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쏟아지는 생존 예능들, 어째서 만족스럽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0. 11. 2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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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다'·'생존왕'·'정글의 법칙'이 각각 가진 딜레마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바야흐로 생존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SBS <정글의 법칙>은 코로나19 때문에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되자 국내를 선택한 후 '생존상황'을 하나의 미션으로 만들어 '와일드 코리아'편을 보여줬다. tvN <나는 살아있다>는 특전사 출신 여성 생존전문가 박은하 교관을 통해 여러 재난 상황 속에서의 생존법을 여성들이 배워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새로 시작한 KBS <재난탈출 생존왕>은 다양한 재난 상황들을 소재로 그 위기에서 벗어나는 갖가지 정보들을 전문가들을 통해 전하면서 특전사 출신이자 훈남 경호원으로 잘 알려진 최영재가 실제 생존상황에서의 위기탈출과정을 재연해 보여 주었다.

생존 프로그램이 전성시대를 맞은 건, 코로나19를 비롯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갖가지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도시에서의 재난 상황들이 점점 일상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그런데 과연 지금 방영되고 있는 생존 프로그램들은 충분히 그 취지를 살려내면서도 시청자들의 재미와 의미까지 모두 만족시켜주고 있을까.

먼저 <정글의 법칙>은 애초 생존에 대한 방점을 찍고 국내 촬영을 시도한 것처럼 보였지만, 갈수록 생존의 의미는 퇴색해지고 있다. '와일드 코리아'편은 물론 무인도에서 식량과 잠자리를 해결하고 탈출하는 과정까지를 보여주며 제대로 생존법을 알려줬지만, 이어진 '헌터와 셰프'편은 자연요리 전문가인 임지호 셰프가 등장함으로써 생존이 아닌 산해진미를 즐기는 먹방이 되었다. 이어진 '제로포인트'편은 생존상황은 있었지만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같은 이야기를 보여줬고, 새로 시작할 '족장과 헬머니'는 김수미가 출연한다는 파격(?)은 있지만 '생존'과는 점점 멀어지고 대신 먹방 예능에 가까워지는 <정글의 법칙>을 예고하고 있다.

<나는 살아있다>는 애초 특전사 출신의 박은하 교관이 6인의 여성들에게 생존훈련을 시키고 그것을 통해 갖가지 생존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취지가 있었지만, 방송 전 마침 터졌던 <가짜 사나이>의 가학성 논란이 여기서도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출연 여성들이 군 훈련을 받는 듯한 몇몇 예고 장면들은 '여성판 군대예능' 같은 예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막상 방영된 내용은 박은하 교관이 특정 생존 상황에서의 탈출법을 정보적으로 알려주고 그걸 실행하기 위해 갖가지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과정들이 담겨졌다. 물론 군 출신이라 훈련 과정에서 교관들의 훈련법은 순화되긴 했어도 여러모로 군대 훈련을 닮은 면이 있었다. 그래도 완강기 사용법이나 침수되는 차량 안에서 탈출하는 방법 등의 정보는 충분한 재미와 의미를 담아낸 바 있다.

그렇지만 점점 물과 바다 같은 자연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를 버텨내기 위한 체력훈련도 필요해졌고, 그래서 군대식의 훈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목봉 들기나 물에 적응하기 위한 얼차려 같은 장면들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생존 예능이라 강변했던 <나는 살아있다> 역시 군대식의 훈련법을 활용하는 '순화된 군대예능'이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나는 살아있다>가 가진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생존법을 정보적으로 알려주면서, 훈련을 통해 출연자들이 생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재미를 동시에 보여주려다 보니 그 어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해졌고 그 훈련방법은 결국 '군대'의 야전에서의 생존법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의 베어 그릴스 같은 유명한 생존전문가도 군인 출신이다. 생존법의 상당부분이 야전에서 생존해야 하는 군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새로 시작한 <재난탈출 생존왕>은 정보적인 차원으로 보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이른바 생존 프로그램들 중에서 가장 알차게 구성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생존법도 무인도 같은 특수한 상황의 자연생존이 아니라 교통사고 같은 도시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가져왔고, 다양한 전문가들이 등장해 정보들을 다각적인 차원에서 제공한다. 게다가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는 최영재 생존왕(?)의 '알아야 산다' 같은 코너에서는 전복된 차량에서 탈출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주고, 보통남 이재훈이 그걸 실연해 보여주는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또한 생존법과 더불어 이런 재난 위기상황을 근본적으로 만들어내는 환경 문제를 소재로 담아 김숙이 플라스틱 재활용법을 알려준 '불편해도 괜찮아' 같은 코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접근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너무 정보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는 교양 프로그램의 성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인지 재미적인 요소들은 아쉬운 점이 많다. 전형적인 KBS 교양프로그램의 공영방송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

사실 생존 프로그램이 재미와 동시에 정보적인 의미들을 모두 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재미를 담다 보면 재난 상황이 갖는 다소 살풍경한 자극들이 등장할 수 있고, 그렇다고 정보적인 의미에 집중하다 보면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요소는 상당 부분 희석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생존 프로그램에 전문가들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군인 출신이라는 사실은 가뜩이나 '군대 예능'의 가학성에 대한 불편함이 존재하는 상황에 논란마저 야기하게 만든다.

<정글의 법칙>처럼 점점 생존 콘셉트를 버리고 야생에서의 예능으로 가는 건 다소 위험해지는 접근방식이고, <나는 살아있다>처럼 생존법을 꼭 훈련방식으로 알려주는 건 군대 예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점에서 논란을 야기한다. 또한 <재난탈출 생존왕>처럼 정보적인 것에 집중하다 보면 재미가 아쉬워진다. 군대의 야전에서 배운 생존법이라 하더라도 생존전문가가 군대식 훈련이 아닌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고, 자연만이 아닌 일상에서의 생존법을 알려주며, 생존 정보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스토리텔링할 수 있는 그런 생존 프로그램은 불가능한 걸까. 생존의 시대, 관련 프로그램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모든 걸 만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은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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