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가~” 파리 목숨 국회 보좌진 근무 백태

이원석 기자 2020. 11. 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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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간 양정숙 6명·신현영 5명 보좌진 교체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몇 년 이상 함께 일한 의원이 갑자기 별다른 이유 없이 이번 주까지만 일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나오고 바로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은 의원과 가까운 유명 정치인 ○○○의 측근이었어요." 전직 보좌진 A씨의 말이다. '파리 목숨'. 보좌진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정기국회가 진행 중이다. 한쪽 가슴엔 배지를 달고, 피감기관을 상대로 질의하는 300명 국회의원의 모습이 아침, 밤, 낮으로 뉴스를 통해 보도된다. 기억되는 것은 의원들뿐이지만 그들의 입법, 질의 등 의정활동은 그들의 '그림자'인 보좌진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의원들의 활동 하나하나를 보좌진이 준비하고 지원한다.

ⓒ일러스트 김세중

20대 국회 4년간 보좌진 57명 교체한 의원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엔 300명의 국회의원을 위한 개인 사무실이 있다. 보좌진들도 이곳에서 일한다. 의원 한 명당 채용할 수 있는 보좌진은 총 9명.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 7급, 8급, 9급, 인턴 비서 1명씩이다. 맡는 업무는 의원실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정무·정책·수행·홍보 등의 역할이 있는데 한 개만 맡는 경우는 드물다. 의원 운전기사도 보좌진이 맡는 경우가 많다. 보좌진은 보통 2개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며, 급할 땐 어떤 업무에든 투입될 수 있다. 갈수록 보좌진의 업무는 다양해지고 있다고 한다. 의원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유튜브 관리도 모두 보좌진의 몫이다.

정장을 입고 국회로 출근하는 이들. 바깥에서 보는 보좌진의 흔한 이미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화려하지만은 않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보좌진의 하루 일과, 심지어 삶 전체가 철저히 본인이 모시는 의원에게 맞춰진다. 삶과 일의 경계를 본인이 정하기 어렵다. 정기국회 때는 주말도 없다.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하다.

대다수 보좌진이 이러한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진 않는다. 10년 경력의 한 보좌관은 "일이 많고 바쁜 건 국회라는 역할에서 당연하다고도 본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모시는 의원의 의정활동이 국민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짜 고통은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생긴다. '갑질'을 당하고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할 때 이들은 자신이 국가의 최고 입법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서 정하는 사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별정직 공무원인 보좌진에겐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좌진의 임명·면직은 전적으로 의원에게 달려 있다. 의원의 한마디면 임명도 면직도 즉시 이뤄진다.

21대 국회 사정은 어떨까. 다방면으로 취재한 결과, 보좌진이 1명이라도 나간 의원실이 130곳가량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건 양정숙 무소속·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양 의원실에선 벌써 6명, 신 의원실은 5명이 그만뒀다. 반년이 채 되지 않아 정원의 절반 이상이 그만둔 것이다. 민주당 김민석·김상희·김정호·박주민·이소영·소병훈 의원,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의 경우 3명의 보좌진이 그만뒀다. 2명의 보좌진이 나간 의원실도 29곳으로 집계됐다.

양정숙 의원(왼쪽)과 신현영 의원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보좌진 특성상 의원과 보좌진이 잘 맞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 어렵기에 다른 조직보다 인원 교체가 잦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또 본인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보좌진은 "반년도 안 돼 절반에 가까운 3명 이상의 보좌진이 바뀐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며 "스스로 나갔다고 해서 그게 순전히 자의에 의한 것이겠나. 직원이 자주 바뀌는 곳은 가끔이 아니라 계속 바뀐다"고 입을 모았다. 양정숙·신현영 의원실 관계자는 보좌진 교체 이유에 대해 "(해당 보좌진의) 사적인 부분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20대 국회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국회사무처 작성 '20대 국회 의원실별 재직한 보좌직원 현황'에 따르면, ㅂ의원실은 4년간 가장 많은 57명의 보좌진이 재직했다. 다음으로는 ㅅ의원실 39명, ㅎ의원실 36명, ㄱ의원실 29명 순이다(국회사무처 실명 비공개 원칙). 4년 만에 정원 8명인 직원이 이 정도로 교체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4년간 10명 이하의 보좌진이 재직한 의원실은 33곳이다. 그중 3곳에선 재임 4년간 단 7명의 보좌진이 일했다. 4년간 보좌진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거나 1~2명 정도만 교체된 것이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정보공개규정 제6조의2 '비공개대상정보의 세부기준'의 '직원 등의 임면(任免), 복무, 급여, 연수 등 인사에 관한 개인정보' 내용을 들어 의원 실명을 밝히진 않았다. 20대 때 보좌진이 자주 바뀐 것으로 유명했던 모 의원실 관계자 B씨는 "작은 실수 한 번에 의원으로부터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고, 버티다 몸에 문제가 생겨 나간 사람도 있었다"고 밝혔다.

