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은 여성 디자인도 지웠다..저평가된 디자이너·건축가들 재조명 [이미지로 여는 책]
[경향신문]
우먼 디자인
리비 셀러스 지음
신소희 옮김
민음사 | 228쪽 | 2만6000원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디자인, 건축계에도 늘 여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상 중요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꼽아보라 한다면 우리 대답은 십중팔구 남성들 이름으로 채워지리라. 여성과 소수자의 이름을 밀치고 치우며 세워진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디자인 역사는 곧 결여의 역사였다.
디자인 역사가이자 작가, 큐레이터 리비 셀러스는 <우먼 디자인>에서 여성을 논의의 말단이 아닌 선두에 놓으며 온전한 디자인사의 회복을 시도한다. 데니스 스콧 브라운, 레이 임스, 아일린 그레이 등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여성 디자이너·건축가 25명과 1개 팀의 업적과 삶을 재조명한 이 책은 물성 자체로 기존 역사에 도전하는 새로운 목소리가 된다.
“여기는 쿠션에 자수나 놓는 곳이 아닌데요.” 20세기 가장 중요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꼽히는 샤를로트 페리앙은 건축계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작업실에서 일하려다 이 같은 답변을 돌려받았다. 디자인 산업은 여성에게 합당하다고 여겨진 특정한 분야(장식미술)를 남성적 분야(건축이나 금속공예)와 구분지음으로써 성별 유형에 따른 위계를 오랫동안 존속해왔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그 어떤 구별도 없어야 한다”는 강령을 내세운 독일의 바우하우스 역시 성차별의 그늘을 지우지 못했다. 겉으로는 ‘완벽한 평등’을 강조하면서 비공식적인 여성 입학 할당제를 도입해 여학생 수를 줄이고, 여학생들이 덜 ‘도발적인’ 분야를 지망하도록 유도한 창립 이사 그로피우스의 이중적 면모는 디자인 역사에서 여성이 지워질 수밖에 없던 까닭을 잘 보여준다.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자동차 산업 디자인 영역에서도 여성들의 공헌이 적지 않았다. 1920년대 스코틀랜드 자동차 회사 갤러웨이에서 여성 디자인팀을 이끌며 역사적 선례를 남긴 도러시 풀린저가 대표적이다. 1940년대 미국 제네럴모터스에서 꾸려진 여성 디자인팀 ‘디자인 아가씨들’의 활약 역시 두드러졌다. 카폰 시스템, 교묘하게 감춰진 수납공간, 조절 가능한 안전벨트 등 ‘아가씨들’이 의욕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는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탁월한 디자인이다.
디자인 산업이 넘어야 할 편견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2015년 영국 디자인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 내 디자인 노동력의 78%가 남성, 22%가 여성이다. 각종 연구들은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남녀 디자이너의 급여 격차 등 직간접적 성차별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다. 집필 및 번역에서 인포그래픽에 이르기까지 여성 작업자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우먼 디자인>은 이 오래된 억압과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유의미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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