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담벼락을 넘나드는 따스한 온기 '이웃사촌''

아이즈 ize 글 권구현(칼럼니스트) 2020. 11. 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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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권구현(칼럼니스트)


'이웃사촌'은 우리네 삶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단어다. 아무리 같은 집에서 10년을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게 요즘 세태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이웃사촌‘의 개념은 나이 어린 세대들이 실감하기 힘든 ’전래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먼 사촌보다는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마냥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던 과거 '이웃사촌'들은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하고, 힘든 일은 마주 들어 슬픔을 함께 했다. 맛있는 게 있으면 이웃집에 나눠주는 것이 일상다반사였고, 다 먹은 그릇은 깨끗이 씻어 무언가로 채워 담아 다시 가져다 주곤 했다. ‘정’이라는 단어가 다소 촌스럽게 들리는 단어가 돼가지만 ‘이웃사촌’은 분명 한국인의 정 문화를 나타내는 표본이었다.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 주)시네마허브 , (주)환타지엔터테인먼트)는 1980년대 군부 독재 시대를 배경으로 '도청'과 '이웃사촌'이란 이질적인 소재를 엮으며 따뜻한 감동과 웃음을 주는 작품. 1000만 관객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을 비롯해 '각설탕', '챔프' 등 따뜻한 가족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이환경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생활연기의 달인' 정우가 가택연금을 당한 야당 대권주자를 도청하는 안정부 도청팀장 유대권, 천만 요정' 오달수가 도청 대상인 이의식으로 등장해 차진 케미스트리를 뿜어낸다.  


사실 유대권과 이의식 두 사람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이의식은 가택연금을 당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야당 대표이고 유대권은 빨갱이라면 이를 가는 안정부의 도청팀장이니까. 유대권이 이의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그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하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옆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의 경계를 허물어간다. 옥상에서 마주하여 담배 한 가치를 빌리고, 경계선이지만 서로 함께 쓰는 구역인 담벼락 사이로 대화를 나눈다. 떡볶이 한 그릇을 서로 나누고, 발가락 양말에 아재력을 터뜨리며 무좀약을 공유한다. 이윽고 목욕탕에 들어가 발가벗고 서로의 등에 때수건을 들이댔을 때 두 사람은 비로소 ‘이웃사촌’이 된다.

이환경 감독은 전작 ‘7번방의 선물’에서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 휴머니즘을 담았다면, 이번엔 가택연금으로도 가두지 못한 이웃의 정을 그려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연출 방식이 다소 촌스러울 수 있다. 웃음 뒤의 눈물이라는 신파 공식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감독 특유의 개그 코드가 상황과 별개로 많은 곳에 산재해 있다. 다소 수다스러운 이웃이지만 그래서 소박하고 정이 간다.


오달수는 찰떡 캐스팅이다. 웃음기를 지우고 진중한 연기를 펼치지만,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무겁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유력 정치인이었지만 평범한 이웃을 그리고자 했던 감독의 의중을 제대로 표현했다. 하지만 연기의 좋고 나쁨과 별개로 관객들은 마음 안에 또 다른 잣대를 품고 오달수를 바라보게 됐다. 평가야 관객의 몫이겠지만 짙은 아쉬움을 지울 길이 없다.

정우의 연기는 진일보했다. 억양 강한 부산 사투리에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출세작이 향후 연기에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됐다. 하지만 정우는 정면돌파한다. 같은 말투와 비슷한 액션을 연기했는데, 분명 ‘이웃사촌’엔 ‘쓰레기’ 정우가 보이지 않는다. 배우로서 참 어려웠을 영역이건만 자신의 벽을 부수고 대권으로 열연을 펼쳤다. 한계를 넘어선 만큼 앞으로의 작품들이 더 기대를 모으는 지점이다.

‘7번방의 선물’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조연들이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 도청팀의 일원인 김병철과 조현철의 앙상블은 영화의 웃음을 책임진다. 두 사람과 옆집 가정부 염혜란의 숨바꼭질은 유치하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신이다. 의식의 큰딸 은진을 연기한 이유비도 인상적이다. 영화적 장치로 소모될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제대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사실 영화 ‘이웃사촌’은 정치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화 운동 속에 가택연금을 당하는 야권 대선주자라는 설정은 분명 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웃사촌’은 뜨거운 정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저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고 같이 울고 웃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말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울림을 장전한 것도 아니니 부담 없이 마주하기에 좋다.

다만 2년 이상 표류하다 이제야 개봉하는 것은 흥행적인 측면에서 분명 아쉬울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서로가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시국, 타인과 나누는 교감에 목마른 지금을 생각한다면 나름 시의적절하다 말할 수 있다. ‘이웃사촌’이 품은 온기가, 그리고 정이라는 선한 기운이 이 시기를 헤쳐가는데 작은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오는 25일 개봉. 12세 관람가.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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