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인문학>⑧ 기술과 인간 : 소설 '달섬의 이웃들'

기자 2020. 11. 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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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백두리 작가
김초엽 소설가

■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 새로운 일상의 탄생

전염병이 퍼지자 모두가 집·사무실 문을 걸어 잠갔다

가상공간 ‘달섬’은 재택근무·원격조종 로봇·아바타를 지원했고

사람들은 빠르게 달섬으로 ‘이주’했다

유민이 사소한 오류를 호소하자 접속이 차단되고

늦은 나이에 접해 적응에 실패한 사람도 소외됐다

유민은 E8 구역 703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군가 움직이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지만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유민은 재차 문을 두드렸고, 이번에도 반응은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로 두드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달섬에 접속한 사람들은 웬만한 외부 소음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달섬의 감각 자극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민은 오늘 고장난 배송 로봇을 대신해 E8 구역의 모든 사람에게 영양팩을 전달해야 한다. 특히 703호처럼 특수 첨가물을 넣은 영양팩들은 반드시 본인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자 이번에는 이미 배송을 마친 701호의 여자가 문을 열었다. 유민과 눈이 마주친 여자가 투덜거렸다. 703호의 주인은 결국 그 이웃집 여자가 ‘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복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703호 남자는 원래 영양팩을 배송하던 로봇이 아니라 카트를 끌고 온 유민을 보고 당황하는 것 같았다. 유민이 비오염 상태를 나타내는 가슴팍의 마크를 가리키자 그제야 남자는 무어라고 웅얼대며 공중에 손을 휘저었다. 아마 달섬 상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유민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남자가 유민의 표정을 보더니 혀를 찼다.

“대체 왜 달섬 호출을 안 씁니까? 당신도 그 기술회의주의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에요? 메시지 하나면 곧장 열어주는데. 게다가 문을 그렇게 쾅쾅 두드리다니…. 무슨 큰일 난 줄 알고 놀랐잖아요. 원래 하던 로봇은 또 어디에 가고….”

“고장 나서 제가 대신 왔어요. 그리고 저는 부적응자여서요. 회의주의자가 아니고요.”

유민의 대답에 남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러나더니 “알았어요. 수취 서명은 달섬으로 보낼게요” 하고 퉁명스레 말하고는 문을 달칵 닫았다. 잠시 뒤 문 너머로 위잉 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다시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간 것이 분명했다. 아마 다음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참 문을 두드려도 대답 없는 사람들, 냉대, 그리고 두려움의 시선.

달섬이 처음 등장한 것은 유민이 태어난 직후였다. 전기 신호를 직접 뇌로 전달하여 감각을 구현하는 가상 공간은 큰 기대를 받았던 기술이지만, 당시만 해도 감각칩 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람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켜 보편화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의 엄청난 기대와 투자, 달섬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전망은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전환은 뜻밖의 계기로 찾아왔다. 유민의 나이 열 살 무렵, 의문의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모두가 집과 사무실의 문을 걸어 잠그면서였다. 갑자기 달섬은 안전한 가상공간으로 주목받았다. 발 빠르게 재택근무 시스템과 원격 조종 로봇 아바타가 지원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빠르게 달섬으로 ‘이주’했다.

거의 세뇌에 가깝게 반복되었던 달섬의 홍보 문구들을 유민은 기억한다.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하는 가상현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기술. “떨어져 있어도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있어요.” 나지막이 속삭이는 성우의 목소리. “절망의 시대에도 우리가 연결될 수 있다면 어둠은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자가조립 나노솔루션 복용으로 감각칩 이식을 간편하게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달섬은 사람들의 대안 생활 공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일상의 대부분을 달섬에서 보냈고, 정말로 피치 못한 일이 있을 때만 오염된 현실로 빠져나왔다.

유민에게도 한동안 달섬은 아늑하고 안전한 대안 공간이었다. 유민은 달섬에서 친구들을 만났고 학교를 다녔다. 여러 명의 연인을 만났다가 헤어졌고 또 만나기를 거듭했다. 직장에 들어갔고 동료들은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 시대에도 사람들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했고, 달섬은 완벽한 대안을 제공했다. 시공간을 넘어 재현되는 포옹의 촉감, 온기, 그리고 숨을 느리게 쉬며 귀를 기울여보면 들려오는 심장 소리.

