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20년 살았어도 다른 게 느껴져요"..'벽'을 넘는 법 [커버스토리]
[경향신문]
■서로의 진실된 삶 얘기하면…혐오도, 차별도 사라지겠죠

한국 청년 예술가들과 작업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그려
한국·중국어 쓰지만 한민족
“서로 이해하는 계기 됐으면”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모텔 지하실. 낭독극 <세 번째 얼굴>의 연습 공간이다. 지난 11일 오후 6시, 배우들이 하나둘 도착한다. 20~30대인 한국인 청년 예술가들과 40~60대의 중국동포 여성들이다. “일이 너무 바빠.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야.” 남규리씨(42)가 연습실에 들어서며 하소연했다. 주머니에서 안경상자를 꺼낸다. “대본이 잘 안 보여 돋보기 가져왔지.” 대본은 형광펜 표시로 가득하다.
“체온부터 재겠습니다.” 총연출을 맡은 작가 김주희씨(29)가 배우들 이마에 체온계를 들었다. 탁자 위엔 커다란 물통과 노트북, 간식과 대본이 올려져 있다. 배우의 몸동작이나 별다른 소품 없이 진행하는 낭독극에서 탁자는 무대나 마찬가지다. “아, 창용 역은 임범규 연출이 맡기로 했어요.” 창용의 대사는 모두 중국어다. 임씨(33)가 어렵게 외운 중국어 대사를 자신 있게 읊자 모두 크게 웃는다.
<세 번째 얼굴> 주인공은 30대 비혼모인 한국 여성 ‘인아’와 40대 중국동포 여성인 ‘소분’이다. 인아는 10대 딸 ‘혜지’를 홀로 어렵게 키우며 산다. 소분의 10대 아들 ‘창용’도 한국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들은 오해하고 갈등하다 이해한다. 서로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 두 사람 다 가장이자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다.
20~30대인 청년 예술가들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처음 중국동포들과 만났다. 배우로 참여한 중국동포 여성들도 연기가 처음이다. 이들은 함께 대본 연습을 한다. 웃고 떠들고, 간간이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진실을 녹인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세 번째 얼굴>은 김씨가 기획한 ‘두 개의 언어, 하나의 몸’ 프로젝트 중 하나다. 각각 한국어와 중국어를 쓰지만, 한민족이란 뜻의 제목이다.
동작구 신대방동에 사는 김씨는 종종 중국동포 이웃과 마주쳤다. 특유의 억양과 시원시원한 성격을 매력적으로 느꼈다. 차별과 혐오의 표적이 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도 느꼈다. 사회문제를 두고 당사자들 증언을 문학의 형태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중국동포, 한부모가족,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등)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분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곧 막이 오른다.
■같은 얼굴에 같은 말 쓰며 곁에 사는데…아프다, 여전히 ‘다른 시선’
낭독극 ‘세 번째 얼굴’ 준비하는 2030 한국 예술가 4060 중국동포 여성…‘두 개의 언어, 하나의 몸’ 프로젝트

김연순(64) “한국서 20년 살았어도 다른 게 느껴져요”
1998년 한국에 왔다. 고향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치치하얼시다. 한국에 형제가 살았다. 귀화해 국적을 얻었다. 20년 넘게 살았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은’ 하고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이 나이에 무슨 목표가 있냐”며 웃는다. 자녀 또래 한국 배우들과 연습할 때 나눠 먹을 걸 챙겨온다. 식당을 경영하는 ‘미자’ 역을 맡았다. 새벽 4시 집을 나서 오전 6시까지 청소 일을 한다. 오전 내내 요양보호사로 활동한다. 오후 8시 반이면 잠자리에 든다. 연습 날 자정 넘어 잠들기도 한다.
#차이
“한국에 와서 식당, 간병인 안 한 일이 없어요. 이제는 오전에만 일해요. 오래 살았지만 다른 게 왜 없겠어요. 느껴지지요. 교포는 교포니까요. 모르는 점도 있고 나라랑 문화가 다르니까요. 조선족을 다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싸가지 없다, 소리 지른다, 자기 생각만 한다’고요.”
