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리즈의 황금 왼발' 이언 하트 – 186

이형주 기자 2020. 11. 2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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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하트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 온 것에서 나온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연재물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이형주의 EPL Nostalgia], 186번째 이야기: '리즈의 황금 왼발' 이언 하트

리즈 유나이티드의 황금 왼발로 불리던 선수가 있다. 

올 시즌 승격팀인 리즈가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하에서 선전하고 있다. 지난 2002/03시즌 강등 이후 3부리그까지 갔다 돌아온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힘든 시기를 넘기고 리즈의 EPL 생활을 즐기고 있는 팬들이다. 행복한 순간이지만 그래도 강등 순간 함께 했던 선수들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그 중 한 명인 하트는 1977년 아일랜드 드로게다에서 태어났다. 하트는 고향에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하트는 18세에 잉글랜드 명문인 리즈 유나이티드 유스에 스카웃됐다. 하트는 1996년 1군 데뷔까지 성공했다. 

하트가 리즈 1군에 데뷔하던 당시 그는 약관 남짓의 나이에 불과했다. 이에 1995/96시즌, 1996/97시즌, 1997/98시즌 첫 3시즌은 10경기 안팎을 소화하며 백업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8/99시즌부터는 1군으로 발돋움하게 되고 공교롭게도 리즈의 순항도 이 때부터 시작하게 됐다.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로 빛이 바랬지만 1998/99시즌 리즈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편이었다. 리즈는 쟁쟁한 경쟁팀들을 누르고 리그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당시에는 EPL의 리그 랭킹이 낮아 4위까지가 아닌 3위까지만 UCL 진출권이 주어졌다는 것. 이에 리즈는 UEFA컵 진출권 획득에 만족해야 했다. 

하트는 누적 경기 수가 늘어나며 왼쪽 풀백 자리에서 원숙한 실력을 만들어 갔다. 당시 리즈는 하트 외에도 리오 퍼디난드, 마크 비두카, 해리 키웰 등 당시 기준으로는 젊은 선수들이 가득한 팀이었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기세를 타자 리즈는 전혀 막을 수 없는 팀이 돼 버렸다. 

We are Leeds!' 하트와 리즈는 2000년 전후로 젊은 피를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하트와 리즈는 1999/00시즌에는 직전 시즌의 아쉬움을 씻고 3위를 기록,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그리고 이듬 시즌 참여한 UCL서 쟁쟁한 팀들을 누르고 4강에 다다르는 위엄을 보였다. 하트는 공수에서 활약하며 그 중심이 됐다. 

하트가 로이 킨, 로비 킨, 게리 켈리, 스티브 스톤튼, 맷 홀란드, 니얼 퀸 등과 함께 네덜란드를 침몰시키며 2002 월드컵에 진출하고 또 활약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야말로 소속팀과 대표팀 안팎으로 승승장구하던 하트였다.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리즈의 몰락은 그들이 가장 빛날 때부터 시작됐다. 리즈의 선전으로 중계권료 등 수입이 늘어나자, 리즈 수뇌부들은 노를 젓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었다. 리즈의 성적이 점차 떨어졌다. 리즈가 UCL 4강으로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2000/01시즌 그들은 리그에서도 4위를 기록했다. 아까 언급됐듯 당시 리그 4위는 차기 시즌 UCL에 갈 수 없는 성적이었다. 리즈는 UCL 진출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출을 감행했고 이는 큰 빚이 돼 돌아왔다. 이에 리즈는 선수들은 계속해서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트가 오른쪽 풀백이자, 자신과 친척 관계인 게리 켈리와 리즈를 지탱하는 동안, 팀 동료들이 하나 둘 씩 빠져나갔다. 퍼디난드는 맨유로, 비두카는 미들즈브러로, 키웰은 리버풀로 떠났다. 전력은 약화됐고 하트의 분전도 한계가 있었다. 

하트는 2002/03시즌 37라운드 아스널 FC전 드라마틱한 프리킥으로 팀을 구하는 등 리즈의 강등을 막았지만, 어찌됐든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리즈의 빚은 이자로 갈수록 커졌고, 선수 유출은 더 심화됐다. 결국 하트의 분전에도 리즈는 2003/04시즌을 끝으로 강등됐다. 

하트가 헌신했던 리즈. 그 홈구장 앨런 로드

2003/04시즌을 끝으로 리즈가 강등당한 뒤 팀의 핵심이던 하트에게 많은 제의가 날아들었다. EPL 복수 클럽들도 하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EPL 잔류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하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하트는 레반테 UD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레반테 생활 역시 부침이 컸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하트는 레반테의 라리가 첫 경기인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전매특허인 그림 같은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이를 통해 팀에 승점 1점을 선물했다. 

하트는 레반테서도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 잡았지만, 1월 당한 근육 부상이 악재가 됐다. 해당 시즌 하트는 레반테가 잠시나마 라리가서 1965년 이래 최고 순위인 5위를 기록하는 것에 공헌했다. 하지만 근육 부상이 심해지며 결국 시즌 아웃됐고, 이후 레반테는 추락을 거듭하며 2부리그로 강등됐다. 

