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한 제철 배추에 반하고..감칠맛 숙성 젓갈에 홀리고 [지극히 味적인 시장 (43)]

김진영 식품 MD 2020. 11. 20. 16: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기 평택 오일장

[경향신문]

평택 통복시장은 오랜만에 만난 흥겨운 시장이다. 구경거리, 먹거리가 가득하다. 서울 광장시장과 비슷하다. 주변엔 노포도 많다. 여러 나라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경기 평택. 평택을 가면 선친이 생각난다. 인생에서 첫 공문서에 이름과 함께 주소로 올라간 곳이 평택 두정리다. 사실은 태어난 곳은 대구다. 선친께서 대구 파견 근무 때 2남1녀 형제 중 나만 거기서 태어났다. 몇 달이 지나 평택으로 돌아와 호적에 올렸다. 그러고는 대여섯 살까지 평택에 살다가 인천 부평으로 이사를 했다. 평택에 대한 기억은 흐릿한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읍내 가는 버스가 있던 신작로, 집 옆에 있던 철책(미군 부대 옆이었고, 선친은 군무원이었다), ‘물땅크’라 불렸던 동네 명칭처럼 멀리 보이던 미군 부대 물탱크 등등. ‘평택-미군 부대-아버지’, 이렇게 연결고리가 생겼다. 평택에도 오일장이 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평택 시장 가는 길에 옛 동네를 찾았지만 흐린 기억으로는 언저리만 맴돌 뿐이었다.

평택에서 오일장을 제대로 보려면 송탄시장에 가야 한다.

평택 시내에는 큰 시장이 있다. 백화점이 들어오든, 대형 할인점이 들어오든 상관없이 통복시장에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600개 넘는 점포와 노점에는 상품이 가득하다. 상품 진열 높이가 높고, 다양하고, 호객 행위가 짧으면서 힘차다. 기능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시장의 모습이다. 시장을 많이 다녔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흥겨운 시장이다. 주 통로가 되는 시장길과 그 옆으로 조금 좁은 시장길을 몇 개의 골목이 연결한 모습이다. 몇 바퀴 도니 서울 광장시장과 비슷한 구성이다. 먹을 수 있는 곳, 장을 보는 곳이 구별된 듯 아닌 듯한 모습이 비슷하다. 구경거리, 먹거리가 가득하다. 통복시장도 0, 5가 든 날에 오일장이 열지만, 구경거리는 별로 없다. 대부분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공생하는 것과 다른 모양새로 구색만 남은 오일장이다. 평택의 다른 시장에서는 제법 큰 오일장이 열린다. 서정이나 팽성에서도 열리지만 제대로 오일장을 구경하려면 송탄시장이 제격이다.

송탄시장은 4, 9일이 든 날에 열린다. 상설시장을 한 바퀴 감싸고는 길 건너 송북동 주민센터까지 길게 장이 선다. 흥정이 차고 넘치는 오일장이기에 상설시장 골목골목까지 활력을 불어넣는다.

모든 만물에 단맛이 드는 늦가을
송탄시장선 김장재료 거래 ‘북적’

