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합리적 회의주의' 유사과학·가짜뉴스를 깨부수다

기자 2020. 11. 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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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스켑틱 | 마이클 셔머 지음, 이효석 옮김 | 바다출판사

과학잡지 에세이 75편…‘UFO’ 등 10개 소주제로 나눠

만병통치약·불로장생 인체 보존술·유체이탈 등 실체 꼬집어

“과학 임무는 미스터리를 자연적 설명으로 해결하는 것”

마이클 셔머의 책을 읽고 나서 후회한 적은 없다. 오래전 ‘과학의 변경 지대’를 읽고 독자가 된 이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경제학이 풀지 못한 시장의 비밀’ ‘천국의 발명’ 등 셔머의 트레이드마크인 ‘합리적 회의주의’는 과학이고 싶어 하는 비과학, 즉 유사 과학의 어둠을 거두어 내고 머릿속을 명료하게 해 주었다. 동시에 현실을 넘어서는 현실, 즉 초현실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종교 또는 유사 종교의 신령한 빛들도 꺼뜨려 왔다.

신간 ‘스켑틱’(바다출판사)에서 셔머는 말한다. “초자연적, 초현실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적이고 현실적인 것만 존재한다. 미스터리한 문제를 자연적 설명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학의 임무다.” 세상에는 이미 우리가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아직 우리가 자연스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만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임무는 과학적 탐구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세계의 신비 속을 천천히, 단단히, 한 발씩 걷는 것이다. 이때, 우리를 길 안내하는 나침반을 셔머는 ‘사려 깊고 성찰적인 탐구’, 즉 ‘합리적 회의주의’라고 부른다.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발표됐던 75편의 에세이를 모은 이 책은 두 명의 위대한 과학자에 대한 오마주다. 한 사람은 스티븐 제이 굴드. ‘과학적 발견 속에 숨어 있는 심오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생물학자다. 셔머의 칼럼은 굴드의 칼럼을 이어받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찰스 다윈. 굴드의 탐구 과제 중 하나이자 이 책의 주제인 ‘데이터와 이론’의 상호작용을 선명히 보여 주었다. 이 책은 데이터와 이론, 사실과 개념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사 과학과 엉터리, 초자연적인 현상, 외계인과 UFO, 경계의 과학과 대체의학, 진화론과 창조론 등 열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우리를 안내한다.

셔머에 따르면, “과학은 그 실재를 밝히고 묘사하는,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존재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이다. 생명의 역사를 설명할 때 진화론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논쟁이 벌어지고, 어떤 가설은 검증을 견디지 못해 사라진다. 그러나 필연적, 부분적 오류가 진화론을 잘못된 것으로 만들진 않는다. 진화론은 틀릴 수도 없는 창조론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우수하다. 옹호하는 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과학적으로 볼 때 창조론은 ‘그저 틀린 것’에 불과하다.

이론의 잘못된 정도를 판별하는 신중한 회의주의는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시금석이다. 셔머는 말한다. “과학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저 틀렸다. 과학이 완전히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그저 틀렸다. 그러나 두 생각이 똑같은 만큼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더 크게 틀렸다.” 데이터와 이론의 상호 진화를 통해 우리가 점점 틀리지 않게 된다는 생각이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온갖 예들과 함께 과학과 비과학을 분별하는 힘을 길러 준다.

1983년 셔머는 네브래스카의 한 고속도로에서 ‘외계인에게 납치되는 경험’을 한다. 자전거로 83시간 연속, 약 2000㎞를 달린 직후였다. 쓰러진 셔머의 눈엔 지원팀이 외계인처럼 보였다. 방송국 촬영팀이 뒤따랐기에, 셔머의 체험은 ‘극도의 수면 부족과 신체 탈진에 의한 환각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더없이 생생한 현실이었다. “어떤 환상은 진짜 경험과 구별할 수 없으며 실제만큼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는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가 없었다면, 셔머도 UFO 옹호자가 될 뻔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쌓아 온 과학은 환상과 현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셔머는 옷을 깨끗하게 만드는 세탁볼, 만병통치약인 결정수, 과대 포장된 생수 예찬, 불로장생을 약속하는 인체 냉동 보존술 등 ‘과학 용어를 사용해 엉터리 이야기를 만드는’ 유사 과학의 헛소리를 분쇄하고, 생체 자기 요법, 기적의 암 치료제, 효능이 부풀려진 다이어트 등 대체 의학을 무찌르며 영매, 유체 이탈 등 초자연적 현상의 거짓 등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경우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적 사고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과학과 유사 과학을 구분하는 방법이 또 있다. 셔머는 ‘유사 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홀로 연구한다는 점’이라는 마틴 가드너의 말을 인용한다. 유사 과학자들은 ‘자신의 충격적 발견을 세상에 공표하기 전에 먼저 동료 평가를 거쳐야 한다는 과학의 일반적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고 동료들을 멍청이로 여기며,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이에 비해 회의주의자는 ‘주어진 모든 가설’을 ‘꼬치꼬치 따져 보는 것’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무한히 열린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확증 편향’ 때문이다. 이들은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자신의 믿음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데이터만 선택하며 다른 모순되는 데이터는 무시하거나 합리적으로 배제한다. 이들은 ‘별로 똑똑하지 않은 이유로 품은 신념’을 ‘자신의 똑똑함으로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큰 오류에 빠진다. 잘못된 과학적 지식과 함께 의도된 비진실인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시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잘못된 과학에 대한 비판도 소중하지만,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회의주의’야말로 헛똑똑이가 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려는 시민들을 위한 궁극적 무기가 될 것이다. 372쪽, 1만78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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