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월드]시진핑 물먹인 폭탄발언에 장화 반격까지..아슬아슬 리커창

서유진 2020. 11.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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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명 월수입 17만원"
폭탄발언에 뿔난 시진핑
경제 회의서 리 총리 배제
리총리, 홍수 피해지역 '장화' 시찰로 반격
권력투쟁까진 안 갈 것
소신발언도 선 안 넘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만년 2인자라는 평가를 받는 리커창 총리가 중국의 14차 5개년 경제계획(2021∼2025년) 수립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내놨다.

1인자인 시 주석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분위기에서 나온 '결이 다른 발언'이다.

리 총리는 18일 인민일보를 통해 '14·5 계획 시기 경제사회 발전의 지도 방침'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는 "현재 인민 대중이 교육·의료·주택, 식품·의약품 안전, 소득 분배 등에서 느끼는 불만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3기 13차 회의가 5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가운데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전인대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 총리의 이런 '소신 발언'은 뜬금없이 나온 건 아니다. 뉴스위크 일본어판은 지난 9월호에서 시진핑-리커창의 '물밑 신경전'을 자세히 다뤘다. 뉴스위크는 "올해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부터 8월 수해 피해지 시찰에 이르기까지 시진핑과 리커창의 치열한 암투가 펼쳐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5월, 시진핑의 꿈에 찬물 끼얹은 리커창의 '월수입 17만원' 발언
5월 28일 1년에 한 번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폐막한 그 날, 리커창 중국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중국의 빈곤 문제에 대한 기자 질문에 대답하던 그는 "지금 중국에선 6억명이 월수입 1000위안(17만원) 전후이고, 1000위안으로는 집세 내기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회견은 중국 CCTV에서도 생중계됐기 때문에 그가 밝힌 이 숫자는 곧바로 파문을 일으켰다.

올해 3월 국가통계국이 공표한 2019년 중국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만 892위안(1만 392달러)으로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었다. 7만 위안(1181만원)이란 숫자에 뿌듯했던 중국인들에게 14억명 중 40% 이상이 1년간 1만 2000위안(203만원)을 번다고 말한 총리의 계산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5월 21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회식에 참석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 [AFP]

이 발언은 시 주석이 그간 선전해온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반박으로 읽힐 여지도 충분했다.

올해 시 주석은 "중국 14억 모든 국민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할 작정이었다. 중국 지방 간부들은 '탈(脫)빈곤의 성과'를 만들려고 했다. 올해 들어 성·자치구들은 "우리 지역은 탈빈곤을 앞두고 있다"고 선언하기 시작했다. 인구 8000만명의 장쑤성은 "우리 성에서 이제 빈곤한 사람은 17명만 남아있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리 총리의 입에서 나온 숫자 하나가 낭패였다.

뉴스위크는 "리 총리가 이 숫자의 '살상력'을 모를 리 없다"면서 "시진핑 주석을 거명하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보여준 숫자로 인해 시 주석이 나라 실정을 무시하는 정치인으로 국민의 눈에 비쳤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리 총리가 사실상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싸움을 건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6월, 리커창의 '노점상 경제'에 관영 매체 "용어 쓰지 마"
6월 1일 리커창 총리는 옌타이의 주택가 노점상을 찾아가 "노점 경제는 중요한 일자리 근원으로서 중국 경제의 생기"라고 했다. 이 발언 이후 산둥, 장시성 등이 노점상을 임시 합법화했다.

하지만 노점상 경제는 곧 제동이 걸렸다. 자유아시아방송(RFA) 중문판에 따르면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6월 4일 관영 매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며 노점상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총리의 발언에 심기가 불편했던 시 주석의 속내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시 주석의 반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7월, 경제 문제 토의에 '경제통' 리커창 쏙 뺀 시진핑

지난 7월 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국영, 민영, 외자 기업인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리커창 총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화=연합뉴스]

7월 21일 시 주석은 베이징에서 경영자들을 초청해 기업인 좌담회를 갖고 경제 문제를 토의했다.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7명 가운데 시 주석을 포함, 4명이나 참석했다. 그런데 이 회의에 리 총리는 불참했다.

중국서 경제 운영은 원래 리의 몫이다. 외유나 지방시찰도 없었다. 이날 리 총리는 베이징에서 다른 외교 활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인민일보 보도로 판명됐다.

