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입은 자본주의, 균열의 시대 끝낸다
흥미로운 건 오늘날 각국의 정치는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늙은이와 젊은이 간 단순한 대립이 아니다. 자신의 기술이 쓸모없어진 중장년만이 아니라 황량한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층도 극단으로 돌아섰다. 프랑스 청년은 새로운 극우에 투표하고 있고, 미국과 영국에서 청년은 극좌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희망과 현실 사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들은 자본주의의 미래가 선명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불안의 시대다.
이런 시기에 '10억의 빈곤층'과 '엑소더스' 저자인 폴 콜리어 옥스퍼드대 행정대학원 경제학·공공정책학 교수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담대하게 예측하는 책이 나왔다. "자본주의는 번영을 달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숙제를 제시하는 책이다.
시간 여행을 가보자. 사람들의 불안에 과거 이데올로기들은 신속하게 답을 내놓곤 했다. 그 답이란 우리를 다시 케케묵고 난폭한 좌우 대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손쉽고 확실한 윤리에다 모든 용도에 만능으로 써먹는 분석을 매혹적으로 결합해 어떤 문제든 확신에 찬 답을 제시한다.
한때 사회민주주의는 승리가 익숙했다. 협동조합을 토대로 내놓은 정책은 실용적이었고, 의료 연금 교육 등에서 삶을 바꿔나갔다. 그 효과가 대단해서 우파나 중도 정당도 이 정책을 수용할 정도였다. 이 책은 사회민주주의 실패가 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거대한 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970년대까지 사회를 먹여살렸던 자산이 침식되면서 가부장적 국가가 휘두르는 힘이 시간이 갈수록 분노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레이건과 대처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나라마다 복지병과 저성장에 신음하면서 정치세력으로서 사회민주주의는 지금 실존적 위기다. 이 원인을 저자는 그들이 뿌리에서 벗어나 "근원과 동떨어진 채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진 중산층 지식인 집단에 포획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오늘날 좌파와 우파 엘리트는 모두 능력주의를 애호한다. 그 둘의 대결은 윤리성의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엘리트와 생산성의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우파 엘리트 간 경쟁이다. 좌파 슈퍼스타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 됐고, 우파 슈퍼스타는 아주 부자가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것인가. 정치 스펙트럼의 극단을 파괴하고, 중앙을 부활시키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미래를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건 윤리 회복이다. 우선 정치 스펙트럼 중앙을 두껍게 포괄해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가 모두 수용하는 철학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재구축해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는 다른 목적을 지닌 채 반목하는 사례가 흔하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을 위해 잘 작동하려면 생산성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도록 자본주의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직언한다.
분열의 치유에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도시와 농촌을 가르는 균열을 치유하기 위해선 대도시가 창출하는 거대한 경제적 지대를 사회에 귀속시키기 위해 과세를 대대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저자는 '사회적 모성주의'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사회적 모성주의에서 국가는 경제와 사회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하지만, 자신의 권한을 휘두르지 않는다. 과세정책도 힘센 자를 제한하면서도 신난 듯이 부자의 소득을 빼앗아 퍼주는 건 안 된다. 약자들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길을 열면서도 역동성을 발휘하는 창조적 파괴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과제를 추구하는 유일한 길은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의 배격이며, 지도자가 비난을 감수하고 실용주의를 끌어안는 것뿐이다.
다소 난해하고 관념적이긴 하지만, 철학과 경제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폭넓은 논의 끝에 자신만의 대안까지 제시하는 보기 드문 역작이다.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변하지 않는 정치인보다는 투표를 하는 시민에게 더욱 절실해 보였다. 협잡꾼들의 뒤틀린 손아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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