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도시 만드는 아파트..보일러로 이웃과 온기 나눠"

김슬기 2020. 11. 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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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어때서' 저자 양동신
베테랑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지하철·발전소 등 도시 토목
국민 삶을 공평하게 만들어"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는 파리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사진을 만들었다. 1920년대 저층 주택을 건폐율이 낮은 고층 아파트로, 남은 면적을 숲과 공원으로 쾌적하게 만드는 '빛나는 도시'라는 뜻인 부아쟁 계획(Plan Voisin)이었다. 빽빽한 아파트 숲이 된 한국 신도시가 르코르뷔지에의 이런 이상을 구현했다고 예찬하는 책이 나왔다.

'아파트가 어때서'(사이드웨이)라는 용감한 제목의 책을 펴낸 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39)를 인터뷰했다. 그는 "르코르뷔지에는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 창, 자유로운 입면 등 건축적인 관점에서 빛나는 도시를 봤다면, 현재 대한민국 신도시는 그 5원칙을 모두 간직한 채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까지 구현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이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건 진정한 시민을 위한 복지는 '토건'이라는 메시지다. 지하철, 발전소, 해저터널, 육·해상 교량 등 그가 공정에 참여한 인프라들이 얼마나 국민 삶을 '공평'하게 향상시켰는지에 대한 예찬이 빼곡하다. 예를 들어 작년 강원도 초대형 산불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소방차들의 협동작전으로 간신히 잡혔다. 교통 오지였던 강원도에 고속도로, 터널 등이 충분히 갖춰지면서 이런 신속한 집결이 가능했다.

'겨울왕국2' 배경이 된 노르웨이 댐부터 시작해 홍콩의 마천루와 안양천 산책길,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바뀐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네 집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책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 우리가 '성냥갑'이라고 구박하는 아파트를 다시 보는 시선이다. 서문에서 그는 "앞으로 도시에 고밀도로 모여 사는 것이 시골에 홀로 거주하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친환경적인 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고 썼다.

실제로 콘크리트가 도시에 준 축복은 많다. 주차장이 지하로 들어가 지상에는 녹지가 생겼고, 전기·수도·가스를 절약하며, 에너지도 단열재와 열교환으로 효율이 좋아졌다. 가장 큰 장점은 민간의 자발적 재건축을 통해 신규 주택이 만들어지고 세원까지 조달된다. 그는 "흔히 도시의 아파트는 온기가 없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 온기를 이웃끼리 나눠 사용하는 곳이 아파트다. 나는 나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보일러를 가동하지만 그 보일러의 온기는 아랫집, 윗집, 옆집으로 퍼져나간다"고 했다. 도시에 관한 상상력도 과감하다. 그는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입체도시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아파트 층고 제한 완화, 철도 지하화 등으로 수직공간을 만들자는 것. 그는 "사직터널 고가도로 건설을 위해 독립문 위치를 변경한 일, 청계천을 복원하기로 결정한 일, 서울의 지하철 순환선을 건설하기로 한 일 모두 정치의 영역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정치적으로 과감한 시도가 있지 않고서는 더 살기 좋은 서울이 만들어지기는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온 국민의 관심사는 요동치고 있는 집값이다. '아파트 전문가'에게 집값을 잡을 방법도 물었다. 그는 "노코멘트하고 싶다"면서도 "선악의 구도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수요와 공급을 통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과도한 규제는 시장의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사실 이 책에는 322쪽에 걸쳐 어떻게 도시의 미래를 가꾸며, 주거 안정까지 잡을지 충분한 힌트가 실렸다. "공급이 능사는 아니지만 공급조차 사라진 시장은 과연 얼마나 왜곡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정책 입안자에게 하는 진심어린 충고 같았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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