뉴스위크는 "직무담당이 경제 운영과 전혀 상관없는 위원까지 회의에 갔는데 리 총리가 참석하지 못한 것은 노골적인 리커창 배제"라고 분석했다. 한 달여 뒤인 8월 24일 열린 경제사회전문가 좌담회에도 리 총리는 없었다.

7월 3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판 GPS 베이더우 위성항법 시스템 개통식에서 굴욕적인 해프닝도 있었다. 시 주석이 호명될 때는 각종 수식어가 이어졌고 일어나 박수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리 총리 때는 이름이 빠르게 불려지고, 총리가 일어나려는 순간 바로 다음 사람이 호명됐다. 리커창은 반쯤 일어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다.


리 총리의 반격은 홍수 피해지역에서
리 총리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올해 여름 폭우로 인해 홍수가 일어난 남부 지역이 반격의 무대였다.

원래 중국 공산당 정권 전통에서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지도자는 반드시 재해 현장을 시찰하고 진두지휘한다. 그런데 시 주석은 피해가 이미 잠잠해진 안후이 성을 8월 18일 찾았다. 신화통신 공식 사이트에 게재된 시 주석의 수해지역 시찰 사진을 보면 강은 상당히 잔잔해져 수해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시 주석이 신은 신발도 깨끗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수해 피해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뒷 배경으로 펼쳐진 강은 잔잔한 모습이다. 시 주석을 비롯해 함께 시찰하는 사람들도 구두를 신고 있다. [신화망]

반면 같은 시기, 충칭은 며칠간 물류가 멈춰버릴 정도로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수해가 끝난 곳을 찾은 시진핑과 달리 리커창은 8월 20일 수해가 한창인 충칭으로 날아갔다. 21일 국무원 사이트에는 수해 현장서 리 총리가 장화를 신고 흙탕물을 헤치며 걷는 사진이 올라왔다. 인터넷 반응도 뜨거웠다.

지난 8월 리커창 총리(가운데)가 충칭 수해 피해지역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흙탕물에 발목이 잠긴 가운데 장화를 신은 리 총리의 모습. [중앙인민정부 홈페이지]

그러나 리 총리가 시찰을 한 8월 20일~23일 밤까지 신화통신·인민일보·CCTV 등 3대 중앙매체는 시찰을 보도하지 않았다. 뉴스위크는 "이는 역으로 리 총리의 충칭 시찰이 파괴력 있는 행동이었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8월 23일 밤이 돼서야 CCTV와 신화통신이 뒤늦게 소식을 보도했다. 24일 인민일보에서도 충칭 시찰 소식을 다뤘다. 뉴스위크는 "민간에서 리 총리를 지지하는 목소리에 밀려 시진핑 측의 '리커창 감추기'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원래 장쩌민파(시진핑) VS 후진타오파(리커창)…권력투쟁까진 어려워

리커창 중국 총리(가운데)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위탁으로 올 1월 우한 현지 시찰에 나서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원래 시 주석과 리 총리는 배경부터가 달랐다. 라이벌의 숙명을 타고난 셈이다. 지난 2007년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의 후계자를 결정할 때 후는 자신이 이끄는 공청단파의 희망인 리커창을 후계자로 밀고 싶어했다.

이에 장쩌민 일파가 내세운 대항마가 시진핑이다. 결과적으로는 시 주석이 2012년 취임하며 리 총리는 지난 8년간 은인자중하는 생활을 해왔다.

그랬던 리 총리가 올해 초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를 계기로 '잽'을 날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리커창 총리(가운데)가 올 1월 코로나가 한창이던 우한을 찾아 의료진들을 격려하고 있다. [중앙인민정부 홈페이지]

리 총리가 코로나가 극심한 우한에 먼저 들어가 위기대응을 했는데 그 후 코로나가 진정되자 시 주석이 "코로나 대책은 줄곧 나의 지휘 아래 있었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시 주석이 리 총리의 공을 가로챈 것이 소신 발언의 계기가 된 것이란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뉴스위크는 "시 정권이 내정과 외교 양면에서 상당한 교착상태를 보이면서 시진핑을 대체할 지도자를 찾는 마음이 공산당 내부와 민간에 퍼지기 시작한 것도 리 총리가 변한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안팎에서는 당 지도부 안에서 '소수파'인 리 총리와 절대권력자인 시 주석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성립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리 총리의 소신 발언도 당내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고 있다는 평가다.

서유진 기자·장민순 리서처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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