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모는 일등칸, 완분은 꼬리칸.. 산후조리원은 설국열차?

남정미 기자 입력 2020. 11. 21. 03:06 수정 2020. 11. 2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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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된 조리원 천태만상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산모들이 수유실에 모여 모유 수유를 하는 모습. /tvN

‘sanhujori.’

이 영어 단어의 뜻을 아시는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이를 ‘출산 후 여성을 돌보는 한국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 산후조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postnatal care)가 있지만, 이 단어만으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한국식 산후조리가 따로 있다고 본 것이다. 삼칠일(三七日)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출산 후 21일간 대문에 ‘금줄'을 쳐서 새 생명이 탄생한 공간과 외부 세계를 격리시키는 관습이 있다.

산후조리원은 한국식 산후조리가 그대로 반영된 곳이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산모와 신생아를 관리해줄 사람과 장소가 마땅치 않자 생겨났다. 한때는 중산층 이상만 가는 시설로 생각하기도 했으나,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한 통계를 보면 산모 4명 중 3명(75.1%) 이상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했다. 해당 조사는 3년마다 한 번씩 시행되는 것으로, 최근 증가 추세를 감안한다면 이용 산모는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발맞춰 정부도 지난해부터 산후조리원 비용 200만원까지 의료비 세액 공제 대상에 포함했으며, 일부 지자체는 출산 장려 정책으로 산후조리원 2주 이용료를 내주기도 한다. 지난 2일에는 산후조리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산후조리원은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필수품’이 됐을까.

일러스트= 안병현

◇세계 최초 산후조리원의 등장

‘(산후조리원은) 1996년 10월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처음 문을 연 사임당 산후조리원에서 비롯돼 1997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여, 1999년 9월 말 기준 전국 250여개가 개원한 상태이며····'

2001년 여성건강간호학회지에 실린 산후조리원 관련 논문의 일부다. 당시 사임당 산후조리원장이었던 김계화(58) ㈜사임당홈케어 대표이사는 “사업자 등록을 하려는데 종목코드가 따로 없어서 ‘산후조리업'이라는 종목을 새로 만들어서 신청했다”며 “그 무렵엔 서양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에도 비슷한 개념의 상업 시설은 없었기에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라고 했다. “산후조리원 전에 제가 유치원을 운영했는데, 학부모 2명이 둘째 산후조리를 못 하게 된 일이 있었어요. 한 분은 시어머니가, 다른 한 분은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주기로 했는데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친정엄마는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거예요. 산업사회가 발달하고 핵가족화 되면서, 가정에서 산후조리 해줄 사람이 점차 없어지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서양에서는 산후조리원이란 개념이 생소하다. 처음 1년간은 김 대표도 힘들었다. 산후조리원을 ‘조산소’라고 착각해 “아이 낳으려는데 뭐가 필요하냐”고 전화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국에서 몸조리할 곳이 따로 없었던 해외 교포들 사이에서 차츰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1년이 지나자 몇 개월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김 대표는 “처음엔 산후조리원도 모자 동실(엄마와 신생아가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다”며 “일부 몸이 불편한 산모만 이동식 침대에 아이를 눕혀 간호사실로 보낼 수 있도록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산모가 아기 침대를 간호사실로 보내왔다”고 했다. 그 이후 산모와 신생아가 따로 지내는 지금의 조리원과 같은 형태가 자리 잡게 됐다. 조리원 비용은 당시 2주에 80만원. 그때만 해도 다소 비싼 가격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

이후 1999년 9월 말 기준 국내에 250여 개의 산후조리원이 생겨났다. 2000년 초반에는 일부 산후조리원이 경영 부실과 감염 사고 등으로 도태되면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2006년 294개소에서 2009년 418개소로 늘어났고 2015년 610곳으로 정점을 찍었다. 최근에는 2017년 598곳, 2018년 584곳으로 다소 주춤한 상태.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는 2018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산후조리원을 통한 산후조리 방식이 주된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음에도 산후조리원의 개소 수가 감소하는 것은 저출산의 영향이 큰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교육 현장이자 인맥 쌓기의 시작

지난달 말 아이를 낳은 이모(35)씨는 “임신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말 다음으로 ‘산후조리원은 어디로 했느냐’는 말을 많이 물어보더라”며 “나 역시도 양가 부모님이 해주시는 산후조리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고, 집으로 산후 도우미(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를 부를 경우 아무래도 집안일 등이 더 신경 쓰일 것 같아 임신 소식을 알자마자 산후조리원부터 알아봤다”고 했다.

이씨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A 산후조리원 일반실에서 신생아 1명을 동반하고 2주간 지내며 380만원을 냈다. 전국 산후조리원 평균 비용(228만원)보다는 비싼 편이지만, ‘강남 3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구에 있는 산후조리원의 평균 비용(503만원)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이씨는 “다소 부담되는 가격이긴 하지만 아이 기저귀 갈기부터 목욕시키기, 모유 수유하는 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 산후조리원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산후조리원은 초보 부모의 교육 현장이자, 산모들의 체형 및 피부 관리소이며, ‘조동(조리원 동기) 모임’으로 대표되는 엄마 네트워크가 처음 시작되는 공간이다.

