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육아는 없다! 여자들의 '찐' 출산기 '산후조리원'

남지은 2020. 11. 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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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8부작 월화드라마..산후조리원 배경
진통·출산·회복 과정 적나라하게 그려
"모성 강요 대신 '엄마 행복' 항변"
사실적인 이야기로 시청자 공감을 사고 있는 티브이엔 <산후조리원>. 프로그램 갈무리

관장에 제모까지 극강의 ‘굴욕기’를 거치면 난생처음 느끼는 고통에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짐승기’가 찾아온다. 잠시 ‘무통 천국기’로 고요한 평화의 시기가 지나고, 온몸으로 진통을 견디며 힘주는 마지막 ‘대환장 파티기’가 끝나면 새 생명이 탄생한다. <티브이엔>(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 속 오현진(엄지원)이 보여준 적나라한 ‘실전 출산기’다. 오현진은 말한다. “산후 세계가 아닌 사후 세계를 다녀온 것 같다”고.

지금껏 드라마 속 출산 과정은 너무 우아했다. 양수가 터지면 금방 “응애~” 하고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의 탄생과 함께 엄마의 육아지수도 자동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자는 알지 않나. 처음 수유하는 날은 아파서 젖을 제대로 물리지도 못했거늘. <산후조리원>은 그런 시청자들에게 출산과 회복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누구나 처음인 엄마가 서툰 건 당연하다고 위로하는 ‘신박한’ 내용으로 화제를 모은다. 시청률은 지난 11월2일 시작 뒤 줄곧 3~4%대(닐슨코리아 집계)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기발한 소재는 물론 솔직함과 코미디를 적절히 섞은 만듦새가 좋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를 웃음으로 풀어냈던 예능드라마 <푸른거탑> 박수원 피디가 연출했다.

자신의 경험담을 오현진에게 투영했다는 김지수 작가는 <티브이엔>을 통해 “엄마라면 당연히 기쁘기만 할 줄 알았던 희생이 내겐 너무 힘들었다. 모성은 본능이라던데 난 그 본능이 없는 고장 난 엄마라고 자책했다”며 “우리는 매일 처음인 상황을 겪고 실수를 하고 어설프게 행동할 때도 있다. 지금 당장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잘 성장하고 있다고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산 뒤 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소변줄을 꽂아야 하는 등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출산의 과정, 자연분만 뒤 잘 앉지도 못하는 회복 과정과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반인반모’의 심정 등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엄마’들의 이야기가 뭉클해지기도 한다. 오현진의 남편 김도윤(윤박)이 육아 페어에 가서 유방 마사지와 모유 수유를 체험하는 장면 등을 통해 “출산과 육아는 부부 공동의 일”이라고 짚어내는 지점도 좋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티브이엔 제공

김지수 작가는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일, 성공, 사랑에 대한 욕망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도 한다. <산후조리원>은 모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꼬집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엄마 이야기와는 다르다. 모유와 분유 논쟁, 워킹맘의 고민 등 현실적인 문제를 내세워 무엇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다둥이 엄마인 조은정(박하선)은 모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이를 낳기 전부터 완벽한 모유 수유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모유가 힘든 오현진과 분유가 편한 이루다(최리)를 통해 과연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모유를 먹이는 것이 아이에게 행복한 일인지 되묻는다. “모유를 먹이든 분유를 먹이든 그건 선택의 문제”(이루다)라고 맞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모유·분유 논쟁을 내세워, 엄마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기꺼이 희생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다”며 “<산후조리원>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할 수 있다고 항변하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며느리의 솔직한 일상을 담은 카카오티브이 <며느라기>. 카카오티브이 제공

시청자들은 출산 과정은 물론 산후조리원이라는 색다른 공간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이 드라마에 호기심을 갖는다. “순산했다”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리지 않고 공감과 위로를 준 것에 박수를 보낸다.

최근에는 이렇게 엄마와 며느리로서의 삶을 포장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드라마가 주목받고 있다. 이번엔 며느리들의 공감을 살 드라마도 찾아온다. 2017년 소셜미디어에서 웹툰으로 선보여 인기를 끈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가 카카오티브이에서 21일 시작해 매주 토요일 공개된다. 웹툰 공개 당시 시어머니를 잘 모시고, 갈등을 빚어도 늘 화목하게 끝나던 드라마 속 모습이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드라마에서도 공감은 이어진다. 누구보다 당찬 커리어우먼인 민사린(박하선)이 시월드에서는 “네” “괜찮아요”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시어머니와 남편 무구영(권율)에게 서운함만 쌓이는 모습은 많은 며느리들의 공감을 불렀다. <며느라기> 제작진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서운함과 아픔을 겪는 평범한 시월드가 그려질 것이다.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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