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슬기로운 겨울나기

남상훈 2020. 11. 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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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많은 곳이 그리운 지금 이 그림이 제격이다.

쌍을 이뤄 춤추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띄우고, 무리지어 담소를 나누는 남녀의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19세기 말 파리 근교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시민들이 무도회를 즐기는 장면이다.

무도회라는 형식만 다를 뿐, 여기나 거기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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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
사람 많은 곳이 그리운 지금 이 그림이 제격이다. 야외에서 무도회가 펼쳐진다. 쌍을 이뤄 춤추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띄우고, 무리지어 담소를 나누는 남녀의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화면 가운데 반갑게 인사하는 이들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옆의 청년과 엄마에게 무언가를 조르는 소녀까지 모두 즐겁기만 하다. 19세기 말 파리 근교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시민들이 무도회를 즐기는 장면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이곳을 소재로 당시의 낭만적인 생활을 표현했다. 무도회라는 형식만 다를 뿐, 여기나 거기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인물과 배경의 형태가 명료하지 않다. 윤곽선이 명확하지 않고, 색채도 거칠게 묘사됐다. 나뭇잎은 색 점들로 쪼개졌고, 멀리 보이는 사람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생략해 처리됐다. 인상주의자인 르누아르가 빛과 색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간략한 붓 자국과 색 점들을 사용해서 나타냈기 때문이다. 사물이나 인물의 형태감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조들의 뉘앙스만이 두드러지게 그렸다.

인상주의는 자연 속 대상의 시각적인 진실에 가까이 가려 했다. 그 방법은 대상 표면에 나타나는 빛의 변화를 통한 색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당시 프리즘이 발명되고 광학이론이 발달하면서 사물의 색은 빛을 이루는 7가지 색 중 반사되는 것에 의한 것이며, 시간에 따라 빛의 양과 세기가 달라지면 대상 표면의 색도 변한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르누아르가 빛으로 인한 분위기와 그림자까지 나타내려 집착한 이유였다. 여기에는 현실이란 고정된 사물이나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요, 결정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이라는 사상도 영향을 미쳤다. 자연 속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해 간다는 생각이다.

올겨울 코로나 유행에 대한 경고가 심각하게 들린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 곳곳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한다. 백신이 만들어졌다는 기쁜 소식도 있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내가 조심하는 수밖에. 그림 속 무도회는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또 한 번 슬기로운 겨울나기를 준비해야겠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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