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상처 극복한 한국.. 내 희생에 보람 느꼈다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쟁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신 고인은 전쟁 상흔을 극복한 한국 모습에 큰 보람을 느끼셨죠."
6·25전쟁 참전용사인 고인은 올해 3월 97세를 일기로 타계한 뒤 미국에 묻히는 대신 한국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6·25전쟁에 참전한 희생을 뜻깊게 생각한 가족이 그를 설득했고, 결국 고인도 생전에 유엔기념공원 안장을 결심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일 오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미국인 노병 러셀 해럴드 존스태드의 유족 눈가엔 이슬이 촉촉히 맺혀 있었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고인은 올해 3월 97세를 일기로 타계한 뒤 미국에 묻히는 대신 한국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고인은 1923년 10월 23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미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한동안 징병제가 유지됐고 고인은 1949년 미 육군에 입대했다. 특히 1950년 12월부터 1952년 6월까지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서 싸웠다.
절대 다수 미국인에게 ‘코리아(Korea)’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였다. 지도상에서 찾아보라고 하면 찾을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왜, 누구를,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잘 모르는 채 상관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던 중 쓰러져갔다.
당시만 해도 문명과는 거리가 먼,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한국에서 죽음의 공포를 안고 하루하루 살았던 고인은 전후 한국에서 치른 6·25전쟁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the worst time of my life)’이라고 회상했다고 한다.
6·25전쟁 중 전사한 미군 등 유엔군은 당시 부산에 있던 유엔묘지에 묻혔다. 미군의 경우 6·25전쟁 참전국들 중 가장 많은 병력을 보냈고 3만6000명 이상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다만 전쟁이 끝난 뒤 거의 다 본국으로 이장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미군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애초 고인은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유엔기념공원에서 쉴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 유엔기념공원 안장을 망설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에 참전한 희생을 뜻깊게 생각한 가족이 그를 설득했고, 결국 고인도 생전에 유엔기념공원 안장을 결심했다.
유엔기념공원 관계자는 “유엔기념공원에 유엔군 참전용사가 개별적으로 안장된 것은 고인이 12번째”라며 “현재 유엔기념공원에는 모두 11개국 2310명의 6·25전쟁 참전 유엔군 용사가 잠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자와 외도한 아내 ‘사망’…남편 “변명 한마디 없이 떠나”
- 백혈병 아내 떠나보내고 유서 남긴 30대...새내기 경찰이 극적 구조
- "北남녀 고교생, 목욕탕서 집단 성관계" 마약까지...북한 주민들 충격
- “배현진과 약혼한 사이" SNS에 올린 남성, 재판서 혐의 인정
- “영웅아, 꼭 지금 공연해야겠니…호중이 위약금 보태라”
- 미성년 남학생과 술 마시고 성관계한 여교사 되레 ‘무고’
- 술 취해 발가벗고 잠든 여친 동영상 촬영한 군인 [사건수첩]
- “내 친구랑도 했길래” 성폭행 무고한 20대女, ‘녹음파일’ 증거로 덜미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