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사고팔 듯' 사랑도 소비가 되나요

이향휘 2020. 11. 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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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끝나나 / 에바 일루즈 지음 / 김희상 옮김 / 돌베개 펴냄 / 2만9000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철없고 순진한 남자는 '환승 이별'을 당하고는 여자에게 이렇게 따지듯 묻는다. 한번 사랑을 하면 그것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하늘이 두 쪽 나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끝이 있다. 그 끝은 대개 애매모호하게 시작된다.

'사랑은 왜 끝나나'는 사랑이 끝나는 사건을 사회학 관점에서 파헤친 책이다. 사랑, 낭만, 섹스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감정적 불확실성이 자기 모순적인 무의식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활 조건이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다.

갈수록 많은 남녀가 이제는 확실한 관계를 기피하며 자녀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독신 가구와 이혼율이 급증하고, 많은 사람이 동시에 여러 관계를 꾸린다. 더구나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새로운 파트너를 끊임없이 찾고 교체할 수 있는 성적 자유와 일탈 가능성마저 갖게 됐다. 쉽게 파트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 또 무수한 가능성 때문에 파트너 선택을 미루고 회피한다. 애정 관계는 감정과 신뢰에 집중하기보다는 쾌락의 즉각적 만족에 의존한다. 히브리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파리 소르본의 유럽사회정치학센터 소장인 저자 에바 일루즈는 이를 '부정적 관계' '부정적 선택' '부정적 사회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가령 캐주얼 섹스는 모험이나 체험이라는 형태로 빠르게 소비되기에 좋다. SNS 플랫폼에서 물건 고르듯 상대를 빠르게 선택하는 것은, 그 상대가 다시 버릴 수 있는 상품이 된다는 얘기다. 양측이 자율성을 갖고 자신을 통제하는 한, 이는 쾌락적 경험이 되지만 어느 한쪽에서 자아의 해체를 경험한다면, 존재론적 불확실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사랑은 소비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커플이 함께하는 행위는 거의 소비활동이다. 커플은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만나고, 극장과 콘서트홀에 가며, 레저 활동을 즐긴다. 삶의 동반자라는 배우자의 의미가 퇴색하고 취향을 공유하는 퍼트너로서 의미가 강화된다. "걔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표현은 소비 취향이 통하지 않고, 결국 관계의 끝을 예고한다. 저자는 오늘날 만남을 가능하게 하고 유지시키는 기반이 소비자본주의라고 일갈한다. 만남과 이별의 자유는 자유로운 소비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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