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활자에서 들리는 소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학시절 부르디외니 그람시니 하는 사회과학 서적만 읽던 나에게 김훈이란 이름은 별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 기자는 김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약육강식의 제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도덕 따위 운운하지 말라고 말하던 그가 이제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정 앞에서 소리 내 운다"고 했다.
보도 당일 기자사회에 화제가 됐던 그 지면은 물론 나도 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 잔혹하고, 비참하고, 서글픈 활자 뭉치에서 소리는커녕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부르디외니 그람시니 하는 사회과학 서적만 읽던 나에게 김훈이란 이름은 별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기자 출신이라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아니, 그때는 외려 부정적인 인상이 강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때 만난 어떤 이가 떠올랐다. “김훈을 좋아해 김훈 스타일로 글을 쓴다”는 그의 글은 어쩐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글솜씨는 퍽 좋아 보였으나 왠지 알맹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워싱턴포스트가 떠올랐다. 지난해 8월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참사 희생자 1196명의 이름만으로 지면을 만들었다. 지난해 탐사보도팀에 있을 때 이를 우연히 보고 ‘언제 한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 기사가 나온 것이다. 솔직히 말해 기사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한발 늦었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내 착각일까. 칼럼과 기고글을 보고 다시 본 그 지면에선 정말 거짓말처럼 소리가 들렸다. ‘퍽, 퍽, 퍽’ ‘쿵, 쿵, 쿵’ 놀라웠다. 김훈의 말대로 그것은 ‘킬링필드’였다. 부끄러운 감정이 확 밀려왔다. 나는 그 잔혹하고, 비참하고, 서글픈 활자 뭉치에서 소리는커녕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겠지만 그 뒤로 종종 어떤 활자들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언제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던 어느 꽃집에 붙은 ‘임대문의’ 종이에서, 3을 2로 고쳐 쓴 동네 헬스클럽 ‘월 2만원’ 전단에서, 늘 출근길에 보던 ‘제 아이를 찾습니다’ 포스터에서…. 때로는 ‘헉헉’, 때로는 ‘흑흑’, 때로는 ‘엉엉’ 하고 소리가 들린다. 거짓말처럼. 꽤 늦었지만 김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창수 문화체육부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성년 남학생과 술 마시고 성관계한 여교사 되레 ‘무고’
- "北남녀 고교생, 목욕탕서 집단 성관계" 마약까지...북한 주민들 충격
- “배현진과 약혼한 사이" SNS에 올린 남성, 재판서 혐의 인정
- “영웅아, 꼭 지금 공연해야겠니…호중이 위약금 보태라”
- 술 취해 발가벗고 잠든 여친 동영상 촬영한 군인 [사건수첩]
- 백혈병 아내 떠나보내고 유서 남긴 30대...새내기 경찰이 극적 구조
- 제자와 외도한 아내 ‘사망’…남편 “변명 한마디 없이 떠나”
- “정준영, 내 바지 억지로 벗기고 촬영…어둠의 자식이다” 박태준 발언 재조명
- “내 친구랑도 했길래” 성폭행 무고한 20대女, ‘녹음파일’ 증거로 덜미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