#이해하기
“작가님한테 연락이 와서 만나보기로 했는데, ‘이러다 말겠지’ 했어요. 작가님이 자상하게 조곤조곤 말해주니까 조금 마음이 끌리면서도 할까 말까 망설였어요. 다들 모여서 한국 와 어떤 애로를 겪었는지 이야기하고, 또 서로 듣다 보니까 기분이 좀 괜찮아졌어요. 다른 분들도 마음이 붙게끔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극 중 식당 직원들이 회식하는 장면이 나와요. 마음속 말을 하잖아요. 투정 부리고 챙겨주네 마네 하지만 누군가 아프면 달려가잖아요. 배우나 작가 선생님들과도 실제로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야기하다보니까 ‘연극을 해도 괜찮겠다, 할 바에는 조금 노력해서 하자’ 그런 마음을 먹었어요.”
정연주(36) “배우 13년차…새로운 모습 느낄 좋은 기회”
“이제 못하겠어요.” <세 번째 얼굴> 연습이 시작되면 30대 비혼모 ‘인아’ 역을 맡은 배우 정씨의 대사가 먼저 울린다. 전문 배우의 훈련된 목소리가 연습실 공기의 질감을 바꿔놓는다. 13년차 배우다. 2008년부터 7년간 극단 소속으로,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힘들 때가 많죠. ‘이래서 연극을 하는구나’ 하는 답을 계속 찾아가고 있죠.” 대화 목소리도 깊고 울림이 컸다.
#첫 연극
“처음 연극을 접한 건 고교 2학년 때였어요. 대학로에 처음 갔어요. 그날 본 공연이 아직도 기억나죠. ‘극단 여기’의 <시유어겐>(時遊. again)이었어요. 소극장을 나설 땐 눈이 내렸는데, 연극 내용과 눈 내리던 거리의 분위기가 따듯하고 좋았어요. 청소년 극단에 지원했죠. 오랜 시간 다양한 역할을 했지만, 선생님들과 함께 일해보는 기회는 흔치 않은 일이에요. 저에겐 새로운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이야기
“ ‘인아’는 10대 딸을 홀로 키우다 조선족 여성들과 만나게 돼요. 처음엔 인아가 친절한 사람이라고 봤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악착같이 살아오면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가진 인물인 것 같아요. 대본을 읽다 보면, ‘소분’이나 ‘미자’ 모두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상황만 생각하다 인아가 쓰러져 입원하자 다들 어머니, 언니처럼 달려와 병문안도 하고 챙겨주죠. 그러면서 마음을 여는 것 같아요.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비혼모라서, 조선족이라서라기보단요.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이야기, 인간이라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같아요.”
이인자(62) “돈 욕심 없어…노래하고 콘서트 여는 게 꿈”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도 노래를 즐겨 부른다. 직접 만든 노래에 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가수가 되고 싶어 한국에 왔다. 인터넷으로 노래대회를 찾아 신청한다. 예술을 하고 싶어 낭독극에 참여했다. 직접 지은 노래가 공연 당일 함께 열리는 전시 ‘길’에 나온다. 극중 딸인 ‘소분’을 두고 한국으로 떠났던 ‘필례’ 역을 맡았다.
#노래
“마흔 살이 좀 넘어서부터 노래를 했어요. 환갑잔치 같은 데서도 노래하고 그랬거든요. 천성적으로 노래를 좋아해요. 좋아하다 보니까 노래를 하게 됐고 예술을 하게 되고 그랬죠. 음악 지식은 따로 안 배우고 혼자서 공부했어요. ‘도레미’ 악보 그리는 법이나 작곡하고 노래하는 법을 연습했지요.”