11월, 만물에 단맛이 드는 시기다. 늦가을에는 무엇을 먹든 맛있다. 특히 쌀은 1년 중 가장 맛있다. 사과든 배든 그 어떤 것이든 단맛이 가득하다. 다디단 식재료들이 시장에 차고 넘쳐도 그들은 11월만은 조연이다. 주연은 따로 있다. 바로 김장재료들이다. 인구도 줄고 직접 김치 담그는 이들이 줄었다고 하더라도 김장은 김장이다. 오랫동안 해 온 큰 행사가 어느 순간 쉬이 사라지지 않기에 시장에는 배추, 무, 고춧가루, 생강, 마늘 파는 곳에는 사람들이 호떡집보다 많았다. 11월 중순의 배추는 충청남도를 비롯한 중부권의 배추가 가장 맛있다. 배추 자라기에 적당한 온도라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11월 말이 되고 12월이 되면 전라남도를 비롯한 상대적으로 따듯한 남쪽 지방 배추가 비로소 제철을 맞는다. 배추는 20도 이하에서 잘 자라고 15도 전후에서 최적이라고 한다. 북쪽에서 찬 바람이 불면 배추는 남쪽으로 내려가면 단맛을 채운다. 찬 바람 불기 전에는 높은 지대인 강원도 배추가 단맛이 좋다. 김장할 때 특정 지역의 배추를 무작정 사는 것보다는 담그는 시기에 따라 배추를 선택해 담그는 것이 좋다. 맛도 좋거니와 제철이라 배추 생산량도 많아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김장에는 땅에서 난 것 외에는 바다에서 난 것도 필요하기에 젓갈 파는 곳도 사람이 많았다. 새우젓은 추젓, 오젓, 육젓 등 젓새우를 잡은 시기에 따라 구분을 한다. 육젓이 최고라 하지만 이건 예전 이야기. 속담 중에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있다. 같은 돈이면 더 예쁜 것이 낫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육젓은 다홍치마였다. 조금은 비싸지만, 기왕이면 젓새우 살이 올라 통통한 육젓이 좋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유월에 젓새우가 잘 잡히지 않는다. 몇 년째 계속되는 현상으로 200~300㎏짜리 육젓 한 통에 경매가가 2000만~3000만원이 된 현실에서는 ‘기왕’의 의미를 적용하기에는 가격 부담이 크다. 시대가 바뀌면 속담도 바뀌듯 새우젓 사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기왕이면 육젓이 아니라 기왕이면 숙성이 오래된 것으로 말이다. 새우젓이든 어떤 젓갈이든 적어도 1년은 숙성을 해야 제맛이 난다. 그 이상 되면 바랄 것도 없다. 새우젓 살 때 주의할 점은 딱 한 가지다. 젓국 인심 좋은 가게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젓국은 젓갈이 숙성하면서 나오는 진국이다. 소금의 삼투압 현상으로 새우는 조금씩 물러진다. 새우가 가진 단백질은 미생물이 분해한다. 분해 과정 중에 물이 생기고 물에는 감칠맛 성분이 가득 찬다. 어찌 보면 새우젓 통에서 주인공은 새우가 아니라 사실은 젓국이다. 그런 주인공을 마구마구 퍼주는 인심은 소금과 MSG로 만들어 낸 마술 덕택이다. 새우젓은 종류가 아니라 숙성한 시간이 더 중요하다.

통복시장의 ‘닭볶음’
시 승격 이후 양계장 많이 사라져
그 시절 먹던 ‘닭볶음’ 명맥 지켜

평택 통복시장 주변으로는 노포가 꽤 있다. 오랫동안 큰 시장으로 자리를 굳건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노포를 대신해 조금 떨어진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평택이 시로 승격하기 전 평택에는 양계장이 많았다. 양계장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에 먹던 닭볶음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암탉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알을 많이 낳지 못한다. 강제 털갈이라 하여 먹이도, 물도, 빛도 없는 곳에서 가두기도 한다. 그런 환경을 버텨낸 닭은 다시 처음의 닭처럼 알을 낳는다. 강제 털갈이를 하지 않으면 폐계닭으로 팔린다. 보통은 식품 공장으로 팔려가 가공식품의 재료가 되지만 닭개장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폐계닭이라 불리지만 병아리부터 해서 겨우 1~2년 지난 닭이다. 치킨이든 삼계탕으로 먹는 한 달 혹은 보름 남짓 키운 육계와 비교해 질길 뿐이지 못 먹을 닭은 아니다. 평택의 닭볶음은 폐계를 압력솥에 삶아서 부드럽게 한다. 부드럽다고 했지만, 육계보다 훨씬 탄성이 있다. 삶은 닭을 매콤한 양념에 버무리고는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말 그대로 볶아 낸다. 먹는 방법은 닭을 먹다가 전가의 보도인 볶음밥으로 마무리한다. 매콤한 맛이 힘겨울 때 계란찜을 주문하면 된다. 폐계이기에 아직 덜 여문 달걀이 같이 나온다. 같은 양의 육계로 만든 닭도리탕보다 훨씬 저렴하고 맛도 있다. 폐계가 질기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는 압력솥으로 얼추 해결된다.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는 법. 폐계는 씹는 동안에 육계에는 없는 감칠맛이 계속 나온다. 감칠맛이 조미료로 해결된다고 하지만 세포 속에 있는 것과 다르다. 음식 만들 때 넣은 조미료는 씹는 사이 침에 씻겨 내려가지만 폐계에 있던 감칠맛은 씹는 사이 침 속에 녹아든다. 그 맛은 씹어야 할 수 있다. 제대로 씹는 맛이 있는 음식이다. 군계 폐계닭 (031)652-7430