급여 강탈에 집 청소·자녀 식당 예약까지 요구

채용 번복을 당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 21대 총선 직후 당선인이었던 민주당 C의원 밑에서 채용을 전제로 일했다는 보좌진 출신 D씨는 임기 시작 전 돌연 C의원으로부터 '채용하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이에 대한 급여도 받지 못했다. 현재는 다른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는 보좌진 E씨도 "총선 이후 모 의원실에 면접까지 보고 채용이 확정됐지만, 출근 전날 번복됐다. 국회에선 너무도 흔한 사례"라고 했다.

'파리 목숨'만이 보좌진이 겪는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시사저널은 전·현직 보좌진들을 통해 보좌진에 대한 의원들의 불합리한 갑질 사례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20대 국회에서 활동한 F의원은 매달 보좌진의 급여 일부를 돌려받아 지역구 사무실 직원들의 급여로 썼다. 정치인들은 정치자금법에 정해져 있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만들고 사용해선 안 된다. 그러나 다수의 보좌진에 따르면 국회에서 이런 일은 적지 않게 벌어진다. 실제 이군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보좌진 급여의 일부를 돌려받아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사적인 일을 보좌진에게 시키는 경우는 허다하다. 의원이 키우는 개의 털을 직접 깎거나, 의원 개인 집 청소, 김장, 이사 등에 보좌진이 동원된 경우다. 20대 국회 전직 G의원은 틈만 나면 보좌진들에게 자택 청소 및 사적인 일을 시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의원실에서 일했던 전직 보좌진 H씨는 "처음엔 이것도 보좌진의 일이겠거니 하고 참았지만 반복되다 보니 자괴감이 들었고 그러한 일들로 의원에게 혼날 땐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20대 때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활동한 I의원은 자녀의 식당 예약까지 보좌진에게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여러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보좌진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의원의 절대적인 임면권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분란을 일으켰다가 좁은 국회 내에서 안 좋은 소문이 돌면 재취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시사저널과 만난 대다수 전·현직 보좌진은 여러 차례 익명을 요구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현직 보좌진 J씨는 "따졌다가 의원에게 찍히면 그 의원과 친한 의원 사무실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며 "다른 업계는 몰라도 이곳은 일을 아무리 잘해도 의원에게 밉보이면 생명이 끝나는 곳"이라고 말했다.

"입법기관 국회, 정작 보좌진 인권은 사각지대"

박준수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회장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의원 보좌진에 대한 법적·제도적 근거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포함돼 있다. 법률이 보좌진을 국회의원의 수당 일부 정도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제9조1), '보좌직원에 대하여는 별표 4에서 정한 정원의 범위에서 보수를 지급한다'(제9조2). 이 두 줄이 전부다.

10년 전 당 보좌진협의회에 들어가 현재까지 국회 보좌진의 권익 증진을 위해 힘써온 13년 차 보좌진 박준수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장(정경희 의원실 보좌관)은 최근 보좌진 처우에 대한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행법을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로 고치고 면직 예고제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해고할 때 의무적으로 30일 전 면직 예고를 하게 돼 있다. 국가공무원은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면직 사유가 엄격히 제한된다. 두 사례 모두 의원이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즉시 면직되는 국회 보좌진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박 회장은 "우린 '파리 목숨'이지 않나. 오늘 출근했다가 의원이 '너 나가' 하면 다음 날 면직된다"며 "국회가 입법을 하는 곳인데 정작 보좌진의 고용 및 노동과 관련해선 법적 근거가 거의 없는 사각지대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법안은 현재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심사되고 있다.

박 회장은 "최근 보좌진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검사를 실시했는데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세가 매우 높게 나왔다. 숙식을 사무실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많고 업무 강도가 상당하다"며 "그럼에도 보좌진들은 지역주민과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입법 등을 통해 해결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보좌진의 임면 등과 관련해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마련돼 앞으로 보좌진이 더 열심히 일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반론보도문] 「"너 나가~" 파리 목숨 국회 보좌진 근무 백태」 기사 관련

본지는 지난 2020년 11월20일 「"너 나가~" 파리 목숨 국회 보좌진 근무 백태」라는 표제 아래 '국회 보좌진의 임명과 면직은 전적으로 국회의원에게 달려있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의 경우 5개월 동안 총 6명의 보좌진이 교체되었다. 다수의 보좌진은 반년도 안 돼 절반에 가까운 3명 이상의 보좌진이 바뀐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보좌진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불합리한 갑질 사례도 다양하다'라는 내용을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양정숙 의원은 '기사에서 언급된 보좌진 전원은 건강상의 이유, 희망 직종·직위로의 진출 또는 임명시 약정된 단기간 근무기간의 경과 등 모두 개인 사정에 의해 의원면직된 것이고, 의원의 갑질로 인해 보좌진 교체가 잦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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