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여성의 상을 다시 세우다, 엄정화 [핀 라이트]

심윤지 기자 2020. 11.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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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엄정화는 ‘강한 여성’의 상을 뒤집는다. 험악하게 인상을 쓰면서 자신의 강인함을 과시하는 대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타인에게 늘 친절하고 다정하면서도, 타인의 무례가 자신을 갉아먹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명색이 ‘환불원정대’인데 저렇게 마음이 여려서 환불해달라는 말은 어떻게 꺼낼까 싶다. 슈퍼스타K2 심사위원일 땐 참가자들에게 모진 말을 하지 못해 ‘빵점짜리 심사위원’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자주 눈물을 보인다. 강아지 이야기를 하다 울고,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 울고, 팬 이야기를 하다 울고,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되돌아보며 운다.

겉모습만 보고 넘겨짚지 말자. 수많은 연예인이 등장했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연예계에서 엄정화(51)는 음악과 연기 두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한 독보적인 아티스트다. 수많은 인터뷰어들이 그에게 ‘롱런의 비결’을 묻곤 하지만, 사실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하다. 엄정화가 아주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인 역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도 되게 약한 것 같지만, 사실 아주 강하다. 그래서 여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거다. 목표가 생기면 거기까지 가는 길의 작은 장애물은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2020년 W인터뷰)

그는 ‘강한 여자’의 상을 뒤집는다. 험악하게 인상을 쓰면서 자신의 강인함을 과시하는 대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타인에게 늘 친절하고 다정하면서도, 타인의 무례가 자신을 갉아먹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서른 넘은 여성 아티스트의 존재를 상상하지 못했던 연예계에서 “벼랑 끝의 개척자로 살아온” 엄정화의 27년을 돌아봤다.

엄정화는 1998년 발매한 4집 <초대>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여자가수’가 없던 시절이라 무대에 오르면서도 늘 불안했다고 회고한다.

■벼랑 끝에 선 개척자

“충북 제천(고향)에서 올라오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겠죠. 아이들 키우거나…. 그런데 그런 상상은 잘 안 들고요. 이쪽 어딘가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2014년 한밤의 TV연예)

연예인이 아니면 무엇을 했을것 같냐는 흔한 질문에도, 엄정화는 ‘가수’와 ‘배우’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꿈이었던 음악과 연기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강했다는 뜻이다.

1989년 상경 후 MBC합창단에 합류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합창단 시절부터 엄정화를 눈여겨 본 고 신해철의 제안으로 데뷔곡 <눈동자>을 녹음한다. 이후 이 곡이 OST로 실린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의 주연으로 발탁돼 정식 데뷔를 했다. 가수와 배우의 겸직이 흔치 않았던 시기, 데뷔 때부터 두 분야 커리어를 함께 쌓은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이십대 후반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서른 살에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3집 ‘배반의 장미’, 4집 ‘초대’ ‘포이즌’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앨범만 내면 1위를 했고, 무대에 올라가면 환호가 쏟아졌다.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럼에도 엄정화는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서른한 살 댄스 가수는 없었던 시기였기에 “시한부 인생” 같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억울한 게 저는 어딜 가나 늘 언니였고 선배였어요. 20대 내내 ‘나 늙었다’라는 생각만 했죠. 배우로선 안 그랬겠어요? 제가 28살 때 주변 여자 선배 중에 35살 넘어서까지 활동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항상 벼랑 끝에 서서 앞을 개척해가며 살아왔죠.”(2020년 코스모폴리탄)

엄정화의 인터뷰에는 늘 나이에 관한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그 나이처럼 안보인다’는 칭찬, ‘나이가 부담스럽지는 않냐’는 염려, 나이가 어린 남자 가수나 배우와 호흡을 맞췄을 땐 ‘아들뻘’ ‘조카뻘’이라는 무례한 농담까지…. 한동안은 그 역시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계를 규정당한다는 생각에 괴로움도 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엄정화의 27년은 “불편한 말들이 또 선을 넘을 때” “보란 듯 해내서 보여줘버리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이십대 후반부터 ‘서른이 넘으면 발라드로 전향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흔을 한해 앞둔 2008년 일렉트로닉 댄스곡인 ‘디스코(D.I.S.C.O)’를 발매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마흔이 넘은 여배우는 멜로를 할 수 없다’는 편견에도 “하면 힘들 것 같은 역할만 선택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정면돌파’가 엄정화의 생명력을 만들어 온 셈이다.

갑상선암 수술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가수 엄정화’는 주저앉지 않았다. 2017년 발매한 정규 10집 파트2의 타이틀곡 ‘엔딩크레딧’은 가수 엄정화의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담담한 가사와 아련한 레트로 멜로디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엔딩크레딧 뮤직비디오 갈무리

■엔딩크레딧, 가수 엄정화의 부활

2000년대 후반부턴 배우 활동에 전념했다. 당시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2010년 영화 촬영과 혹독한 다이어트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던 시기에 갑작스러운 갑상선암 판정을 받는다. 수술 후 8개월이 넘도록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 마비. 평생을 가수와 배우로 살아온 그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노래도 못하고 연기도 못하고, 그럼 나는 어떡하지….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요 진짜. 너무 눈물이 나는데 울음소리가 안나오니까 또 힘든거에요.”(2018년 인생술집) 하지만 엄정화는 주저앉지 않았다. 어떻게든 극복해내겠다고 다짐한다. 수소문 끝에 성대를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주사 치료법을 알아냈다. 주사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괴로워졌을 땐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재활에 매진했다.