안정리 미군 부대 앞에서 판매하는 ‘Juicy burger’
용산 미군기지 등 옮겨온 영향
통복시장서 세계 음식 맛은 ‘덤’

평택에는 각국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다. 통복시장만 하더라도 세계 각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용산이나 의정부에 있던 미군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안정리에는 햄버거를 비롯한 미국식 음식을 파는 곳이 꽤 많이 들어섰다. 2년 전에 평택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햄버거가 있지 않을까 해서 무작정 안정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몇 군데 햄버거집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한 집을 골라 들어갔다. 다른 곳은 일하는 양반들이 다 외국인이었고 여기만 한국인이었다. 초행길에 중증 영어 울렁증까지 더해 고생하지 말고 햄버거 빨리 먹고 길 막히기 전에 어서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주문한 햄버거를 보니 잘 녹은 치즈며 두툼한 패티에 번 상태 또한 괜찮았다. 보기 좋은 떡, 아니 햄버거가 맛까지 좋았다. 서울 시내에서 먹었던 햄버거보다 맛있었다. 그 이후로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가 당기면 부러 찾아가는 곳이 됐다. 따로 전화번호는 없고 안정리 미군 부대 정문 앞에 있다. 복잡하지 않은 상점가이기에 쉽게 찾을 수 있다. Juicy burger

바비 브레드, 평택에서 나는 쌀로 만드는 빵 브랜드 이름이다. 쌀 전분은 밀가루 전분과 구성이 달라 빵이 잘 안 된다. 초창기 쌀 빵 대부분은 밀가루 글루텐을 넣고 만들기도 했다. 밀가루 빵과 달리 굳는 속도가 빨랐다. 아침에 한 떡이 저녁이면 딱딱해지는 것과 비슷했다. 바비 브레드 쌀 빵은 초창기 빵과 달리 글루텐도 섞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밀가루 빵처럼 쉽게 굳지 않는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구매할 수 있지만, 평택 오성면 체험장 2층 카페에서 빵을 사거나 쌀로 맛을 더한 커피도 맛볼 수 있다. 브랜드는 바비 브레드이지만 빵뿐만 아니라 술과 과자까지 만들고 있다.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제대로 활용하는 곳이다. 식재료 활용에만 목적을 둔 곳이 전국에 많다. 목적이 그러다 보니 맛까지 있는 곳이 드물지만 여기는 예외다. 오가는 길이면 쌀 카스텔라를 항상 사 온다. 햄버거 식당이 있는 안정리와 가깝다. 치아바타를 비롯해 몇 가지 건강빵이 있지만 내 선택은 카스텔라다. 바비 브레드 카페와 공장은 평택 오성면에 있다. 공장 주인장의 고향이 바로 오성면이다. 바비 브레드 (031)681-2791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이 시리기 시작했다. 김이 나는 곳이나 열기가 있는 곳 그리고 햇볕이 드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 천고마비, 달리는 말이 살찔 정도로 가을에 나는 것은 맛있다. 손이 점점 시릴수록 입속으로 들어오는 음식은 점점 달곰해진다. 가을은 달콤한 계절이다.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