일부 산후조리원의 경우 아예 자체 피부과를 갖춘 곳도 있다. 산후조리 기간에는 어차피 외출 등을 하지 않으니, 이 기간 점이나 기미·잡티 제거 등 피부 시술을 하려는 산모들을 위한 곳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최고가 산후조리원은 해당 산후조리원 출신 엄마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5성급 호텔에서 육아 전문가 등을 초빙해 강연을 듣거나, 일일 클래스 등을 가지기도 한다. 해당 산후조리원 출신 박지연(38·가명)씨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서로 고민 등을 나누거나 육아 정보를 주고받기 좋다”며 “경제적 배경이 비슷하다 보니 더욱 도움이 된다”고 했다.

◇완모는 일등칸, 완분은 꼬리칸?

드라마 ‘산후조리원’에는 설국열차를 패러디한 일등칸과 꼬리칸이 존재한다. 일등칸에는 자연 출산, 완모(완전한 모유 수유)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갈 수 있다. 꼬리칸은 일하는 엄마, 길지 않은 수유 기간, 완분(완전한 분유 수유) 산모들로 채워진다. 아직 모성이 뭔지 와 닿기도 전에, 이곳에서 산모들은 ‘엄마다움’을 먼저 배운다.

실제 대부분의 산후조리원은 모유 수유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국내 모자보건법 제10조3은 ‘산후조리원, 의료기관 및 보건소는 모유 수유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임산부에게 충분히 제공하는 등 모유 수유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생후 6개월 동안은 모유만 먹이는 게 가장 좋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따른 것이다.

지난해 3월 아이를 낳은 박모(35)씨는 “아이가 울면 모유 수유를 하러 오라고 ‘수유 콜’이 온다”며 “자연분만을 했지만, 회복이 더뎌서 저녁에는 수유 콜을 하지 말고 분유를 주라고 신생아실에 말했더니 ‘엄마 맞으세요?’란 질문과 함께 어떤 재벌은 아이를 2년 동안 모유로만 키웠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했다. 박씨는 “이후 산후조리원 생활이 가시방석 같았다”며 “둘째를 낳는다면 ‘엄마라면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산모의 불안감을 노린 과한 마케팅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10월 아이를 낳은 서모(32)씨는 “2주 안에 살을 빼지 않으면 부기가 그대로 살이 된다며 1회 30만원이 넘는 마사지 10회를 강요하더라”며 “최근 일부 연예인이 출산 후 곧바로 임신 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이에 압박을 느끼는 산모가 많다”고 했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산후조리원 관련 피해 처리 건수는 2017년 42건에서 2019년 105건으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를 집단 관리하기에 감염병에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꾸준히 문제로 지적된다.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산후조리원 내에서 발생한 감염병 환자는 총 1973명이었다. 특히 산후조리원 내 신생아 1만명당 로타바이러스 감염률은 2015년 1.78%에서 2020년 상반기 기준 4.08%로 2.3배 증가했다.

◇2주 55만원에서 2600만원까지...산후조리원 캐슬?

‘55만원 VS 2600만원.’

지난 6월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전국 산후조리원의 최저 비용과 최고 비용이다. 일반실·특실을 통틀어 전국 최고가는 서울 강남구 B산후조리원. 유명 연예인 등이 지낸 곳으로 특실은 신생아 1명과 2주 지내는 데 2600만원이 든다. 일반실은 1200만원이다.

B 산후조리원은 유명 독일차로 병원과 조리원 간 픽업 서비스를 운행하며, 수천만원 상당 최고급 침대를 쓴다. 신생아 전용 수영장이 있으며, 24시간 간호사가 1:1로 아이를 돌본다. 조리원 퇴실 이후에도 해당 간호사가 가정으로 찾아와 육아 상담 등을 돕는다. 비용이 가장 저렴한 산후조리원은 경남 창원에 있는 C산후조리원으로 일반실 기준 55만원, 특실이 75만원이었다. 전국 최고가가 최저가의 약 47.3배인 셈이다.

전국 산후조리원의 평균 가격은 일반실 228만원, 특실 292만원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는 일반실이 평균 503만원, 특실이 865만원으로 전국 평균 대비 2배 이상 비쌌다.

지난 2일 경북 울진군에 문을 연 '공공 산후조리원'의 모습. /울진군

민간 산후조리원이 보편적 시설로 자리 잡았지만, 저소득층 등을 위한 공공 산후조리원도 등장했다. 이 산후조리원들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가격은 전국 조리원 평균 가격 대비 70% 수준이다. 취약 계층, 국가유공자, 다문화 가족 등에게는 이용료 50% 감면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지난 11월 초 기준 서울 1곳, 경기 1곳, 제주 1곳, 전남 3곳, 경북 1곳 등 전국에 공공 산후조리원이 10곳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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