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로 가득찬 세상..순위를 의심하라

서정원 2020. 11. 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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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 피터 에르디 지음 / 김동규 옮김 / 라이팅하우스 펴냄 / 1만7500원
세상은 온갖 순위들로 가득 차 있다. 유치원에 입학할 때부터 번호표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학교에 들어가서는 시험 성적을 두고 경쟁한다. 직장에서는 높은 인사고과를 받아 승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내 집을 마련할 때는 수많은 주택 청약 1순위자들과 가점 싸움을 벌인다.

신간 '랭킹'은 삶 속에서 늘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순위에 대한 책이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순위들이 있는지부터 그것들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리고 한계는 없는지 톺아본다. 미국 캘러머주대에서 특임교수를 맡아 복잡계 과학을 강의하는 피터 에르디가 썼다. 그는 인지과학 학술지 '인지시스템연구'에서 편집장을 맡았고, 국제신경망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관련 분야 전문가다.

책은 "객관적인 순위라는 건 대부분 거짓"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이라고 믿는 순위조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관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개인 특성이 반영돼 있다. 구글에 검색했을 때 뜨는 검색 결과 목록이 대표적이다. 적합도에 따라 웹페이지 순위를 매겨주는 '페이지랭크'라는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순위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알고리즘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인 감쇠계수는 사용자 행동 패턴에 따라 매번 값이 변경된다.

순위가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만드는 때도 있다. 저자는 미국 잡지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발표하는 대학 순위를 예로 든다. 학생들에게 고품질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을 알리려는 취지에서 만든 이 순위는 오히려 대학 교육 질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대학이 인위적으로 수강생을 19명 이하로 제한해 좋은 강의를 못 듣는 학생들이 생긴 것이다. 정작 US뉴스가 19명이라는 숫자를 선택하는 데는 아무런 실험적 근거도 없었다.

양자 간에 순위가 결정됐다 하더라도 다자 관계에서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 일도 발생한다. '투표의 역설'이라고도 불리는 '콩도르세의 역설'이 이를 보여준다. A, B, C 세 명이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다고 가정하자. 양자 대결을 했을 때 각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 선호 순위에 따라 A는 B를 이기고, B는 C를 이기지만 A는 C에게 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유권자 3분의 1씩이 각각 A>B>C, B>C>A, C>A>B 순으로 지지할 때 가능하다. 가위바위보처럼 세 요소 중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순서를 매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위를 믿어야 할까. 저자는 "좋든 싫든 우리는 순위와 함께 살아간다"며 순위를 조심하면서도 신뢰하라고 조언한다. 투표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주관적이고 조작에 능한 개인이 만사를 결정하는 것보단 낫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순위만 보고 지망 대학을 정할 수는 없어도 후보군을 추려내는 데 참고 자료는 된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간명하게 표현해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만으로도 순위의 활용 가치는 충분하다.

혼란스럽다면 저자가 순위에 대해 남기는 마지막 질문들을 음미해보는 것도 좋겠다. 어떻게 가장 객관적인 순위를 산출해낼 것인가, 그리고 순위에 가치와 업적이 반영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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