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볼까] 연극 '휴먼 푸가', 왜 날 쐈지?..'80년 광주'가 묻는다

이향휘 2020. 11. 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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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원작
여전히 진행형인 고통 다뤄
남산아트센터 마지막 공연
서울 남산예술센터 극장에 들어서자 독특한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니은' 자 모양으로 나무 바닥에 나무 벽이 세워져 있고 무대 옆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 무대 양옆에 마련된 객석은 마당놀이처럼 배우와 1m 정도까지 가까운 거리다. 관객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고 원래 객석은 텅 비어 있다. 언제 연극이 시작됐나 싶게 객석에서 배우들이 유령처럼 하나둘씩 나타난다. 배우 7명은 무대 바닥에 털썩 엎드리고, 나무 벽으로 달려가 부딪치고, 심장을 문지르고, 속삭이고, 말을 건네고, 토악질한다. "비가 올 것 같아" "어떻게 하지?" 서사를 알 수 없는 짤막한 대화들이 반복되는 사이 한 차례 굉음이 울려퍼진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을 향해 군인들이 집단 발포를 했다.

작년 초연에서 호평을 받은 연극 '휴먼 푸가'는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014)를 원작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참혹한 운명을 그린다. 죽은 자들은 혼이 되어 썩어 문드러져 가는 자기 몸을 지켜보고, 살아남은 자들은 여전히 허기가 지고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자신에 대해 치욕을 느낀다. 무대를 서성이는 혼들은 문득문득 "왜 날 쐈지?" "왜 날 죽였지?"라는 반복된 질문을 통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울분을 토해낸다.

1980년 광주의 '고통'이 여러 사람 삶을 통해 변주되고 반복되는 구조가 주제 하나를 자유롭게 모방·반복하는 음악 형식을 의미하는 '푸가'와 닮았다. 배우들의 처절한 몸짓과 신체 행위와 밀가루, 유리병, 책, 테이프, 명주천 등 각종 오브제도 주요 장치다.

이번 공연은 남산예술센터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1962년 설립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은 서울예대와 서울시 간 계약 종료로 문을 닫게 됐다. 공연은 이달 29일까지.

별점 ★★★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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