#꿈, 콘서트
“중국 옌지에 투먼이라는 데가 고향이에요. 한국에 온 게 2년이 안 됐어요. 이전에는 여행비자로 3개월 정도 왔다 갔다 했어요. 음악·예술 대회 같은 것 찾아보고 노래자랑에 나가고 그러려고 왔던 거예요. 지금은 장애인 도우미 일을 하고 있어요. 월세 내고 밥 먹고 하는 정도만 벌어요. 돈을 벌자는 욕심이 크게 없어요. 꿈이 있죠. 노래하고 싶은 거, 콘서트 여는 게 꿈이에요. ”
우유진(28) “연변 말투는 우스꽝스럽다 오해 했었죠”
‘인아’의 딸인 10대 ‘혜지’ 역을 맡았다. 서먹한 순간마다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 “방황의 시기”를 보낸 뒤 2016년 첫 공연을 하며 연기 생활을 이어간다.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배우 모집 때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중국동포 여성 역할을 맡게 될지 몰라 기대했다. “연극은 사람을 밑으로 늘려주고, 옆으로 넓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드라마
“선생님들이랑 처음 만날 때는 긴장도 되고 좋게 보이고 싶어서 밝은 옷을 입고 갔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엄마 같고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저희 이야기를 궁금해하셔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길어졌죠. 선생님들이 연기를 하게 되고 대사를 하는 이 모습 자체가 드라마죠. 선생님들이 처음에 연기를 어려워하셨는데 계속해서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어요. 대본 텍스트가 그저 대사로 들리지 않아요. 자연스러운 이야기처럼 할 때 놀라워요. 오히려 제가 너무 연극적으로 할까 걱정돼요.”
#연변 말투
“미디어에서는 ‘연변 말투’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잖아요. 저도 그런 편견을 가지거나 오해를 했던 것 같아요. 연순 선생님은 한국에서 오래 사셨고 말투도 완전 한국 억양이에요. 그 말투가 남은 분도 있는데,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미디어에서 봤던 것과는 달랐어요.”
#어두운 거
“연순 선생님에게 ‘좋아하는 색깔이 뭐예요’하고 물었을 때가 생각나요. 답을 못하시더니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글쎄 그냥 어두운 거’ 이러시더라고요. 마음이 되게 그랬어요. 좋아하는 색깔이라는 건 흔한 질문이잖아요. 선생님이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눈만 뜨면 일만 했다’고 하신 게 생각도 나고요. 이제는 점점 밝은색 옷도 입으시고 머리에 포인트도 주고 하면서 제가 오히려 기분이 좋아져요.”

남규리(42) “대사 읽기만으로 만족했지만 지금은 열정적”
중학생 때 1000명쯤 되는 학생들 앞에서 전통춤을 혼자 췄다. 무대에 오르는 건 자신있다. 무역업을 오래 하면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일하는 태도를 익혔다. 한국에 와서도 무시받은 기억이 없다. 당차고 자신감이 넘친다. 10대 아들을 홀로 키우는 40대 여성 ‘소분’ 역을 맡았다. 인아와 소통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책임감
“가족들은 1991년 한·중 수교 전에 한국에 갔어요. 헤이룽장성 무단장(牡丹江)이 고향인데 그때 우리 동네에 한국 열풍이 불었거든요. 돈 벌 수 있는 사람들은 다 한국에 갔을 때예요. 주말마다 동네 언니들끼리 지냈죠. 동네 할머니들이 밥해주고 그랬어요. 지금이랑 달리 전화 통화도 어려웠어요. 동네에 전화가 한 대밖에 없었어요. 한국에 간 가족들도 늘 긴장하며 살고 그랬어요.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오면 ‘우리 집 기둥이 너다’하고 그랬어요. 책임감이 무거웠죠.”
#13년 떨어져 산 엄마
“ ‘소분’ 역할은 은근히 감정 표현이 어려워요. 남들에게는 친절한데 중국에 있는 엄마하고는 무뚝뚝해요. 후에 가서는 조금 마음의 문을 열고 그러는데 여전히 서먹한 것 같아요. 엄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감정은 겪어보지 못했어요. 저는 안 그랬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 엄마랑 13년 동안 떨어져서 살았어요. 오랜만에 봤을 때 서먹하지 않았어요.”
#열정
“처음에는 내 차례에 맞게 대사를 읽는 것만으로 만족했어요. 지금은 나름대로 감정을 이해해서 표현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잘 이해가 안 되면 직설적으로 묻는 편이에요.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않아요. ‘이런 감정이다’ ‘저런 감정이다’ 물어보고 이야기해요. 잘될 것 같아요. 다 열정적으로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목소리랑 태도도 달라지고 있어요. 긴장하지만 않으면 잘할 것 같아요. 잘해야죠.”