2016년과 2017년 파트1과 파트2로 나누어 발매된 정규 10집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은 그렇게 돌아온 가수 엄정화의 ‘부활 선언’과도 같았다. 수술 이후 예전만큼 고음이 잘 나오지도 않았고, 앨범을 내라고 닦달하는 사람도 없었다. ‘배우 엄정화’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왜 이렇게 힘들게 앨범 준비를 하려 하나. 엄정화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지금껏 쌓아온 ‘가수 엄정화’를 이대로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2018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그는 나이가 들면서 여성 아티스트가 느끼게 되는 외로움을 토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 날 좀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가수로서 대중에게 좀 멀어진것 같은, 그런 외로움? 나이 들어서 그만하라는 분도 있었어요. 그치만 아직 가슴이 뛰고 열정이 있는데 그깟 나이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만두고 싶진 않았어요.”

MBC <환불원정대>에 출연한 엄정화는 “사랑하고 좋아하는 후배들, 효리, 제시, 화사와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져 정말 감사했다”는 종영소감을 밝혔다. MBC제공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차트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이 앨범은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효리, 제시, 화사와 함께 한 MBC <놀면뭐하니:환불원정대> 프로젝트로 ‘가수 엄정화’의 면모가 또 한 번 주목을 받으면서다. 엄정화는 갑상선암 수술 이후 노래에 자신감이 떨어진 모습까지 솔직하게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그의 용기에 “한 시대를 풍미한 목소리답다” “엄정화의 목소리엔 스토리가 있다”는 응원으로 화답했다.

“희망적인 노래에요. 엔딩크레딧이 끝나면 또다른 영화가 시작하니까요.” 영화가 끝난 후의 여운을 다룬 ‘엔딩크레딧’ 가사에서, 사람들은 가수 엄정화의 ‘마지막’을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엄정화는 자신의 또다른 ‘시작’을 읽어냈다고 했다. <환불원정대>의 흥행과 ‘엔딩크레딧’의 재발견은 세상이 아닌 엄정화가 옳았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환불원정대의 ‘만옥’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가수 엄정화의 ‘엔딩크레딧’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테니까.

엄정화는 반려견 슈퍼와 함께하는 일상이 행복하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엄정화 유튜브 갈무리

■다음 목표는 지속가능성

데뷔 27년, 그는 ‘엄정화’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다. “예전에는 ‘한국의 마돈나’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이제 별명은 그만 붙였으면 좋겠어요. 이만큼 했으면 그냥 엄정화죠.”(2020 코스모폴리탄)

이제 다음 고민은 엄정화라는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이다. 정신없이 빠르게 변하는 연예계에서, 평생 사랑해온 일을 오래오래 계속하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최근 tvN 예능프로그램 <온앤오프>에 출연한 엄정화는 오랜 친구인 모델 이소라와 연예계의 빨라진 세대교체 주기와 자신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나이에 맞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생각해보면 답이 없어. (30대의 엄정화나 50대의 엄정화나) 달라진 게 없는데… 거기 맞춰지면 안돼. 발라드 가수로 바꿔야된다, 춤추면 안된다, 그런 이야기들을 바꾸면서 오다보니까, 그냥 할수 있었잖아. 그런 사람들 생각에 맞췄으면 난 아마 없었을거 같아. 할 수 있는 걸 해서 다행이었지.”

“자신을 홀대하지 않고 돌보는 일”에도 마음을 쏟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치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편안함과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복싱을 하러 나가는 내 모습이 멋있고, 슈퍼를 예뻐하는 내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이런게 나이가 주는 여유일까요?” (코스모폴리탄) 그가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엔 반려견 슈퍼나 친구들과 보내는 일상이 따뜻하게 기록돼있다.

2008년 <오프더레코드 효리>에서 이효리의 고민상담을 해주던 엄정화는 2020년 자신에게 <환불원정대> 프로젝트 합류를 제안한 이효리에게 감사를 표한다. 티빙·MBC제공.

여성 아티스트의 나이듦을 조롱하는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변화의 싹은 조금씩 틔우고 있다. 서른 살의 엄정화는 혼자였지만, 지금의 그는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과 함께다. 2008년 선배 엄정화에게 ‘30대 여성 댄스가수’로서의 고민을 상담하던 이효리는 2020년 <환불원정대> 프로젝트로 20대 화사와 30대 제시, 50대 엄정화를 한 자리에 모았다. 방송 초기만 해도 “환불원정대가 마지막 무대일 수 있다”던 엄정화는 종영 소감에서 “앞으로 작품과 음반 준비 둘 다 더 용기를 내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엄정화지만, 이제는 ‘나이는 열심히 살아온 자랑스러운 나의 연륜’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고도 했다. “내가 이렇게 일을 즐기면서 계속 간다면, 후배들이 ‘쉰 살 된 선배도 액션을 멋지게 했어’ ‘저 언니처럼 가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2020년 W)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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