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시련이 낳은 문인화의 정수 '세한도' 직접 본다
추사 김정희 제주 유배중 작품
꼿꼿한 절개·단순미학의 절정
손창근 옹 기증받아 일반 공개
14m 두루마리 한눈에 펼쳐져
명문 세도가에서 태어나 탄탄대로 벼슬길을 걸었던 '금수저'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찾아온 혹독한 말년이다. 북한산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냈던 이 금석학의 천재는 제주에서 장장 9년 가까이 유배 생활을 하며 그간 세상에 품었던 학문과 예술관에 일대 전환점을 맞이했다. 환희에 가득 찼던 세상은 실은 배신과 눈물로도 점철돼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때 제자 이상적이 중국에서 귀한 서적을 한아름 싸들고 온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자신을 이토록 살뜰하게 챙기다니. 눈물을 삼키며 붓을 들었다.
먹을 담뿍 머금은 윤기 있는 그림은 어울리지 않았다. 문이 하나 나 있는 허름한 집 한 채를, 그 옆에 쓰러질 것 같은 노송 한 그루를 갈필로 그린다. 그 옆에 파릇파릇한 소나무 한 그루와 측백나무 두 그루를 그린다. 나머지는 텅 빈 여백이다. 한없이 쓸쓸하면서도 간결한 절제미를 보여주는 문인화의 절정 '세한도'(1844·국보 제180호)가 탄생한 과정이다. 추사는 논어에 나오는 '한겨울 추운 날씨(歲寒)가 된 다음에야 송백(소나무와 측백나무)이 시들지 않음을 안게 된다'는 구절을 발문에 적으면서 시류에 굴하지 않는 제자의 우정을 기렸다. 자신을 빗댄 노송 역시 쓰러질지언정 꼿꼿하게 하늘을 바라보겠다는 선비 정신의 기개가 느껴진다. 설 전후 혹독한 추위를 뜻하는 '세한'은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뜻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8월 손창근 씨(91)에게 기증받은 '세한도'를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 평안平安'을 열어 일반에 공개한다. 기증자인 손씨는 건강 악화로 입원하는 바람에 이날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두루마리로 꽁꽁 묶여 있던 세한도를 펼쳐 본래 길이인 14.69m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세한도 두루마리 전모가 공개되는 것은 14년 만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한도 그림은 1m 남짓. 나머지 13m는 추사의 발문과 청나라 문인 16명에게 받은 감상문을 비롯해 근현대의 오세창, 정인보 등 한국인 4명의 글이 붙었다. 그림 자체로도 뛰어난 구성미와 단순 미학이 돋보이지만 세한도의 역사적 가치는 그림 뒤에 붙은 당대 최고의 중국과 조선 학자들이 덧붙인 감상문으로 더욱 커진다. 이상적은 스승의 절박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중국 연경(燕京·현재 베이징)에 가는 길에 스승의 그림을 중국 학자들에게 보여주었고, 이에 중국 문인 16명이 앞다투어 추사를 예찬하는 글을 지었다. 추사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으려는 듯 자신의 처지와 존재를 입증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을 그림 한 점에 담은 것이다.
초고화질로 스캔한 영상을 통해 그림과 글씨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문화재 전문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비롯해 손씨가 2018년 기증한 '불이선란도'와 '김정희 총상화' 등 15점도 전시된다.
무엇보다 차별화되는 지점은 추사가 당시 느꼈을 다양한 감정을 이방인의 눈으로 해석한 점이다. 프랑스 미디어 아티스트인 장 줄리앙 푸스는 황량한 제주 풍경을 담은 7분 영상 '세한의 시간'을 통해 끝을 알 수 없는 유배 생활의 두려움과 절망감의 깊이를 헤아려본다.
세한도의 절절한 마음이 끝나면 보란듯 떠들썩한 잔치가 시작된다. 전시의 2부에선 조선시대 관리들이 선망했던 평안감사가 자신이 부임한 영예로운 순간을 많은 이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며 만끽하는 '평안감사향연도'가 펼쳐진다. 세한이 끝나면 따뜻한 봄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암시와 희망을 건넨다. 내년 1월 31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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