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고독을 깎고 다듬고.. 흙으로 빚은 '생명의 숨결'

장재선 기자 2020. 11. 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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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린 조각가의 자택을 개조한 서울 정릉의 최만린미술관은 현재 개관 기념전을 하고 있다. 1층 내부 전시장 창문으로 야외 조각장이 보인다.
60여 년 흙을 만진 최만린 조각가의 손. 2020년 촬영. 최만린미술관 제공

- 조각가 故 최만린 미술관 개관 기념전

58년 시작한 ‘이브’ 연작부터

‘태’‘맥’‘점’등 대표작 한곳에

60년간 작업 ‘손 사진’도 함께

동서 최불암 “생전에 잘 통해

예술 통해 세상 사랑하신 분”

평생 조각의 농사꾼으로 살다가 갔구나. 지난 18일 서울 정릉에 있는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을 돌아본 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최만린 조각가가 올해 찍은 손 사진을 보니 그 생각이 절실해졌다. 60년 넘게 조각 도구를 들고 흙을 매만진 손은 양쪽 크기가 달랐다.

최만린미술관을 찾은 것은 전날 85세로 타계한 최 조각가의 예술 숨결을 더듬고 싶어서였다. 현재 개관 기념전을 하고 있는 미술관은 성북구가 최 조각가의 작업실 겸 자택을 개조한 것이다. 당초 올 8월에 개관전을 열 예정이었으나 감염병 사태로 지난달에야 시작했다.

개관전은 한국 추상 조각 선구자인 최만린의 대표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1층 전시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작품은 ‘이브 58-1’. 1958년에 등장한 ‘이브’ 연작의 첫 작품이다. 최 조각가는 작가로서 이름을 얻게 한 이 작품에 대해 “6·25전쟁 후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우리 인간 모습을 솔직하게 담았다”고 한 바 있다. 미술관 직원은 “작가께서 이 자리에 영구 전시해달라고 당부하셨다”며 “앞으로 어떤 특별전이 있더라도 여기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개관전은 ‘근원’ ‘심원’ ‘영원’이라는 주제로 최 조각가의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배치해놨다. ‘이브’에서 ‘태’와 ‘맥’ 시리즈로 넘어가 생명과 자연의 의미를 천착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만년에 시리즈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며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0’ ‘점’ 연작들도 만날 수 있다.

최 조각가는 전시장에서 상영하는 영상을 통해 “철을 녹여서 작업할 때, 용접 불대를 붓으로, 불을 물로 삼았다”며 “내게 주어진 공간은 화선지로 여겼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부터 눈이 안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서 흙 작업으로 전환해 생명 현상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은 그가 젊은 시절에 3년간 방송국 아나운서를 했으며, 서울대 미대 교수로 오랫동안 봉직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재직하며 덕수궁 분관을 여는 등 미술 행정가로서도 활약했다. 관리에 철저한 그의 성품은 전시장 2층에 마련된 아카이브 실에서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작품 활동 관련 자료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130권의 스크랩북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은정 미술평론가의 말대로, 아카이브 개념이 없었던 1950년대부터 이렇게 자료를 모아 놓은 것은 우리 미술사에 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막 떠난 작가의 작품들을 만난 감흥을 지닌 채 전시장을 나서며 최불암 배우에게 전화했다. 알려진 것처럼, 최 배우는 최 조각가의 손아래 동서이다. 최 배우의 부인인 김민자 배우와 최 조각가의 부인 김소원 성우가 자매다.

최 배우는 이날 TV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녹음을 마친 후 최 조각가 장례식장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고 했다.

“미술관 개관이 코로나로 밀리고 밀려서 형님이 참 기다리셨어요. 그게 개관하니까 몸이 풀리셨는지 얼마 안 돼서 이렇게…. 말년에 기쁨도 슬픔도 잔잔하게 반응하시더니 생명을 놓으셨네요.”

최 배우는 이별이 아프지만, 고인이 생전에 할 일을 충분히 했고 죽음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고 깨끗했기 때문에 위로가 된다고 했다. “형님은 순진한 열정가라고 할까요, 평생 나서지 않는 성품이셨지요. 그게 좋았어요.”

그는 최 조각가와 평소 잘 통했다고 되돌아봤다. “형님이 하시는 일을 부정적으로 본 적이 없어요. 성북구가 미술관을 짓는다니 126점을 기증했잖아요. 참 잘하셨다고 했어요. 작품을 집에 두면 뭐합니까, 여러 사람이 봐야지요.”

최 배우는 최 조각가의 예술혼이 고독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했다. “북한 출신으로 (6·25) 전쟁 때 가족을 잃고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외로움과의 싸움이 예술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술을 통해 평생 세상을 사랑하신 분이지요.”

최 조각가의 사랑은 후대에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들(최아사 계원예대 건축학과 교수)과 딸(최아란 연극배우)이 아버지의 길 가까이에서 걸어가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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