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미래]⑴서로 다른 물질 만나는 '경계'에서 소재 미래 찾는다

조승한 기자 2020. 11. 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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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부산대 재료공학부 교수
김광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연구단장은 소재의 경계면을 연구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고 있다. 남윤중 제공

“최근 소재 연구에서는 첨단기능을 가져 ‘부가가치’를 내는 소재를 찾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소재를 맞붙이면 그 표면에서는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하던 새롭고 놀라운 기능과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정부가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설립한 10개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연구단 김광호 단장(부산대 재료공학부 교수)은 서로 다른 물질이 닿는 ‘인터페이스(경계면)’을 연구하는 학자다. 두 물질을 붙일 때 생기는 경계면에서는 기존 두 물질을 이루는 결합구조나 조성과는 다른 새 물질이 생겨난다. 두 물질의 경계면은 새로운 소재가 생성되는 보고(寶庫)인 셈이다. 두 소재를 합쳤을 때 원자단위로 환산한 전체 면적을 100이라고 하면 두 소재 경계면은 최대 60에 이른다. 이는 두 물질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소재 성능의 60%가 좌우된다는 이야기다. 김 단장은 “두 물질의 경계면을 조절하면 기존 소재에서 잡을 수 없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단이 20억 원의 기술이전료를 받고 LG화학에 이전해 전기차에 활용하고 있는 배터리 양극소재도 경계면 연구에서 나왔다. 여러 겹으로 쌓인 배터리 양극소재에서 소재 겹과 겹 사이 표면을 정밀하게 설계해 동시에 끌어올리기 어렵던 에너지밀도와 안정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 차량이 사용하는 배터리보다 성능을 30% 올리면서도 10년을 사용해도 초기 용량의 84%를 유지하는 양극소재를 개발했다.

김 단장은 “경계면에서의 에너지를 조절해 기존보다 강도는 10%, 연성은 250% 끌어올린 알루미늄 합금도 개발해 중소기업에 이전했다"며 "경계면에서 우수한 성능을 찾아내 특허를 내고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소재는 뛰어난 성능올 보일 뿐 아니라 새로운 성질도 갖는다. 연구단은 냉매로 쓸 수 있는 ‘금속 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했다. 모두 5억원을 받고 기술을 이전한 이 물질은 물을 잘 흡수하면서도 잘 배출한다. 연구단은 물을 활용한 '자연 냉매'라는 응용법을 찾았다. 낮은 온도에서도 작동하고 상업용 흡착제보다 냉방효율이 24% 높아 에어컨을 대체할 소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13년 출범한 연구단은 미래 소재기술을 개발하면서 지금까지 총 56억 원의 기술이전 성과를 냈다. 김 단장은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소재에 기업들이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소재가 실제로 새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광호 단장은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개념을 활용한 미래 소재기술 개발이 새 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남윤중 제공

김 단장은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문제가 터졌을 때는 다른 소재 연구자들처럼 심리적 중압감을 느꼈다고 했다. 곧바로 연구자들을 모으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기술들을 추려 보니 일본의 3대 규제 품목이었던 포토레지스트 외에도 초고강도 합금, 냉매, 희토류 금속, 전자용 에폭시 소재와 품목들의 국산화와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규제 이슈가 터지면서 소재혁신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지가 높아지고 있다. 김 단장은 “현재의 소재들이 소재·부품·장비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미래 소재를 선점해야 앞으로 제2의 소부장 문제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단도 올해 기술사업비 7억 원을 정부로부터 추가 지원받았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탄생한 기술이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랩투마켓' 제도와 공감대는 여전히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 단장은 “소재 연구는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란 쉽지 않다”며 “기존 연구를 잘 살피고 응용성을 찾아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산학연 연결에 집중하는 소재 강국들의 전략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 단장은 “독일과 일본은 산학연이 가치 배분을 합리적으로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 도요타와 나고야대의 예를 들었다. 노벨상 수상자 6명을 배출한 나고야대는 인근에 본사를 둔 도요타의 집중 투자를 받고 있다. 2014년 일본에서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개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구단을 30년간 뒷받침한 회사도 도요타다. 결국 도요타의 부품회사 도요타고세이는 LED 제품 개발의 선두주자가 됐고 나고야대도 특허 비용으로 150억 원이 넘는 보상을 받았다. 김 단장은 “독일에서도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대학, 기업들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철저한 가치 배분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아직 산학연 협력이 원활하지 못한 편에 속한다. 하이브리드 소재에 비유하면 산학연 제도도 잘 갖춰져 있고 제각각 기능이 뛰어나지만 산학연 경계면에서는 뛰어난 성질이나 기능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김 단장은 “경계를 허무는 연구들이 빛을 발하려면 결과에 대한 배분이 명확하게 이뤄지는 제도나 규정,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반드시 뒷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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