민혜리(31) “조선족은 위험…잘 모르고 편견 있던 것 같아”
작곡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국동포 여성 목소리를 담은 사운드 전시와 낭독극의 배경음악 등을 담당한다. 극 흐름과 배우들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대본 연습도 놓치지 않는다. 연출가 출신인 그는 김주희 작가, 임범규 연출가와 함께 창작단체인 ‘프로젝트 1인실’에서 활동한다.
#위험?
“조선족 선생님들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알게 모르게 사소한 편견이 있던 것 같아요. 관심이 적어서 잘 모르는 부분도 많았던 것 같고요.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고 주변에 이야기하면 ‘위험한 거 아니냐’ ‘괜찮은 거냐’ 같은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조선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런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엄청나게 큰 편견이 흔하게 있다고 생각해요.”
#변화를 보다
“코로나19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됐잖아요. 작은 공연장에서 한정된 인원을 상대로 공연하는데, 여러 걱정이 돼요. 잘되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처음엔 대본을 국어책 읽듯이 하셨는데, 그 의미를 이해하다 보니 이제는 입에 붙게 말하시는 것 같아요. 대사도 자연스러운 자신의 말투로 수정하고요. 처음에는 전문배우도 아닌데 망신당하는 거 아니냐고 두려워하셨는데, 이제는 저희보다 더 힘이 넘쳐요. 적극적으로 변하셨어요.”
#관객의 입장이 되어보기
“선생님들이 전문배우가 아니니까 처음에 연극 특성을 설명해 드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그런데 많이 배운 점도 있어요. 같은 일을 비슷한 사람들과 계속하면 틀 안에 갇히게 되죠. 선생님들은 저희와 다른 시각으로 보시는 것이 있어요. 일반 관객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제 바깥쪽에서 새로운 걸 가져오는 게 더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봐요. 전시와 공연도 준비하고 있어요. 편견을 없애는 데 도움되길 바라요.”
■두 땅 넘나들며 살아온 생생한 목소리…이젠 ‘편견의 벽’ 넘어주세요

임범규(33) “연출자로 내 안의 편견에 죄송한 마음 들어”
연출가다. 중도입국 자녀인 10대 ‘창용’ 역을 맡았다. 극중 대사가 모두 중국어다. 중국어를 할 줄 몰라 발음을 한글로 적어두고 손을 휘저으며 대사를 읊었다. 배우 출신이다. 연출가가 된 건 3년 정도 됐다. 이전에는 탭댄스를 췄다. 너무 배고파서 춤은 그만뒀다. 무대에서 지내며 살고 싶다는 마음에 연극을 시작했다.
#사과
“작업 초반 조선족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면서 편견의 벽이 많이 무너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면서는 친근해진 느낌이에요. 프로 배우도 아니고 자유로운 언어(한국어)도 아닌데 대단한 것 같아요. 말투가 부끄럽다고 하시는데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씀드렸어요.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냥 사투리 같아요. 대본 리딩 초반에 ‘그동안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냥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음을 흔들다
“소분 선생님(남규리씨)이 어릴 때 혼자 고향에 남겨졌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송금이 자유롭지 못해서 미국을 경유해 불편하게 돈을 받으면서 그걸 잘 보관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들이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가족의 기둥이라는 압박에 부담감을 느끼고 돈뭉치를 들고 울며 힘들어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많이 갔어요.”
#배우의 덕목
“선생님들이랑 배역 이야기를 많이 해요. 캐릭터 마음 상태 같은 거요. 좋은 배우의 덕목 중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선생님들이 인물 개개인에게 집중해왔다면, 상대 배역과 마주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익히는 느낌이 들어요. ‘어 나쁘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구영자 (58) “달라지지 않는 차별…언젠간 돌아갈 것 같아”
‘연지’는 성격이 쾌활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식당에서 일하기 전 제시한 근무 조건이 커피 마실 시간을 줄 것과 트로트나 드라마가 나오는 TV 채널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구씨도 음식을 하거나 설거지할 땐 항상 노래를 흥얼거린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김원중의 ‘바위섬’이다. 2009년 한국에 처음 왔다. 무역회사에 다니며 한국과 중국을 오갔다. 한국전쟁 때 중국으로 피란을 간 부모 덕에 한국어는 자연스럽다. 한국에 정착한 뒤 중국어 강사로도 일했다.