수년 뒤에, 감각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미세한 오류들이 보고되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업데이트가 수십 번에 걸쳐 진행되면서, 유민은 점점 이상한 것을 느꼈다. 상대의 모습이 깜빡이다가 부서지거나 목소리가 무섭게 울리거나, 어디서도 들은 적 없는 기괴한 비명이 가까이서 들리다가 갑자기 멀어지는 그런 현상들. 때로는 풍경의 모서리가 접혔고 바닥이 일그러졌다. 손끝에서 등 중심으로 이어지는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을 느끼다가 접속을 끊은 적도 있었다. 유민과 같은 증상을 호소한 사람들은 달섬 내에 그룹을 만들어 서로의 증상을 공유했다. 알음알음 인맥을 통해 개발팀으로 어렵게 개선 요청을 전달하자, 해당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뉴런 세로시네프린 수용체가 ‘레보’ 타입이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계속되는 업데이트. 그리고 어느 날, 유민은 달섬에 더 이상 들어설 수 없었다. 빨간 글씨로 깜빡이는 오류 메시지.

‘빠른 시일 내에 접근성 패치를 할 예정입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달섬에서 안전하고 행복했다. 다소 느리게 들려오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 지지부진으로 잡힐 것 같지 않은 전염병과의 전쟁 속에서도 대안 공간은 사람들을 지켜주었고 또 연결해주었다.

유민은 다시는 달섬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유민은 달섬 밖으로 나와서야 가상 공간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세계의 바깥은 허술하고 위험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물리적인 케이블을 수리하고, 오염 보호복을 뒤집어쓰고 내달리는 사람들. 고장난 로봇을 대신하여 투입되는 사람들. 유민은 달섬에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이들도 보았다. 유민 자신처럼 ‘사소한 오류’로 쫓겨나거나, 너무 늦은 나이에 달섬을 접해 적응에 실패했거나, 혹은 처음부터 진입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물론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달섬에 무슨 큰 흠집을 내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인류의 위기이고, 비상 사태이며 건강한 사람들마저 마구 죽어나가는 세계이니까. 달섬은 유일한 대안이고 안전지대이니까.

모두가 벙커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E8 구역을 나오면서 유민은 입구 벽면에 붙은 문구를 보았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세계, 달섬으로 오세요.’ 스티커는 너무 오래되어 모퉁이가 다 닳아 있었다.

김초엽 소설가

■ 김초엽 작가가 말하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소외’

“키오스크·QR 등 첨단 기술… 노약자·장애인엔 결코 평등하지 않다”

몇 주 전 서울로 출장을 가면서 비행기를 타던 날, 이제부터 공항 카운터에서 직접 체크인을 할 경우 3000원의 수수료가 부과된다는 안내를 보았다.

비대면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모바일 셀프체크인을 권유할 수 있다지만 셀프체크인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3000원의 수수료를 추가로 물어야 하나? 의아해하며 항공사 홈페이지까지 찾아간 다음에야 ‘어린이 손님’ ‘휠체어 손님’ ‘유아 동반 손님’ 등은 수수료 예외 대상이라는 공지사항을 볼 수 있었다.

하루는 오랜만의 외출에서 QR 코드 체크인을 처음으로 요구받았다. 앞선 사람들이 다들 능숙하게 체크인을 하고 지나가는데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뒤늦게 휴대전화를 꺼내 직원에게 도움을 받던 일이 떠오른다. 뒤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더욱 초조해졌다.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 서 있는 사람을 향하던 따가운 시선이 지금 날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팬데믹 시대의 디지털 기술은 사람들을 흩어진 채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단지 우리가 연결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 그 ‘우리’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공간마저도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설계되기 때문에, 연결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노인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키오스크와 웹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QR 체크인은 일부일 뿐이다.

과학기술학자 애슐리 슈는 과학저널 네이처 지에 기고한 글에서 팬데믹 시대의 사람들이 장애인 공동체로부터 기술에 대한 관점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들은 예전부터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연결의 기술을 모색하고, 모든 공간에서의 접근성을 이야기해왔다.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업무에 원격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가장 오래 고민하고 또 제안해온 당사자들로부터 이제는 비장애인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슈가 말한 장애인 공동체는 주로 영미권 학계의 장애인들을 말하지만, 한국의 장애인들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상의 접근성을 개선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 요구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기술 소외로 이어진다. 배제하지 않는 기술은 장애인과 노인만을 돕는 것이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건강한 사람들도 편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막은 스피커를 쓸 수 없는 환경이나 시끄러운 공공장소에서 모두에게 유용하다. 마찬가지로 정보 접근성을 고려한 디지털 공간 설계는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경과 플랫폼 사용자들의 편의를 돕는다. 가장 소외된 이들을 중심에 두는 기술 설계가 곧 모두를 위한 설계라는 것이 팬데믹 시대에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초엽/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출간작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장편 ‘지구 끝의 온실’ 등이 있다.

[문화일보·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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