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김종규 & 이연수 >'脫권위' 박물관 대부·'품 넓은' 미술관 대모.. 사립뮤지엄 30년 지켜냈다


■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 이연수 모란미술관장
- 김종규
금속활자 발명한 나라에
출판박물관 없는 게 안타까워
부산서 일하던 1960년대부터
고문서·서화 등 10만점 수집
월인석보 등 국보급도 여럿
품격 있게 문화계 가교 역할
‘진정한 어른’ 존경 받아
- 이연수
둘째 아이 낳자마자
나들이 나선 곳이 화랑
남편이 사준 땅에 미술관 짓고
사재 털어 예술작품들 모아
힘겹게 일하는 작가들 늘 존중
직원들은 학예사로 키워내
‘따스한 성품’ 정평이 나
올해 30주년을 맞은 삼성출판박물관과 모란미술관은 한국 사립 뮤지엄을 대표하는 곳이다. 각기 한국 최초의 출판박물관, 조각전문 미술관으로서 한 세대에 걸쳐 그 위상을 지키고 가꿔왔다. 한국에서 사립 뮤지엄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재를 털어 넣는 일이다. 그래서 그 운영자들은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지만, ‘엉뚱한 일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런 외부 시각과 내부 운영난을 이기며 30년 동안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이끌어온 것은 남다른 지도력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990년 삼성출판박물관을 창립해 줄곧 이끌어 온 김종규(81) 관장, 역시 같은 해에 모란미술관을 열어 30년의 탑을 세운 이연수(75) 관장의 리더십을 들여다본 까닭이다.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 = 김 관장은 “한 나라의 문화 근본을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가 출판박물관의 바탕이 된 고서적 수집에 관심을 둔 것은 형(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회장·89)이 창립한 출판사의 부산지사장을 맡은 1960년대부터다. 보수동 골목 헌책방들을 단골로 드나들며 희귀한 고서적들을 수집했다.
손꼽히는 출판인이었던 그는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나라에 출판박물관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박물관을 설립했다. 출판박물관 개관은 문화계 전체의 기쁨이었다. 신달자 시인은 시 ‘닥나무’를 써서 기렸다. ‘…박물관 문 여는 날 이어령 선생님이 기념식수했다는/닥나무 처음 보는데/너무 낯익다/나를 스쳐간 종이 몇백 트럭 후히/저 나무에서 비롯되었을 것/저 잎 하나하고 말 걸고 있으면/백 년은 후딱 지나가겠다.’
현재 삼성출판박물관은 전적류, 출판·인쇄 도구, 근현대도서, 고문서, 서화 등 1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 구기동 건물 3층에 있는 수장고에는 문화재급 출판 유물이 수두룩하다.
이번 30주년 특별전(‘책으로 걸어온 길’·11월 17∼12월 29일)에서 선보이는 이인직의 ‘은세계(1908)’,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최승희 자서전(1937)’ 등도 희귀본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책 사랑 덕분이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도 문화 씨앗으로서 책의 중요성은 영원하다”며 여전히 독서광, 수집광임을 자랑한다.
이 관장은 최근 책 ‘모란미술관 30주년’을 펴냈다. 책에 따르면, 그가 그림에 빠진 것은 20대 후반이었다. 결혼 후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혼자 돌아다닌 곳이 화랑이었다.
어느 날 한 작가의 그림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던 그는 당시 시청공무원이었던 남편(홍석웅 모란공원 회장)에게 “나중에 돈 생기면 화랑 하나 차려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말이 씨앗이 될 줄은 몰랐다. 그는 40대에 사업가가 된 남편과 함께 경기 마석 모란공원 옆에 미술관 부지를 얻게 됐다.
그가 상업 화랑이 아닌 미술관을 택한 것은 그림을 파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후 지금껏 그가 지키고 있는 것은 예술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진실하고 지극하기에 미술관 안팎의 사람들부터 인정받고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 올 수 있었다.
그는 모란미술관의 조각 작품과 자연이 교감하고 융화하는 모습에 언제나 희열을 누린다고 했다. 근년엔 미술관 옆 모란공원의 봉분들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산과 나무, 묘지가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듯한 이 관장의 초연은 주변 사람들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그는 이런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미술관이 자신을 공부시켜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 존중으로 신뢰 구축 =‘문화예술계의 대부’라는 별칭이 있는 김 관장이 외향성이 두드러진다면, 단아한 외모에 차분한 말투의 이 관장은 내향적으로 보인다. 이처럼 달라 보이지만, 인맥이 넓다는 점에선 닮았다.
김 관장은 삼성출판사 회장과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등을 지냈고, 지난 2009년부터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의 리더십과 관련,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은 “자신보다 언제나 남을 챙기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량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관장은 “형님이 출판사를 일궈주신 덕분에 내가 박물관을 꾸려갈 수 있었다”며 언제나 자신을 낮춘다. ‘김봉규·종규’ 형제간 우애는 출판계에서 유명하다. 내년이면 창립 70주년이 되는 삼성출판사는 두 사람의 우애를 바탕으로 성장해 후대에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혜로운 처신으로 선배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며 지도력을 가꿔왔다. 후학들에겐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위트 있으면서도 품격 높은 언행으로 ‘진정한 어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 관장은 작가들과의 신뢰 관계가 두텁다. 힘들게 작품 활동을 하는 조각가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최근 타계한 최만린을 비롯한 국내 대표 조각가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30주년 기념전(‘조각의 아름다움’·8월 30일∼11월 30일)에 참여한 최의순, 최인수, 윤석남, 배형경도 그런 작가들이다.
이 관장은 미술관 고문 역을 15년간 했던 이경성 평론가가 타계하자, 미술관 옆 모란공원 묘지에 모셨다. 이는 그가 얼마나 따스한 성품인지를 알려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모란미술관은 탁월한 학예사들을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술관 직원들을 ‘예술 동인’으로 여기고 그들의 학습을 지원한 이 관장의 태도가 한몫했다. 이 관장 자신도 끊임없이 미술 공부에 힘써 대학 강단(2003∼2008)에 섰을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
이 관장은 ‘돈 먹는 하마’인 사립미술관을 운영하면서도 늘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로 불교 신앙과 함께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을 든다. 사업가인 남편의 후원이 있었기에 미술관 운영이 가능했다고 책에 썼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 그의 리더십의 한 모습일 것이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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