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던 옷이 세상 힙한 옷으로..의류 쓰레기의 재발견

윤경희 입력 2020. 11. 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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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섬유보다 진화한 '지속가능성' 패션

최근 패션업계의 '지구 지키기' 움직임이 심상찮다. 폐플라스틱 등의 쓰레기를 재활용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 폐기될 뻔한 옷을 뜯어 이를 다시 새옷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 활동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파타고니아 '리크래프트 컬렉션'. 폐기될 뻔한 악성 재고와 반품 의류를 세탁, 해체해 새로운 옷을 만들었다. 해체된 조각을 맞춰 만들다 보니 앞뒤판에 각기 다른 소재와 색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이 오히려 감각적인 요소가 됐다. 윤경희 기자

‘지속가능성 패션’의 선두주자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이달 13일 '리크래프트 컬렉션'을 출시했다. 소비자가 옷을 최대한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하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2013년부터 진행해온 '원웨어'(Worn Wear, 낡은 옷) 캠페인의 일환이다. 더 이상 팔 수도 수선할 수도 없어 버려지게된 수만 벌의 의류제품을 선별·해체한 뒤, 이를 재료로 디자이너가 새로 디자인한 옷들이 리크래프트 컬렉션의 주 상품이다. 지난해 론칭됐고 국내엔 올해 처음 소개됐다. 이미 제품의 68% 이상에 재활용 소재와 유기농 면을 사용하는 등 지속가능한 소재를 연구해온 파타고니아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버려질 옷을 효율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다.
컬렉션은 미국 리노에 있는 수선센터에서 시작된다. 버려지는 옷들을 세탁·해체해서 조각조각 나눈 다음, 컬러·원단을 고려해 조합하면 이를 봉제사가 꿰매 옷으로 만든다. 옷마다 절개가 많고, 군데군데 찢어지거나 구멍 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반창고처럼 덧붙인 작은 원단 조각들이 눈에 띄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이라는 장점도 있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생산량은 아주 적다. 올해 국내에 들어온 수량도 160여 점뿐이다. 종류는 패딩 조끼, 재킷, 플리스 재킷, 반팔 티셔츠 등 의류 4품목과 가방을 포함한 몇 가지 액세서리들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매장과 부산 광복동 매장 두 곳에서만 판매한다. 공정이 많아서 일반 제품의 10~20% 이상 가격도 비싸다. 기업 입장에선 손해만 보는 장사다. 이정은 파타고니아 마케팅팀 차장은 "우리가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갖고 있는 물건을 더 오래 사용하는 것"이라며 "패션 산업으로 인한 대량의 탄소 배출은 제조 공정의 초기 단계에 일어나기 때문에 제품을 오래 사용할수록 환경 파괴의 발자취는 줄어든다. 리크래프트를 통해 의류 폐기물을 감소시키고 오래도록 재사용하는 순환관계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가로수길 파타고니아 매장 내 '리크래프트 컬렉션' 진열 공간.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그 뒤에 숨은 철학은 크다. 윤경희 기자
폐의류를 분해한 조각들로 만들어 마치 한복 색동 저고리같은 느낌도 난다. 윤경희 기자
매장 내 설치된 '원웨어' 공간에서 브랜드 소속 수선사가 제품의 치수를 재고 있다. 원웨어는 '옷 하나를 오래 입자'는 취지의 캠페인으로 다른 브랜드의 옷을 가져와도 1인당 2벌까지 무료로 수선해준다. 윤경희 기자


이처럼 못 입는 옷을 새옷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 작업은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엔 SPA 브랜드 'H&M'이 본사가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 매장에 ‘루프’ 시스템을 전시해 화제가 됐다. 낡은 옷을 넣으면 세척 후 잘게 찢어 새로운 원사를 만들어내는 기계다. 이렇게 만든 실로 스웨터나 머플러를 새로 만들 수 있다. "물과 화학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새로 옷을 만들 때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다"는 게 H&M 측의 설명이다.

SPA 브랜드 H&M이 본사가 있는 스톡홀름 매장에 설치한 루프 시스템. 사진 H&M


국내에선 코오롱FnC의 '래코드'가 앞장서고 있다. 그룹 내 악성 재고 의류 제품들을 모아 이를 새로운 상품으로 재창조하는 게 래코드의 컨셉트다. 이외에도 업사이클링의 중요성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데,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워크숍 프로그램 '리테이블'이 대표적이다. 간단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까지 용산구 노들섬에 있는 브랜드 공간에서 진행하다 최근에 코로나19 영향으로 줌 라이브를 통해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선주 래코드 브랜드 매니저는 "환경을 위해 테이블에 모여 뭐든 해보자는 의미"라며 "짧은 시간에 자신만의 업사이클링 소품을 만들어보면서 쉽고 재미있게 친환경 인식을 갖게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래코드는 이외에도 온라인 자사몰에서 DIY 키트를 판매한다.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업사이클링 핸드폰 지갑이나 카드 지갑을 만드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이달 18일엔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내 브랜드 팝업 스토어를 열고 매장 한쪽에 리테이블 공간도 설치했다. 이곳에서 직원의 가이드에 따라 폐기 처분될 운명이었던 점퍼로 카드지갑, 에어팟 케이스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프로그램 참가는 무료. 이달 30일까지 100명 한정으로 진행한다.

코오롱FnC 래코드의 '리테이블 워크숍'. (위부터) 코로나19 전 노들섬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이달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내 설치된 팝업 부스. 줌 라이브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 래코드


지속가능성 패션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좋은 편이다. 올해 초 출시됐던 래코드와 나이키의 협업 컬렉션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품절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파타고니아의 리크래프트 컬렉션도 출시 첫날부터 사람들이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친환경에 관심 많은 연예인이 몇 벌씩 사 갔다는 소문도 들린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았다. 소비자 입장에선 일반 제품 대비 월등히 비싼 가격이 문제다. 기업 입장에선 제한된 생산량에 따른 수익성·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가격이 비싸면 접근성이 떨어진다.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기업도 생산 활동을 이어가기 힘들다. 조덕현 파타고니아 머천다이징 매니저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이 업사이클링 활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량과 소비량이 많아지면 생산 단가는 낮아지고, 더불어 판매가도 낮아져 소비자·기업 모두가 즐거운 생태계가 자연스레 형성된다는 의미다.
옷의 수명이 9개월 연장되면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와 물 그리고 기타 산업 폐기물의 최대 30% 감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새 옷을 사기 전, 우리 옷장을 먼저 확인해봐야 할 이유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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