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접촉' 보고받은 정부, 이제 와 슬그머니 경고

김정환 기자 2020. 11. 2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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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의 석연찮은 뒷북 조치
남북정상회담 앞두고 접촉 시작.. 통일부·해수부·국정원에 보고

북한 나진항 개발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했던 부산항만공사(이하 항만공사)가 20일 통일부로부터 ‘서면 경고’만 받은 점을 두고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진항 사업은 2년 전부터 해수부, 통일부, 국정원도 이미 알고 있던 사업이다. 정부가 항만공사를 앞세워 대북 지원 사업을 몰래 시도했다가 최근 언론 보도와 국정감사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슬그머니 ‘뒷북 조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부산항만공사 사옥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실이 입수한 부산항만공사 내부 문건들에 따르면 조선족 김모씨가 총경리(사장)인 중국 훈춘금성은 2018년 2월 1일 북측 인사 김모씨를 통해 우리 측 민주평통 상임위원 유모씨를 접촉했다. 훈춘금성은 북한 나진항 개발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유씨를 통해 부산항만공사에 “북한 항만 개발 지원이 가능하느냐”며 접근했다. 이후 항만공사는 유씨와 민주평통 황모 사무처장 등을 통해 북측과 훈춘금성을 접촉하며 나진항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이런 내용이 해수부와 통일부, 국정원까지 보고됐다.

항만공사는 2018년 4~6월 ‘남북 항만 물류 상생 협력 방안’을 유씨가 운영하는 S컨설팅사와 공동 연구했다. 항만공사 문건에 따르면 유씨는 회사 관계자 2명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고, 항만공사는 이들에게 연구비 1900만원을 지불했다. 유씨는 “나진항 사업과 나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항만공사 관계자는 “유씨를 통해 나진항 사업 내용을 전달받았고, 관련 연구도 했다”고 말했다. 항만공사는 훈춘금성 사장 김씨와 직접 접촉도 했다.

사진은 나진항 3호 부두에서 선적 중인 컨테이너 화물의 모습./연합뉴스

항만공사가 우리 측 민간 업체를 끌어들이려 한 의혹도 있다. 항만공사 직원들은 2018년 5월 중국 톈진(천진)으로 출장을 갔다. 민간 해운회사 등의 중국 지사를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2018년 4월 27일) 이후 북방 물류 동향 파악’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항만공사는 출장 결과 보고서에 ‘부산항을 기점으로 동북 지역-북한 항만 연계 화물 집하 구상 및 국내 기업들의 기술 개발 대비 필요’라고 썼다.

항만공사는 2018년 8월엔 나진항 등 북측 항만 개발·운영, 예산까지 담은 종합 계획서도 작성했다. ‘부산항 유휴 장비 북측 제공’ ‘퇴직 전문 인력을 북측 파견’ ‘중장기적으로 (북측) 전문·기능 인력을 부산·인천 등에 초청·연수’ 등의 내용이 담겼다. 북측 항만 시설 현대화·개발에 7902억원이 들 것이라고 적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로 북한에 자금 지원을 하면 안 되는데도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다.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올 8월 27일엔 훈춘금성과 나진항 개발 관련 업무 협약서까지 만들었다.

북한 나진항 개발 사업 관계도

통일부 관계자는 “2018년엔 통일부와 협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올 8월 등 최근 통일부에 신고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한 사실이 올 10월 언론 보도 등에서 드러나 경고 조치를 한 것”이라고 했다. 2018년 당시엔 통일부도 이 사업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통일부가 이날 항만공사에 경고 조치를 한 것을 두고 “야당이나 언론에서 나진항 사업 관련 추가 폭로가 나올까 봐 이번에 털어버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최근 미국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비밀리에 대북 지원 사업을 벌인 일이 문제가 될 수 있어 항만공사에 경고 조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정부 당국 관계자는 “나진항 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은 맞지만, 실제 북한과 돈이 오간 것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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