하트는 부상으로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을 갖고 세군다리가에서 한 시즌 함께 했고 팀을 다시 1부리그로 돌려놨다. 하지만 정작 라리가에 복귀한 2006/07시즌 또 다시 부상으로 신음했고, 결국 시즌 후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종료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 

아주 어려웠던 이 때 아일랜드 대표팀 동료였던 로이 킨이 손을 내밀었다. 아일랜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인 킨은 당시 선덜랜드 AFC를 지휘 중이었다. 킨은 선덜랜드의 승격은 이뤄냈지만, 스쿼드가 EPL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에 전방위적 보강을 단행하던 중이었다. 

킨은 자신의 인맥을 적극 활용해 선수들을 데려왔다. 맨유 시절 동료 드와이트 요크, 스코틀랜드 셀틱 시절 인연이 있었던 크레이그 고든을 데려오는 등 많은 선수들이 이런 방식으로 합류했다. 

킨이 타지 생활과 부상으로 힘들어하던 하트에게 손을 내밀었고 1년 계약을 맺었다. 하트는 이 시즌 리그 8경기를 소화하는 등 감격적인 3년만의 EPL 복귀전을 만드는 것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확실히 그의 기량은 부상과 출전 시간 결여로 떨어져 있었다. 결국 그는 2008년 6월 방출됐다. 

하트는 다시 경기장을 멋진 모습을 누비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이에 선덜랜드에서 방출된 2008년부터 그야말로 인간 드라마가 시작됐다. 하트는 자존심을 버리고 복수 팀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향했다. 블랙풀 FC, 칼라일 유나이티드 등에서 2부~3부를 오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트는 2010년 레딩 FC에 입단했고 여기서 반전이 시작됐다. 하트는 부상만 없다면 누구도 상대하기 힘든 풀백이었다. 다양한 팀서 뛰고, 여러번의 입단테스트를 받으면서 경기 감각을 깨웠고, 철저한 몸관리도 부상도 줄였다. 이에 레딩 입단 후에는 다시 붙박이로 복귀했다. 

하트는 2부리그였기는 했지만 2010/11시즌 모든 대회 47경기를 소화하는 등 남다른 체력과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1/12시즌 팀의 승격에 힘을 보태면서 다시 마침내 EPL로 복귀하는 것에 성공했다. 

약관에 가까웠던 어린 유망주가 날카로운 왼발 킥으로 EPL을 누볐었다. 그런 그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수가 돼 꿈의 무대인 EPL에 복귀한 것이다. 물론 절대 이전의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트는 레딩의 정신적 지주이자, 프리키커로 팀에 힘을 불어 넣었다. EPL 16경기에 리그컵 1경기, FA컵 1경기. 모든 경기, 한 경기 한 경기가 큰 의미가 됐다. 하트의 모습에 이번부터 그를 지켜봐왔던 팬들이 미소지었다. 

하트는 2012/13시즌 후회 없는 시즌을 보낸 뒤 레딩과 결별했다. 하트는 AFC 본머스로 합류한 뒤 2시즌 간 활약 후 유니폼을 벗었다. 찬란히 빛나던 리즈의 황금 왼발이, 마지막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2002/03시즌 아스널전서 팀을 구하는 골을 넣은 뒤 환호하는 하트

◇EPL 최고의 순간

2002/03시즌 37라운드에서 아스널 FC와 리즈 유나이티드가 맞붙었다. 당시 재정난으로 선수들을 대거 판 리즈는 강등 위기에 놓여 있었다. 우승 경쟁을 벌이던 팀인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위기 속에서 하트가 영웅이 돼줬다. 하트는 이날 오른쪽 측면에서 그림 같은 감아차기 프리킥으로 팀의 3-2 승리를 견인했다. 이날 극적인 승리와 38라운드 승리를 더한 리즈는 승점 5점 차 가까스로 강등을 피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

갖춰야 할 능력을 대부분 보유한 준수한 풀백이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EPL을 대표하는 풀백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돋보였던 것은 날카로운 왼발킥. 이를 이용해 프리킥 득점은 물론 택배 크로스로 수없이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프로필

이름 – 이언 하트

국적 – 아일랜드

생년월일 - 1977년 8월 31일

신장 및 체중 – 175cm, 73kg

포지션 – 레프트백

국가대표 기록 – 64경기 12골
 
EPL 기록 – 237경기 28골

◇참고 영상 및 자료

프리미어리그 1996/97시즌~2012/13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맨체스터 시티 공식 홈페이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 마켓> - 선수 소개란

<미러> - Leeds United's promotion celebrated by Irish fans including club legends Ian Harte and Gary Kelly

<리즈 라이브> - Where are they now? The Leeds United players that beat Liverpool 4-3 in 2000/01

<리즈 라이브> - Former Leeds United duo hoping to be the latest to launch Elland Road family dynasties

<스카이 스포츠> - The fall and rise of Leeds United

사진=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이형주 기자(영국 리즈/앨런 로드)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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