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예고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경향신문]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과 독과점 우려에 혈세로 재벌총수를 지원한다는 특혜 논란도 나온다. 코로나19가 길어질 경우 두 회사의 통합은 동반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기로 하면서 양사 주주들도 반대 목소리가 높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11월 16일 양사 통합 계획을 발표했다.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아시아나를 정상화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산은이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고, 한진칼은 이 자금으로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산은은 “지난 20년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인구 1억명 이상의 국가(미·중·일)와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이 1국가 1국적항공사 체제로 재편됐다”면서 “이번 거래로 탄생할 통합 국적항공사는 세계 10위 수준의 위상과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금을 퍼부어서 대우조선해양처럼 좀비기업으로 끌고 가느냐, 아니면 경영을 정상화해 매각하느냐는 두가지 해법 중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과점, 고용 안정 대책 논란
산은과 대한항공은 운항 스케줄과 연결편 개선, 노선 확대, 마일리지 통합으로 소비자 편익을 높이고, 공동 정비로 원가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약속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불안이 예상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국토교통부, 산은은 통합 후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민섭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장은 “고용유지 약속을 확약서로 남겨달라는 요청엔 답하지 않고 말로만 믿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통합 후 항공운임 인상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선 정리와 사업부 매각 등 여러 유형으로 구조조정을 해 인적 구조조정을 최소화하든지, 가격을 인상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외항사와의 경쟁이 있어 가격을 파격적으로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예전처럼 특가 상품이나 요금제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두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없는 것은 문제다. 대한항공은 부채 23조원에 부채비율이 1200%, 아시아나항공은 부채 12조원에 부채비율이 2300%에 가깝다. 양사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올해 3분기 흑자를 냈다고 하지만 인력의 70% 이상이 휴직 상태에 있을 정도로 인건비를 줄인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두 회사가 모두 몹시 어려운데 통합 후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항공운임도 올릴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경영정상화를 한다는 것인지 산은이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피아’의 큰 그림, 주주 피해 가능성
양사 통합으로 국내선 기준 60% 이상의 독점력을 갖게 되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야 한다. 원칙대로라면 승인이 어렵지만 과거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처럼 회생 불가능한 회사(아시아나)와 합칠 경우 예외로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아시아나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인지 판단해야 하고, 경영권 분쟁 중인 상황이라는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는 “경영권 분쟁이 있는 경우에는 특정한 제3자를 지정해 증자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례가 있다”고 말했다.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조 회장과 대립하는 3자연합에 속한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는 지난 18일 산은에 배정하는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의에 대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1조8000억원으로 내년 2조5000억원 유상증자로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은 산업은행과의 계약에 따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5000억원, 교환사채 발행으로 3000억원 등 총 8000억원의 자금을 투자받아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이창민 교수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산은이 자금을 지원해주는 형태라면 대한항공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데 한진칼을 거치는 구조가 일단 이상하다”면서 “경영권 분쟁 중인 상황에서 산은이 조원태의 백기사가 되는 것 아니냐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상증자를 하면 주식 발행량이 많아져 기존 주식의 가치는 떨어진다. 두 회사의 주가가 인수 발표 이후 하락반전한 것은 ‘지분희석’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상법은 유상증자 시 기존주주에게 증자 참여를 물어보고 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경우에만 제3자 배정을 허용한다. 예외적으로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릴 때는 기존주주에게 묻지 않아도 되지만 대한항공과 달리 한진칼은 재무상태가 양호하다. 기존주주인 3자연합은 유상증자가 필요하면 자신들이 출자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특혜 논란을 우려해 산은은 한진칼과 투자합의서를 체결하며 사외이사 3명, 감사 1명의 선임권한을 갖고, 윤리경영위원회 등을 통해 조원태 회장의 경영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모피아’에 의한 관치 우려를 낳고 있다. 이한상 교수는 “결과적으로 보면 산은이 한진칼에 경영권을 보장해주면서 금융관료의 낙하산 자리를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 아시아나가 가진 잠재적 부실에 대한 충분한 실사가 있어야 했는데 그런 정상적인 과정 없이 급하게 의사 결정이 이뤄진 점도 향후 법적 다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사 5개 노조는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해 노동자 대표의 견해를 반영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회사나 채권단 측에서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제철 한서대 공항행정학과 교수는 “항공인력 양성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조건 해고보다는 재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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