#코로나19
“차별은 많이 느끼죠. 구청에서 직업 소개해 주는 곳에 가도 중국인이고 한국 국적이 아니라서 안 된다고 하는 식의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코로나 지원금 주는 것도 그래요. 그거 다 세금으로 주는 거잖아요. 우리도 다 세금을 내고 있단 말이에요. 세금은 다 걷어가고 지원금은 중국인이라고 안 주고. 너무 많이 실망했어요. 그런 것도 차별이죠. 중국에 결국 다시 돌아갈 것 같아요. 여기는 물가가 비싸니까요. 중국보다 소비를 많이 해야 하니까 힘들죠. 중국에 가면 그래도 국적이 있으니까 비슷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소수민족이라서 차별은 있는데 그래도 별로 어려운 건 없어요.”
#배려하기
“연습 첫날 좀 당황했어요. ‘내가 잘할 수 있겠나’ 그런 느낌이 막 들었어요. 해보니까 재밌어요. 배울 점도 너무 많고 ‘오길 잘했구나’ 생각하게 돼요. 배우분들 보면 ‘어떻게 저렇게 현실적으로 잘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랐어요. 다들 아들하고 비슷한 나이인데, 기특하고 밝고 좋아요.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더라고요. 다들 멀리서 오고 힘들 텐데 너무 씩씩하게 항상 일찍 오고 고생한다고 먼저 인사해주고 그래요. 우리가 고생한다고 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김주희(29) “알아가려는 모습이 되레 상처 주지 않았으면”
책·논문 읽고 동포들 만나고
기록한 메모 기획 노트에 빼곡
동포들에 대한 인식 좋아지길
작가다. <세 번째 얼굴>의 대본을 쓰고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세 번째 얼굴>을 포함한 프로젝트 ‘두 개의 언어, 하나의 몸’을 구상하며 4000원짜리 노트에 메모를 가득 남겼다. 다양한 책과 논문을 찾아 읽으면서 중국동포 문제를 미리 연구했다. 극 준비 과정에서 많은 걸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편견이 남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편견을 깨트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한 경험. 이제는 상대를 더 알아가려는 모습이 도리어 대상화하고 상처를 파헤치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
“원래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졸업한 뒤 희곡을 하게 됐어요. 예술이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방향을 고민하는 작업이 많았어요. 뭔가 세상과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에 희곡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한강구조대의 이야기를 다룬 <마르지 않는 분명한 묘연한>이라는 작품을 가장 오래 쓰고 고쳤던 기억이 나요. 한강 입수 체험을 하는 곳에서 직접 경험해보기도 했어요.”

#여행자
“ ‘여행자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시나 일기로 써달라’는 부탁을 드린 적이 있어요. ‘더 바랄 게 없다’ ‘자식들 컸으니 꿈이 없다’는 분들도 있고,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한 분들도 있고…. 이땅 저땅 넘으면서 힘들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신 분들도 있고요. 저희들에 관해 궁금해하실 수도 있어서 제비뽑기로 ‘버킷리스트’(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말하기도 했어요. 서로 알아가면서 저희나 선생님들 모두 즐거워하셨어요.”
#미래를 그리다
“10월 중순쯤 선생님들하고 모였는데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과정이 있었어요. 마침 노래방 기계가 있어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그랬어요. ‘아리랑’이나 저희가 다 아는 그런 한국 트로트를 부르셨어요. 그래서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까지 비슷하네’하고 이야기한 게 생각나네요. 이번 프로젝트로 동포분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미래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미쳤으면 좋겠어요.”
■청년 예술가들 프로젝트 ‘두 개의 언어, 하나의 몸’ 중 하나

낭독극 ‘세 번째 얼굴’
중국동포 2~3세대들의 이야기
양덕자 다사랑운동본부 회장과
안순화 생각나무BB대표 큰 힘
사운드·아카이빙 전시도 함께
<세 번째 얼굴>은 출연자인 40~60대 중국동포 여성 3인의 경험담이 밑바탕을 이뤘다. 한국에 와서 어떤 일을 했는지,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심정은 무엇인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대본을 만들었다. 등장인물의 상황과 성격이 배우들과 닮았다.
