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만 체포하고 통역 제공 안한 경찰..인권위 "평등권 침해"

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2020. 11. 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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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인과 결혼 후 이민 비자로 거주중인 모로코男
일하던 중 내국인과 시비..경찰, 모로코男만 현행범 체포
조사하면서 통역 서비스 미제공..인권위 "징계하라" 권고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결혼 이민 비자로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일을 하던 도중 내국인과 폭행 시비에 휘말렸는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외국인만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심지어 경찰은 이 외국인을 조사하면서 통역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따르면 모로코 국적의 남성 A씨는 지난 3월 31일 오전 8시 30분쯤 한 아파트 노상에서 이삿짐 사다리차 일을 하던 도중 처음 보는 행인 B씨로부터 갑자기 욕설을 들었다. B씨는 A씨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려고 하면서 "너 불법체류자 아니야? 이 놈의 XX가 경찰에 신고할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카메라 뒷부분을 가리면서 사진 촬영을 막았고, B씨 행위에 위협을 느껴 112에 신고했다. B씨 또한 112에 '외국인이 불법으로 노란 사다리차를 운행한다'는 내용으로 신고를 넣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관들은 현장 도착 후 약 10여분 만에 A씨만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B씨에 대해서는 현장 진술조서만 받았다.

또 A씨를 파출소로 연행한 경찰관들은 그의 가족에게 따로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고, 통역을 제공하거나 가족·변호인 등 신뢰관계인의 참여가 없는 상황에서 A씨에게 진술서와 미란다원칙 고지 확인서 등에 서명하도록 했다.

(사진=자료사진)
이에 A씨의 아내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A씨는 2012년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고, 결혼 이민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서 약 8년 정도 거주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은 "B씨는 A씨가 욕을 하면서 가슴부위를 1회 밀치는 폭행을 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면서 "A씨는 자신을 촬영하기에 하지 말라고 밀쳤지만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밀친 것도 폭행죄에 해당함을 A씨에게 알려주고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통역 앱이 필요한지 물었으나, A씨는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권위는 경찰관들이 A씨를 현행범 체포한 행위를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경찰관들은 현장 출동 당시 A씨가 상대방을 밀친 것을 인정했다고 주장하지만, 둘 모두 112에 신고했던 정황과 파출소 인치 당시 A씨가 손동작을 하면서 폭행 혐의에 대해 항변하였던 점, 같은 날 경찰서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에서 '막았을 뿐이고 몸에 닿지는 않았다'는 진술 등으로 보건대 A씨가 사건 발생 현장에서 B씨의 몸을 밀친 것을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A씨가 상대방을 밀친 것을 현장에서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출동 당시 이삿짐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고, 신분증을 제시해 신원 확인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던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추후에 출석을 요청하거나 자진출석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조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진=자료사진)
그러면서 "경찰관들이 현장 도착 후 10여분 만에 B씨에 대해서는 자진출석하도록 안내하고 외국 국적의 A씨에 대해서만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라고 강조했다.

또 A씨가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더라도 통역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권위는 "A씨는 한국에서 8년 정도 거주해 한글을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으나,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길게 말하는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면서 "현행범·피의자 등과 같은 법률용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며, 당시 파출소 CCTV 영상에 따르면 경찰관들과 손동작을 하면서 대화하는 모습이 수차례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형사절차에서의 진술은 다른 문제이므로 의사소통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경찰청장에게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또 "이 사건은 직무의 공정성을 의심받는 수준을 넘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자유권과 평등권을 동시에 침해한 사안"이라며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과 통역 없이 조사를 진행한 경찰관에게 징계조치 및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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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sm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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