나 통역 없이 30분 동안 이루어졌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둘만의 대화는 75년간의 분단과 세대 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통일을 위해서는 소통과 조화, 그리고 상호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데 언어가 같다는 것은 통일의 초석이자 자산이다.

단군신화를 민족의 기원으로 모두 인정하는 남북한은 2014년 10월3일 평양의 단군릉에서 ‘단기 4347년 개천절 남북 공동 행사’를 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둘째는 남과 북이 유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 공통으로 겪은 역사적 경험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민족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순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통일의 당위성을 정당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남북이 같은 민족이란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동질성의 대표적 예다. 북한에서도 모두가 고조선, 고구려, 삼국시대, 고려, 조선 등의 역사적 사실을 교육받고 분단 이후에도 남과 북이 분단 상황으로써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우리 민족이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단일 민족이라는 의식은 남과 북이 함께 기념하고 있는 10월3일 개천절 행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남과 북 모두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공유하고 있고 개천절을 우리 민족의 태동과 한반도 최초의 민족국가 건국을 경축하는 민족 고유의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는 1993년 발굴된 단군릉을 이듬해 70m 높이의 아홉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로 거대하게 조성하여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나는 단군릉을 조성하기 이전과 이후 두 차례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남과 북은 과거 몇 차례 단군릉에서 공동으로 개천절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2014년을 마지막으로 남과 북이 함께 하는 공동 개천절 기념행사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

언어, 역사와 더불어 뿌리 깊게 보존되고 있는 남북한의 동질성은 ‘관습’과 습속 차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선, 인간에 대한 견해를 보면 남북한 모두가 ‘인간’과 ‘사람’을 구분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 한번은 평양 외곽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 어린아이가 대문을 박차고 엄마의 꾸지람을 피해 달아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곧이어 뒤따라 나오던 엄마가 아이의 등 뒤에 대고 “저 인간 언제 사람 되느냐?”라고 소리치는 광경을 보았다. 인간이 도덕적, 사회적, 질적으로 완성된 단계에 도달해야만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람관’이 남북한 모두에 깊이 존재하고 있다.

‘양심’ 또한 남북한 모두에서 ‘객관적 절대가치’를 의미하는 공통된 관습이다. 북에서도 “저 사람은 양심도 없나?”라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남북한 모두에서 가장 강력한 도덕적 질타는 ‘양심의 가책’을 묻는 것이고 양심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도리’라는 관습적 가치다. 양심은 주체사상이나 민주주의보다 더 높은 가치이며 북한에서는 아무리 주체사상으로 중무장했더라도 양심이 없는 인간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김치와 겨울철 김장 풍습은 남북한의 대표적인 공통 문화로 꼽힌다. 2017년 12월 평양의 한 호텔에서 ‘김치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우리민족끼리 제공
북한에서는 김치를 가장 중요한 월동 식량으로 여겨 ‘김장 전투’라고 부른다. 늦가을이면 김장용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을 평양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북한은 2015년 ‘김치 담그기 풍습’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했다. 사진 유네스코 제공

생활 습성의 무수히 많은 동질성 가운데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남과 북의 음식이 꼭 같다. 북한에서도 김치와 된장 같은 우리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 물론이고 입맛도 남과 북이 거의 비슷하다. 같은 음식을 먹고 산다는 것은 같은 생활 방식을 꾸려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에는 늘 음식이 차려지고 같은 음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 자리가 그만큼 편하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한국 사람이 음식을 매개체로 교류하고 심지어는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고자 모일 때도 종종 있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고 남과 북의 동질성을 느끼게 해주는 큰 요인이다.

남과 북의 이질성만을 주목하면 통일의 길이 없는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통일의 길은 이질성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고 남과 북의 동질성을 발견하고 진작시키는 심오한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발굴한 동질성은 한민족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직접적 촉매제가 될 것이며, 동질성의 지평을 꾸준히 확대시키는 노력이 통일문화를 조성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자리잡은 통일문화는 남북한의 합의를 통해서 마련된 통일제도와 통일헌법을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둥이 될 것이다.

인류 역사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모든 제도는 그것의 이면에 탄탄한 문화적 지지층이 존재할 때에만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다. 예컨대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은 서양에서 수입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통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적 농촌문화에 자각적으로 의존한 마오 사상을 통해서 성공한 것이었다. 북한의 사회주의 역시 순수한 마르크스나 레닌 사상을 통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관습적, 문화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주체사상을 통해서 성공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프랑스의 정치이론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1830년대 초 교도소 조사를 위해 수년간 미국 답사를 한 뒤 <미국의 민주주의>를 펴냈다. 사진 위키피디아

알렉시 드 토크빌 역시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국가의 관습(문화)에 뿌리를 두지 못한 법률은 항시 불완전하다. 관습만이 국민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통찰했다. 그러면서 “오직 미국 국민만이 민주주의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까닭은 미국인의 관습이 그 제도를 탄탄하게 지지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막스 베버 또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에서 자본주의의 발생과 그것의 정신은 당시 서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 윤리와 관습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북한의 동질성에 기초한 통일문화는 한반도의 통일을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초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한반도의 통일문화를 선도적으로 창출하고 조성하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 나는 영국의 신교도(퓨리턴)가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와 약 16년에 걸쳐 최소한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자마자(1636년)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대학을 설립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과 북이 함께 참여하는 개성평화대학의 설립을 제안한다.

신교도들이 하버드대학을 통해서 기독교적 이상국가에 부응하는 ‘삶의 양식’(Lebensführung, way of life)을 발견하고 연구하고 지속적으로 교육했던 것처럼, 개성평화대학이 한민족 통일국가에 부응하는 통일문화를 창출하는 선도적 구실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다음 연재에서 개성평화대학에 관한 구체적인 나의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구술집필 권준택 뉴욕 유티카대학 교수/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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