양덕자 다사랑운동본부 회장(사진)과 결혼 이주여성 지원 단체인 안순화 생각나무BB센터 대표 등 이주민 단체가 제작에 도움을 줬다. 작가 김주희씨는 안 대표 소개로 중국동포를 처음 만났다. 그는 책과 논문으로만 알던 중국동포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안 대표는 양 회장을 소개해줬다. 양 회장은 배우 섭외에 애를 먹던 김씨에게 단체 회원과 지인들을 소개해 배우를 모집할 수 있었다. 연습실로 쓰는 곳도 양 회장이 활동하는 다사랑운동본부의 활동실이다.
양 회장은 중국동포다. 2000년대 초 한국에 왔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와 열세 살, 아홉 살이던 오빠와 언니랑 헤어진 뒤 중국에서 지냈다. 한국에 정착한 중국동포들은 양 회장처럼 한국전쟁 때나 일제강점기 지금 중국 동북부에 자리 잡은 중국동포의 2~3세대 자녀들이다. 1990년대 한·중 수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국내에 들어왔다.

양 회장은 한국국적을 취득했지만 여전히 차별을 느낀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처음에는 중국에서 왔다면서 경계하고 그랬는데,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코로나19에 걸리면 손가락질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한다”면서 “이렇게 연극을 함께 준비하며 알아가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하고 동포들이 서로에 대한 인식을 고쳐가면 좋겠다”고 했다.
안 대표는 “출신지에 따라 미국이면 ‘오~’ 하고, 중국이면 ‘우~’ 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배경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에서 왔든 현재 모습 자체를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동등한 위치에 있지만, 그저 한국어가 좀 서툰 사람이라고 여기면 좋겠다. 굳이 동포나 같은 민족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개인으로 서로 이해하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 번째 얼굴>은 28일 동작구에 있는 ‘공간 숨’에서 선보인다. 동작문화재단이 후원하고 청년 예술가들이 만든 프로젝트 ‘두 개의 언어, 하나의 몸’ 중 하나다. 공연 당일 중국동포 여성들의 목소리와 노래 등이 담긴 사운드 전시 ‘길’과 여성들이 아끼는 물건이나 이들을 촬영한 사진 등을 선보이는 아카이빙 전시 ‘촉각’도 함께 진행한다. 수익금은 중국에서 온 중도입국 청소년을 후원하기로 했다.

조선족은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표준국어대사전)’라는 뜻이다. 중국 정부에서 자국 내 다른 소수민족과 구분해 부르려고 만든 말이기도 하다. 조선족이란 호칭은 때론 혐오·멸시 표현으로 여겨진다. 대중문화 영향도 작용했다. <청년경찰> <황해> <범죄도시> 같은 영화에선 ‘돈밖에 모르는 잔혹한 범죄자’로 조선족을 묘사해 비판을 받았다. 조선족 수는 국내 체류 외국인 중 70만1098명이다.
‘중국동포’로 순화해 부르라고 국립국어원은 권고한다. 실생활에선 조선족 또는 동포(同胞·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나 교포(僑胞·다른 나라에 머물러 살며 그 나라 국민으로 사는 동포)를 섞어 쓴다. ‘두 개의 언어, 하나의 몸’ 프로젝트는 논의 끝에 조선족으로 통일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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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준표 “신천지 몰표 공작 꿈에도 생각 못해…윤석열 정권 태어나지 말았어야”
- 이 대통령 “검사 권력 완전 빼앗으면 나중에 책임 어떻게 지나…행정은 그러면 안돼”[대통령
- ‘음주운전만 4차례’ 임성근 셰프···방송활동 전면 중단
- ‘일하는사람법’ 공청회 “처벌 규정 강화하고 후속 입법해야”
- [속보]이 대통령 “‘이재명 죽어야 나라 산다’ 설교하는 교회 있어···반드시 뿌리 뽑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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